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핸들을 놓는 용기

비로소 시작된 항해

by 테오 진

"죽을힘을 다해 쥐고 있던 핸들은 사실 나를 가로막는 벽이었다."




어느 연휴, 왕복 1,600km의 여정을 계획했다. 목적지는 800km 밖의 야외 온천. 아르헨티나의 대지는 끝도 없이 평평했다. 자로 잰 듯 뻗은 직선도로 위에서 나는 대자연을 '지루한 배경'쯤으로 여겼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 나는 목적지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유능한 조종사라고 믿었다. 하지만 대지는 그저 침묵하며 나의 오만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다.


현대 문명이 자랑하는 ‘조종(操縱)’이라는 기술은 대자연의 몸짓 앞에서 한낱 몸부림에 불과했다. 지평선을 찢으며 달려온 돌풍은 내 핸들을 비웃듯, 육중한 차체를 좌우로 무자비하게 내동댕이쳤다. 쇳덩이 속에 갇힌 나는 마른 잎사귀처럼 무력했다. 인간이 만든 고철 덩어리는 거대한 자연의 숨결 앞에 장난감처럼 가벼웠다.


그때였다.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수백 년을 버텼을 고목 하나가 내 차 바로 옆으로 고꾸라졌다. 나무는 쓰러지며 주변의 모든 것을 짓이겼다. 기술이라는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세상을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던 나의 자신감은 그 둔탁한 추락 앞에 산산조각 났다. 핸들을 잡은 손등 위로 푸른 힘줄이 돋았지만, 그것은 의지가 아니라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짐승의 경련이었다.


세상을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이 사라진 자리에 비릿한 공포가 밀려왔다. 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이 거대한 흐름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더 지독했다. 거센 파도에 도전하려다 거품 속으로 처박히는 서퍼들처럼, 나 역시 ‘길’이라는 파도에 휩쓸린 초보 서퍼에 불과했다. 나는 무엇을 그토록 쥐고 흔들려했던 걸까.


쓰러진 고목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죽을힘을 다해 쥐고 있던 핸들은 사실 나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벽이었다. 손의 힘을 빼고 폭풍의 리듬에 몸을 맡기자, 비로소 나는 이 거대한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 매듭은 억지로 푸는 것이 아니라 결을 따라 흐르는 것임을, 폭풍은 그렇게 가르쳐주었다.


돌풍이 잦아든 뒤, 고목의 잔해 곁에서 비로소 핸들에 가했던 무력한 힘을 뺐다. 자연은 정복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숨결이었다. 인간이 휘두르는 ‘조종(操縱)’은 결국 스스로의 끝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음을 겸허히 인정했다. 하지만 그 죽음의 종소리는 끝이 아닌, 새로운 항해를 알리는 시작이었다.


항복은 패배가 아니었다. 오만한 자아를 버리고 흐름에 몸을 싣겠다는 경건한 약속이었다. 삶은 핸들을 꺾어 억지로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그저 그 길 위에 서서 걷는 것임을, 쓰러진 고목이 웃으며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이제 조종하는 법을 잊기로 했다. 대신 바람의 방향을 살피며 기꺼이 흐르기로 했다. 힘이 빠진 내 몸속으로 비로소 아르헨티나의 따뜻한 와인이 기분 좋게 감돌기 시작했다.




다음 이야기 : Ep.9 존중이 갇힌 감옥 – 내 기준이라는 창살을 부수다.


먼지가 꽃가루로 변하는 시간. 그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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