우리 모두의 사랑, 우리 모두의 흔적 남기기. 영화 <에브리 데이>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리뷰이며, 영화 내용 전체가 실려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 잘생긴 연예인의 사진이 올라오면 종종 이런 댓글이 달린다.
"하루만 저 얼굴로 살아보면 좋겠다."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한테 줘요."
잘생겼다는 말로는 부족하니까 이렇게 위트를 섞어 칭찬을 하곤 한다. 내 외모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서 잘생긴 얼굴로 바꿀 수는 없는 거니까 부러움 반, 체념 반도 담아서.
'외모 바꾸기 혹은 몸 바꾸기'는 꽤 여러 콘텐츠에 차용된 모티프다. 어떤 콘텐츠는 몸만 바뀐 상황에서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하는, 실존적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는 경찰과 범죄자의 얼굴이 바뀐다. 경찰의 가족들은 얼굴이 바뀐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한다. 내가 나임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외모를 바꾸고 싶은 '욕망'은 기저에 관음적인 욕구가 깔려 있기도 하다. 이러한 욕구는 은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만든다. 몸을 바꾼다는 것은 이전의 내 모습을 감출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처럼 타인의 몸으로 들어가 그를 마음대로 조종한다거나 웹툰 <외모지상주의>처럼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낮아서 이전에는 미처 해볼 수 없었던 일들을 고민 없이 해보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요컨대, 바뀐 몸에서 진짜 나를 드러내거나, 바뀐 몸속에 진짜 나를 감춘다. 외모가 아닌 진짜 내면의 '나'에 대해 고민해보거나 혹은 타인의 외모라는 가면을 새로 쓴다.
그런데 몸 바꾸기 모티프가 사랑과 만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바뀌는 '우진'이 우연히 만난 '이수'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수는 매일 우진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예상할 수조차 없다. 결국 정신과 약을 복용하게 되고 여러 사람과 교제한다는 좋지 않은 소문에 휩싸이기도 한다.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했지만 이수는 이수는 우진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 그 자체를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메시지는 제목에서부터 뚜렷하다. 진정한 아름다움(혹은 아름다운 사랑)은 내면에 있기에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사건에서는 잘생긴 배우가 등장해서 모순되긴 했지만).
영화 <에브리 데이>의 'A'는 <뷰티 인사이드>의 우진처럼 매일 다른 사람의 몸으로 바뀐 채 깨어난다. 다만 <뷰티 인사이드>보다 매일 모습이 바뀐다는 설정이 명확하다(지역, 시간, 몸의 주인의 삶을 바꾸지 않는 A만의 규칙까지). 우진은 알 수 없는 새로운 외모로 변하지만 A는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몸으로 영혼만 바뀌는 식이다.
A는 어제 잠든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비슷한 연령대의 누군가로 깨어나 단 하루를 살 수 있다. 그렇게 성별 구분 없이 여러 사람의 몸으로 지내오던 A는 '저스틴'으로 깨어난 날, 그의 여자 친구 '리아넌'을 만나게 된다. A는 리아넌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다. A를 믿지 않던 리아넌은 점점 A의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리아넌은 A의 모습이 바뀌어도 그를 알아보며 두 사람은 점점 서로에게 빠져든다. A는 리아넌과 매일 함께 하고픈 마음에 리아넌의 친구 '알렉산더'로 깨어난 후 그의 몸에서 며칠간 머문다. 알렉산더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A는 두 사람의 사랑을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닫고 리아넌을 설득한다. 그리고 다음 날 A는 다른 이의 몸에서 깨어나고 리아넌을 곁을 떠난다. <뷰티 인사이드>와 다르게, <에브리 데이>는 진정한 사랑이 '내면'에만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겉모습이 매일 바뀌는 상황에서 사랑은 지속될 수 없음을 확실하게 짚어준다. A는 리아넌과 헤어지기 앞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유부남으로 깨어나면 어떡할 건데?
우리가 아이를 갖고 싶어 지면?
우리 사이에 태어난 그 아이는 누구의 아이일 거라고 생각해?
영화 수입사는 <에브리 데이>를 가볍게 보기 좋은 하이틴 로맨스로 포장하고 있지만 <에브리 데이>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보다 무겁다. 리아넌이 사랑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리아넌은 A를 '누구'라고 칭할 수 있을까? 리아넌과 A는 분명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을 결코 눈으로 볼 수 없다. 리아넌과 A의 사랑은 물론 그 누구의 사랑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리아넌과 A가 한 사랑과 우리의 사랑이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 건지 확실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리아넌과 A가 한 사랑을 굳이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 지속하기는 어려웠어도 분명 두 사람은 사랑을 한 것이니까. 꼭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니 말이다.
(공교롭게도 영화 <에브리 데이> 국내 팸플릿은 질문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마지막 질문은 이렇다. '진짜 사랑이란 뭘까요?' 다른 질문들은 모두 객관식이지만 이 질문만은 주관식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A이다. 지나가는 행인 A 혹은 직장인 A, 학생 A, 평범한 20대 여성 A. A라는 고유하지 않은 대명사 뒤에 모두 무명의 누군가로 속할 수 있다. A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A라고 지어주었다. 사는 지역과 연령대만 비슷할 뿐 A가 깨어나는 인물은 공통점이 없으니 말이다. A라는 대명사 뒤에 숨어야만하는 A. 그런 A가 누구인지는 영화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A는 고유한 이름이 있든 없든 A이다.
그러고 보면 나를 나일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은 모두 타인 혹은 사회가 정해준 것들 뿐이다. 이름, 성별, 외모, 가정환경 등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바뀌지만 않을 뿐이지 이렇게 주어진 상황은 A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A가 누구인지는 그래서 더 중요하지 않다. 영화에서 리아넌은 A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그의 몸이 바뀌어도 눈빛으로 그를 알아본다. 내가 나일 수 있는 방법은, 명확하지는 않아도, 외적인 조건들 보다는 나만이 뿜어낼 수 있는 유일한 분위기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리아넌은 A에게 매일 흔적을 남기라고 조언한다. 리아넌을 떠난 A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매일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다. 어쩌면 사랑이란 것도 흔적을 남기는 과정일지 모른다. 실체도 없는 사랑이 지나가면 남는 것은 주고받은 물건이나 함께 찍은 사진 같은 흔적들 뿐이니 말이다. 좀 더 나아가자면 우리의 삶 자체가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과정일지도.
<에브리 데이>는 가볍게 볼 수 있는 사랑스러운 영화이지만 그게 영화가 가진 매력의 전부는 아니다. 누군가의 몸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A를 생각해보면 그가 느낄 외로움 때문에 마음이 괜히 시려진다. 자신의 상황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하루. 그 하루를 온전히 혼자서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을 A, 나의 응원이 그에게 닿기를.
덧붙이는 이야기
국내 포스터와 해외 포스터를 비교해보자.
요즘은 국내 영화 마케팅 사들도 예전보다야 훨씬 멋지게 영화를 표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종종 아쉬운 작업들이 있다. <에브리 데이>도 그렇다.
우선, 국내 <에브리 데이> 헤드 카피는 [24시간 리셋 로맨스]이고 서브 카피는 "매일 모습이 바뀌는 남친이 생겼다!", "매일 모습이 바뀌는 남친과 연애 중입니다!"이다. 서브 카피는 모두 리아넌의 시점이다.
도대체 국내 영화 마케팅은 왜 그렇게 헤드 카피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마케팅 관점과 영화의 메시지가 정확히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포스터 헤드카피의 방점은 마케팅적 관점에 찍히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자극적인 키워드로 쓰인 헤드 카피 하나가 영화를 보기도 전에 영화의 분위기를 포장해서 괜찮은 영화도 보고 싶지 않게 만들어 버린다.
반면, 미국 개봉 당시 포스터는 결이 매우 다르다. 키워드형 헤드 카피는 따로 없는 듯 하고, 서브 카피만 있다.
Every day a different body.
Every day a different life.
Every day in love with the same girl.
확실하게 A에 시점이 중심이 되어 있다. 매일 다른 몸과 다른 삶을 살면서도 같은 소녀를 좋아한다는 데서 오는 괴리와 소녀를 향한 애틋함이 뒤섞인 감정이 느껴진다. 미국 포스터 카피는 단 세 문장으로 영화의 메시지와 감정을 제대로 함축해 전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이 포스터 정말 잘 만들었다, 이 카피는 정말 잘 뽑았다 싶은 영화가 있고 도대체 포스터와 카피를 왜 이렇게밖에 못 뽑았는지 의문이 드는 영화가 있다. 아쉽게도 <에브리 데이>는 후자다. 영화 자체가 매우 작품성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가볍게만 소구하기에는 아까운 영화다. 톤앤매너 자체도 너무 가볍게 설정했다. (미국 포스터와 국내 포스터의 완벽한 톤 차이를 보라.)
영화 홍보마케팅 직무가 무척 고되고 힘들다는 것은 이미 겪어서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관객으로서 욕심이 난다. 괜찮은 포스터와 카피를 더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마케팅적 요소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 포스터를 제발 자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