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한때,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갈 거라 믿었다. 커리어를 쌓고, 적절한 시기에 결혼하고, 그다음엔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지겠지. 하지만 현실은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2024년 6월, 임신 테스트기에 선명한 두 줄을 확인했지만 초음파에선 아기집이 보이지 않았고 결국 유산을 했다. 그 뒤로 몸은 온갖 신호를 보냈다. 미주 신경성 실신, 인대파열, 이석증까지. 산후풍이라는 게 출산한 사람들만 겪는 줄 알았는데, 나처럼 초기 유산을 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몸이 버티지 못해 결국 회사에 어렵게 허락을 구하고 11월에 병가 휴직을 냈다.
2025년 1월, 다시 임신 소식을 들었다. 이번엔 꼭 잘 되길 바랐지만, 2월 초, 고사난자라는 진단을 받았고 또다시 유산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회사에서 인사평가 등급 ‘D’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생전 처음 받아보는 등급이었다.
‘D? 내가 그렇게 못했나?’
내가 속한 사업부의 KPI는 늘 비현실적으로 높았고, 솔직히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였지만 나름 최선을 다했고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도 구조조정 대상이 된 걸 보니, 결국 반복된 임신과 유산, 그리고 병가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었다. 억울한 감정을 곱씹을 새도 없이 머리를 굴렸다. ‘그래, 불행 중 다행 아닌가? 권고사직이면 실업급여가 나오잖아?’ 경력 10년 차에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실업급여. 이쯤에서 한 번쯤 받아도 되지 않을까? 오히려 지금이 기회 아닌가?
그렇게 나는 서른다섯, 퇴사를 앞두고 권고사직 조건을 협의 중이다. 아직 모든 게 확정된 건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 내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게 최우선이라는 것.
임신을 준비 중인 예비 엄마라면 공감할 거다. 저출산 시대라지만, 산부인과 대기실은 언제나 북적이고, 병원 한 번 가려면 연차를 쪼개 써야 하고 그마저도 눈치를 보며 결재를 올려야 하는 현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브런치에 남겨보려 한다. 내 처지와 비슷한 사람들, 혹은 경력 단절이 두려워 ‘임신 vs. 커리어’ 사이에서 고민하는 당신. 브런치 구독하고 같이 털어보자. 가끔은 계획 없는 삶이 더 흥미로울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