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런 친구가 다 있었구나
"오늘 퇴근하고 나서 밀라노 지사 가서 물건 좀 가져와 주세요, 티켓 여기 있어요"
옆집 가서 소금 얻어오라는 듯한 어조여서, 밀라노가 쿠웨이트 지근거리에 있는 줄 알았다.
티켓을 보니 한번 경유해서 편도 8시간.
비행시간만 16시간에 밀라노 체류는 6시간이라.
비행시간 동안 부족한 잠을 채우고도 시간이 많이 남을 것 같아서,
평소에 꼭꼭 읽겠다고 다짐했던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가방에 넣었다.
게이트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책을 폈는데 책갈피 말고 다른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2014년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2015년도 잘 부탁해'
차가워 보였는데, 친해진 친구가 발리로 여행 갔다 오면서 준 엽서였다.
여행 갔다 오면 서로 꼭꼭 작은 것 하나라도 손편지와 함께 챙겨주는 그런 사이였다.
3년 동안 해외파견 근무하는 것이 정해진 직후에 받은 엽서라 참 마음이 아렸던 기억이 난다.
전에는 서로 뭐하는지 사소한 것도 다 알정도로 거의 매일 연락하고 자주 보는 친구였는데,
해외 나와서 바쁘게 일하다 보니,
그 친구도 대학원 가서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연락을 잘 못했다.
예전에는 연락이 끊겼다 싶으면 다시 연락하곤 했는데,
이제는 서로 그러지 않는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걸까.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때는 그냥 서로 자주 연락하고 잘 들어주고 챙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좋았던 것일까.
비록 이성이기는 하지만, 이런 친한 관계가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떤 일이 있어서 이렇게 됐다기 보다,
아무 일이 없어서 이렇게 된 걸까.
어른이 되어간다는 게 혹시 이런 것에 덤덤해진다는 것일까.
이렇게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주위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마음이 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