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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Dec 11. 2015

호주 여행을 행복하게 만든 건 소고기가 아니다.

기가 막히는 바다, 코스 요리, 뮤지컬도 아니다.

휴가기간 동안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 쉬면서 시간을 보냈다.

서핑을 배우고 싶었고, 호주에서 지내는 친구들도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른 곳은 3곳이다.

서핑하기 좋다는 골드코스트,

중학교 동창 친구가 일하고 있는 멜버른,

마카오에서 앵커 준비하다가 석사 공부하고 있는 친구가 지내는 브리즈번이다.


내가 가는 곳은 한국, 동남아, 남미도 아니고 호주였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자연경관,

시원하게 펼쳐진 골드코스트의 바다,

어떤 사람은 한우보다 맛있다고 하는 호주 소고기에 감화되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과 바다, 호주산 와인, 여유로움은 당연히 달고 감칠맛이 났다. 하지만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면서 다시금 음미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의외로 소소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바로 받으셨던 것이 행복했다.

해가 지고 있는 브리즈번 시내를 음악 들으면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카카오톡으로 전화를 걸었다. 카카오톡으로 전화하면 보통 전화 잘 못 받는데 바로 받으셨다. 항상 그렇듯 '밥뭇나, 돈은, 여자 조심해라'로 이어지는 3단계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금방 끊기는 했다. 특별히 덧붙이신 질문은 '집에도 안 들어오고 혼자 놀러 가면 무슨 재미가 있냐'였는데, '선배들이 결혼하기 전에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하시더라구요'라고 대답했었다.  별말씀을 안 하셨다. 내가 한 대답이 스스로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전화를 받으신 것이 기쁜 건지는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친구가 하나하나 마음 써주는 것을 느껴져서 감사했다.

멜버른에 있는 친구는 하루에 12 시간 넘게 일한다. 주말에 좀 쉬고 싶을 텐데도 온전히 투자해주고, 장소를 세심히 추천해주고, 데려다 주기까지 했다.

브리즈번에 있는 친구는 차로 불평 한번 없이 데려다 주고, 새로운 친구를 소개하여줬다. 고마워서 밥값 계산을 몇 번 했다. 마지막에 하는 말이 5일쯤 고은 사골국처럼 진했다.

혼자서 공부하느라 외로웠는데, 너가 와서 생활이 풍족해졌어

마카오에서 앵커를 준비하던 친구라 외모가 호감형 이긴 하지만, 이렇게 반짝이는 말까지 할 수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마카오에서 처음 보고, 서울에서 한번 만나고, 브리즈번에서 만나는 게 이제 겨우 3번째인데 이렇게 예쁜 말을 할 수가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 친구 이름이 마침 Angel이다.


사람들과 와인을 마시고 싶을  때 마침 같이 마실 사람을 구했던 것이 기뻤다.

와인을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바에서 혼자 잔으로 주문해서 맛본다. 하지만 그 날은 사람 사이에 있는 분위기를 안주삼아 마시고 싶었다. 잠깐 방황하다가 한국인 두 분, 일본인 한 분과 말을 두어 마디 정도 말을 트게 되었다. 처음 보는 날이었는데 "와인 드실래요?"라고 청했다. 처음 보는 이성과 말을 하는 것이 어색해서 소개팅, 미팅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도대체 무슨 용기로 청했는지 모르겠다. 뜻밖에도 흔쾌히 응하셔서 호주산 와인 4병을 새벽 2시까지 즐길 수 있었다.


잔으로 주문한 스파클링 와인을 꽉 채워준 것이 기분 좋았다.

걷다가 시원한 스파클링 와인 한 잔이 생각나서 바를 들렀다. 와인은 잔에 절반 정도 따르는 것만 봐왔는데, 꽉 채워서 주더니 대뜸 윙크를  찡긋하고 가는 것이었다. 향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절반 정도만 따르는 것이 맞다고 알고 있지만, 우선 많이 마실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투어 해주시는 아저씨가 양보 운전하시는 게 그렇게 마음이 좋았다.

양보운전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작은 차들이 지나가도록 갓길로 비켜서서 기다리시는 것이 인상 깊었다. 웅장한 12 사도상, 자동차 광고 찍는 곳이라는 great ocean road만큼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14시간 동안 가는 비행기를 같이 탄 옆자리 아기가 귀여워서 좋았다.

호주에서 브라질로 친척들을 보러 가는 길이라는데, 동그란 눈으로 순수하게 웃는 것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외국인들은 내 나이 한 번에 잘 못 맞추는데 단박에 맞추는 것이 신통방통했다. 손가락으로 두 볼을 잡아당기고 싶었는데 잘 참은 것 같다.



자연경관에 기대려고 호주를 갔는데, 나를 행복하게 한 건 사람이었다.

멀리서 일하고 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써야겠다.


평소에도 이런 감사함으로 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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