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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실 May 12. 2021

따뜻함

영화 리뷰 <미나리>

 잘 우는 애가 아닌데 영화를 보는 내내 친구가 훌쩍거렸다. 친구는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어릴 때 바쁜 엄마 아빠 대신에 공기놀이도 해주시고 인라인 스케이트 탈 때 앞에서 손도 잡아주시고 잠잘 때도 꼭 붙어 잤으며 아침마다 타 주시던 마즙이 먹기 싫어서 매일 소리 지르고 울었고, 할머니 때문에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게 싫어서 할머니를 미워했었다고 친구는 덤덤한 목소리로 그때가 많이 후회된다고 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각자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농장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길 원하는 남편, 더 이상 빚을 만들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며 평범하게 살길 바라는 아내, 주일마다 십자가를 끌고 다니며 하느님께 기도하는 이웃, 가족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할머니. 모든 게 할머니 탓이라는 손자. 각자 가지고 있는 믿음은 손발이 맞지 않고 삐그덕거린다. 그들이 처한 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서로를 비난한다. 그리고 그간에 결실이 담긴 창고가 불에 활활 타버린 것처럼 갈등이 펑 터져버린다. 바뀐 건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 불길도 사그라들듯이 갈등도 식어갔다. 그들은 이민자로서 미국의 처음 왔을 때처럼 다시 시작한다. 불씨가 모두 꺼졌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다시 나아간다.


  제이콥과 같이 일하던 폴이 아픈 할머니를 위해 엑소시스트를 하고 난 후,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있는 제이콥 옆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마치 왕과 신하의 모습 같기도 했다. 그 모습이 어색하기도 했다. 왠지 그 둘의 위치가 바뀐 거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이중적인 감정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 장면을 계속 곱씹게 되었다.


 마지막에 나도 살짝 울었는데 친구와 마찬가지로 할머니 생각이 났다. 어릴 때 했던 철없는 행동들을 할머니는 항상 품어주고 다독여주셨다. 거실 거실 한 할머니 손이 느껴지고 따뜻하고 정이 느껴지는 할머니 품이 그리워졌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 지는 영화였다. 내가 좋아하는 미나리에, 따뜻한 색감에, 내 어린 시절을 담은 듯 현실적이고 생생한 장면들, 오랜만에 마음속을 한껏 따스함으로만 채우고 영화관을 나왔다. 좋은 영화는 행복을 준다. 그래서 영화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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