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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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에 대한 정보는 공식 포스터만 본 게 전부였다. 포스터에는 "<나를 찾아줘>와 <서치> 그 이상! 뒤통수치는 스타일리시 스릴러"라는 카피가 크게 적혀있었다. 여성 투톱 주연의 꽤 괜찮은 스릴러를 기대하며 극장으로 향했다. 약간 의아했던 건 감독이었다. 스타일리시 스릴러라고 하는데 왜 폴 페이그가 연출했을까? 영화 포스터에는 <스파이>, <고스트 버스터즈> 감독이라는 말은 크게 집중하지 않았다. 여성 주인공의 영화를 위트 있게 만드는 감독인 줄은 알았는데 스릴러에 도전했는가 보다 싶었다. 게다가 <나를 찾아줘>를 잇는다고 하지 않았나? <나를 찾아줘>를 몇 년 전 시사회로 극장에서 보고 엄청나게 몰입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뭐, 감독이 데이비드 핀처니까 기대도 했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나를 찾아줘>도 원제 'Gone girl'을 새롭게 해석한 제목이었는데, 이 영화도 원제는 'A Simple Flavor'이다. 일부러 영화 제목도 비슷하게 지은 것 같아서 기대를 했다.
그러나 간판부터 으리으리한 식당에 갔는데 멋진 애피타이저를 주더니 정작 메인 요리로는 츄파춥스를 주는 것 같았다. 카피 속 '뒤통수치는'이라는 수식어는 엄청난 스릴러라는 뜻이 아니었다. 정말로 뒤통수를 치는 배신의 뜻이었다. (앗, 내 뒤통수!) 서스펜스 스릴러인 것처럼 관객을 몰아가더니 긴장감을 깨는 유머와 허망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폴 페이그를 전면에 내세우고 코믹 스릴러라고 밝혔다면 이렇게 맥이 빠지는 느낌은 덜했을 것이다. 스릴러 장르에 대한 기대보다는 가볍게 코믹물을 생각하고 갔을 테니까. (설마 폴 페이그는 이걸 노렸던 걸까?)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풀었다면 그래도 조금은 스타일리시한 스릴러가 되었을 것 같은데 유머가 애매하게 섞이면서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되어버렸다. 보고 싶은 영화는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최고의 시간대에 편한 극장으로 향하는 나에게는 그리 매력적인 영화는 아니었다. 그런 영화임에도 배우를 좋아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블레이크 라이블리나 안나 켄드릭을 좋아한다면 두 배우의 매력을 보기에는 충분하기에 극장에서 보기도 좋을 것이다. 시사회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보러 굳이 극장에 가진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코믹 스릴러라고 처음부터 풀었다면 모든 기대는 내려놓고 시사회를 즐겼을지도 모른다. 영화 마케팅에 올해도 여러 차례 속는다.
서브 카피 중 하나도, '누구나 비밀은 있다'이다. 원작 소설을 보지는 못했지만, 원작에는 캐릭터 각자의 비밀이 복선 역할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영화에는 그 연결점이 부족했다. 특히 스테파니의 비밀을 굳이 그렇게 설정한 데에 대한 풀이도 좀 부족했다. 스테파니는 처음에는 굉장히 에너지 넘치고 적극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일단 한다면 하는, 끝장을 보는 성격이기 때문에 에밀리가 사라진 뒤에 그녀를 찾는 데도 열성이다. 스테파니는 남편의 보험금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에밀리에게 털어놓지만 그렇다고 선을 넘는 짓을 하면서까지 돈을 모으려는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좋은 집과 멋진 커리어가 있는 에밀리를 무작정 부러워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스테파니는 에밀리가 죽은 후 그의 빈자리에 어물쩍 스며들려는 태도를 보인다. 관객이 잘못 판단한 걸까? 영화는 관객이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놓고 스테파니의 비밀을 들려주며 뒤통수를 친다. 그래서 영화 내내 에밀리는 스테파니를 'brotherfucker'라고 부르는 걸지도. 스테파니와 에밀리는 서로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 초반에는 그렇게 보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둘 다 전적으로 서로를 이용했음이 드러난다. 결국은 믿음의 허망함, 위선과 배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만약 이 주제를 말하고 싶었다면 이 영화는 영화의 형식적인 면에서도 믿음의 허망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단한데!) 도메스틱 스릴러로, 더 긴박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스릴러 같은 외투만 두르고 있어서 좀 아쉬울 뿐.
결말에 드러나는 반전도 다소 뻔한 감이 있었다. 스릴러 좀 본 관객이라면 영화 중반에서부터 "설마 또 그 소재?"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보고 들어 본 이야기다. 그럼에도 영화는 열심히 긴장감을 조성하려고 전개를 이어가지만 그럴만하면 '뒤통수를 치며' 유머를 던진다. (다른 학부모들이 팔짱 끼고 앉아 스테파니와 에밀리에 대한 뒷얘기를 떠드는 장면들) 게다가 마지막 엔딩도 그저 주인공들의 근황을 전하는 문장만 잔뜩 쓴 장면을 보여주고 끝난다.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는 완벽한 마무리다. 이 영화 정말로 코미디였구나, 싶은 마무리를. 처음부터 차라리 '코믹 스릴러'라고 풀었으면 가볍게 볼 마음으로 갔을 텐데. 원작도 이런 톤이었을까? 대략만 찾아보아도 원작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로 초점을 맞춘 것 같아 보인다. 스테파니, 에밀리, 에밀리의 남편인 숀의 시선으로 각각 사건을 서술한다. 영화로 각색되면서 톤이 바뀐 것 같다. 복잡하게 욱여넣은 전개와 흐름을 깨는 연출은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채워진다고 하겠다. 내 시간을 완벽히 킬링했기 때문에, 킬링 타임 영화로는 제격이다.
남성 중심의 영화가 대세였던 할리우드에도 페미니즘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여성 서사를 잘 다루는 감독의 주가도 올라갈 전망이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를 연출한 ‘폴 페이그’는 이미 <스파이>, <고스트 버스터즈> 등에서 기막힌 여성 캐릭터 운용 실력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던 여성간 우정의 이미지를 파격적으로 깨 보일 전망이다. 공동 주연인 안나 켄드릭과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도 볼거리. 12월 12일 개봉.
출처: [해외 반응 어때?] 뒤통수치는 신개념 여성스릴러, '부탁 하나만 들어줘'
출처로 밝힌 기사 타이틀은 영화를 "신개념 여성 스릴러"라고 칭한다. 굳이 이렇게 장르를 정의해야 하는 걸까. '신개념 여성'의 스릴러라는 뜻인가, 여성의 '신개념 스릴러'라는 뜻인가. 물론 후자일 테지. 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의 스릴러라고 하면 인정. 스릴 넘치는 코미디,라고 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냥 '신개념 스릴러'라고 살짝만 포장하면 될 것을 굳이 여성 스릴러라는 말은 왜 쓰는지 모르겠다. 왜 쓰는지 알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싫다. 이러면 더 잘 팔릴 것 같다고 생각한 거겠지. 영화 마케팅을 배우던 몇 년 전만에도 카피에 여성 중심임을 드러내는 건 피하라고 했었다. 페미니즘으로 젠더 의식이 건강하게 나아갔으면 싶었지만 요즘은 오히려 갈등만 빚어지고 있고, 마케팅 요소로만 소비되고 있어서 안타깝다. 이런 부분은 늘 개인적인 가치관과 부딪쳐 속상하고 아쉽고 그렇다.
인용한 기사에서 번역한 몇몇 해외평에는 '새로운 여성 누아르', '여성들의 우정을 새롭게 정의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던데 그것도 웃기는 말이다. (설마 이것도 마케팅 요소가 가미된 댓글?) 남성 중심 누아르 영화에서 믿었던 친구가 배신하고 앞에서는 웃으며 뒤에서 이용하는 건 거의 클리셰 급인데? 여성들의 우정은 늘 미소와 평화만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모든 우정에는 그늘이 있고 그 그늘 중 하나가 배신인 것뿐이다. 그리고 이 장르를 '누아르'라고 해도 되는 걸까? 이 부분은 오히려 내가 편견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유튜브로 미국 개봉 당시 공식 예고편을 봤는데 댓글 반응이 다양했다. 재밌었다는 내용도 물론 있었지만 당황스럽다는 반응도 간간히 보인다. "레즈비언 로맨스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여서 놀랐다"거나,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다크한 코미디로 너무 빨리 변해버린다"는 내용도 있다. 어쨌든 스릴러라는 장르를 낯설게 만든 데는 성공한 것 아닐까, 그렇게 좋게 생각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