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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실 May 12. 2021

그만하면 잘했어.

영화 리뷰 <위플래쉬>

 한계를 뛰어넘어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운동하면서 이젠 도저히 못하겠다 싶을  마지막  세트를  해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뿌듯하진 않았다. 항상 나는 운동은 무리하지 않고 적당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플레쳐가 제일 싫어하는 말인 '그만하면 잘했어.'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나는 채찍보다 당근을 좋아하고 밑어붙이는 것보다 쉬어가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내가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  때가 있다. 그러면 죽도록 노력해서 성장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기도 한다. 아주 잠시.


 플레쳐는 존경받기 힘든 인물이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은 그에게 한 번도 가르침을 받아 본 적 없는 저 멀리 객석의 관객들 아닐까 싶다. 그의 외향에서부터 칼같이 지키는 시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 가정사를 이용한 비난 등은 여러모로 그가 대단해 보인다. 사람이 저렇게 못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엄청나다. 첫 등장부터 천재의 느낌이 풍겨지는 앤드류에게 플레쳐는 '엄마 채찍'을 사용한다. "그러니깐 엄마가 도망가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뱉고 "호모 새끼"라는 말은 그가 비난을 퍼부울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런 비난이 도대체 무슨 교육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앤드류는 성장한다. 하지만 그 성장은 집착하고 광기를 보이는 부적절한 성장이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빠른 비트의 드럼 소리가 들린다. 드럼 소리는 꽤 지속되는데 그 소리가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또 플레쳐가 화내고 비난을 퍼붓는 장면, 앤드류가 피를 흘리며 드럼을 연습하는 장면은 웬만한 스릴러 영화보다도 사람을 압도시킨다. 극한으로 치닫는 앤드류와 드럼 소리들은 영화 <매드 맥스>를 볼 때랑 비슷하게 긴장됐다.


 후반부로 가면 플레쳐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나 싶은 장면이 있다. '그도 사연이 있겠지', '역시 엔딩은 해피겠지.' 하지만 플레쳐는 플레쳐였다. 그래도 나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인데 학생에게 복수하는 모습이 못나 보였다. 그렇지만 복수로 인해  영화를 보는 내내 부인할 수 없던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앤드류의 광기를 볼 수 있었고 그렇게 탄생한 <위플래쉬>의 마지막 장면은 가히 명장면이었다.


 영화 중간에 플레쳐가 자신 때문에 자살한 제자의 CD를 들으며 운다. 그가 우는데 속으로는 '나약하고 허접한 자식'이라고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플레쳐가 극성맞은 자식 교육에 열렬한 어머니 같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후에는 음악에 미친 사이코패스라고 그를 정의했다. 자신은 정당한 일을 했는데 그걸 견뎌내지 못한 사람은 나약한 사람일 뿐이라고. 찰리 파커는 심벌즈에 목이 잘릴 뻔했지만 그걸 이겨내고 최고가 됐다고. 많이 들어본 잔소리 레퍼토리다.


참 답답하다. 찰리 파커는 그랬을지 몰라도 나는 다를 수 있단 걸 왜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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