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왼손의 본능, 오른손의 정답

양손잡이라는 서글픈 흉터에 대하여

by 테오 진

당시 어른들에게 '다름'은 곧 '교정 대상'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 학교 교실에는 왼손잡이 친구가 하나 있었다. 모두가 오른손을 쓰니 너도 그래야 한다는 빈약한 논리가 아이의 본성을 억눌렀다. 그 친구는 학교에선 왼손을, 집에선 오른손을 쓰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그는 내가 본 생애 첫 '양손잡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 기이한 재능 뒤엔, 규격에 맞춰지기 위해 쏟아야 했던 처절한 인내가 있었다.


소년의 몸이 기억하는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손인 '왼손'은 밥상 위에서 철저히 금지되었다. 오직 생존을 위해,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긴장감만이 밥상 위를 감돌았다. 밥 먹는 즐거움 대신, 소년의 왼손은 갈 곳을 몰라 방황했고, 억지로 쥐여준 오른손 젓가락 끝에선 삶의 의지마저 위태롭게 흔들렸다.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던 왼손의 죄를 대신해, 오른손은 주말마다 콩알과 쌀알을 빈 공기에 옮겨 담는 형벌을 감내해야 했다.


채워도 끝이 없는 밥공기, 자꾸만 미끄러지는 콩알. 그리고 무엇보다 잔인했던 것은 그 엄격한 '정상성'의 압박이었다. 젓가락질을 잘해야만 밥을 먹을 자격이 주어지던 시대,


아이의 손가락 마디에 남은 굳은살은 사회라는 틀에 영혼을 구겨 넣으며 생긴 흉터였다.


이 오래된 가혹함에 대한 의문이 풀린 것은,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타국의 식탁 위에서였다. 그곳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수저를 쥐고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에게 왼손은 금지된 손이 아니라, 그저 심장과 조금 더 가까운 손일 뿐이었다. 심지어 처음 젓가락을 쥐어본다는 친구는 그 도구를 거의 '움켜잡는' 수준이었다. 젓가락 두 짝의 수평조차 맞지 않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음식을 입으로 날랐다. 모양은 엉망이었을지언정, 그들의 젓가락질은 단 하나의 본질, '먹는 즐거움'에 닿아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아, 젓가락질을 못 해도 저렇게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구나.’

우리가 집착했던 '오른손의 법칙'은 정작 밥을 먹는 행복이나 삶을 살아가는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소년의 밥공기를 채우지 못했던 것은 콩알이 아니라, '남과 똑같아야 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거대한 허기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이방인의 서툰 손짓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를 보았다. 형식이라는 감옥에 갇혀 본성을 거세당했던 소년의 왼손이, 수십 년이 흐른 뒤 타인의 투박한 손놀림을 보며 비로소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텅 빈 공기 앞에 앉아 있던 소년의 뒷모습을 생각한다.





우리는 왜 그토록 작고 투명한 존재들에게 '같아야 함'이라는 무거운 쌀알을 강제로 채우게 했을까. 왼손으로 집어 올린 밥알은 정말 맛이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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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꽃가루로 변하는 시간. 그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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