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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실 Jul 28. 2021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두에게 친절해라

영화 리뷰 <원더>

학창 시절,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튀어 보이는 거였다.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해 보이고 싶었다. 아무도 나에게 주의 깊게 관심을 두지 않기를 바랐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난 어떤 면에서도 평범한 아이였지만,  어릴 때부터 들어온 "너는 친구들과 다르잖아"라는 말이 날 그렇게 만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비밀은 생활기록부의 부모 칸이 공란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새 학기가 가장 두려웠다. 새학기마다 가정환경조사지를 내야 했는데 내 조사지는 다 빈칸이었기 때문이다. 조사지를 낼 때는 맨 뒷줄에 앉은 친구가 앞줄 친구들 조사지를 걷어서 내 거나 반장이 모아서 냈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이 내 조사지를 보고 부모가 없다는 걸 알게 될까 봐 무서웠다. 아직도 그때 감정이 생생하다. 부모가 없다는 게 내가 지은 죄도 아니었고 어쩔 수 없던 일이었는데 나는 불안했다. 위축되고 감추려 애쓰고, 친구들에게는 화목한 '정상적'인 가정인 척하느라 항상 죄책감을 달고 살았다. 그 당시 썼던 다이어리를 보면 언제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말할지, 들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들만 가득했다. 죽고 싶다는 글도 많았다.


초등학교 때, 보습학원에 다녔다. 학원 원장님은 소아마비셨는데 어느 날 원장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널 보면 내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나도 너처럼 자존심이 세서 누구 도움도 안 받으려 했거든."


누군가 처음으로 내 마음을 이해해줬던 때였다. 열등감이 심했던 어린 시절에는 누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게 제일 싫었다. 사람들이 나를 안쓰럽게 보고 걱정해주는 게 끔찍이도 싫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나를 도와준다는 것도, 어른들이 불쌍하다며 돈을 챙겨주는 것도 너무 싫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처음 알아주는 사람이 생긴 거였다. 그때 안도감을 느꼈다. 왜 안도감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안으로 요동치던 마음이 잠시나마 잠잠해졌었다. 그 감정도 아직 생생하다.


사실 다행히 학창 시절 동안 부모가 없다고 왕따를 당하거나 비난을 당한 적은 없었다. 분명 누군가는 내 비밀을 알거나 눈치챘겠지만 아무도 직접적으로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 비밀을 털어놓는 일이 더는 어렵지 않아졌다. 얼마 전, 부모님에 관해 묻던 사람에게 비밀을 말했다.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 털어놓는 건 처음이라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힘들었지만, 솔직하게 말하고 나니 개운했다.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짐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것처럼 정말 개운했다. 그 이후로 비밀이 더는 나를 누르지 않았다. 부모님은 없지만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살고 있고, 우리 집은 그저 수많은 형태의 가정 중 하나기 때문이다. 누구와 다를 것 없이.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두에게 친절해라"

 

영화는 태어나자마자 27번의 얼굴 수술을 받은 10살 꼬마 아이 어기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건 양을 도살장으로 보내는 짓이야." 아빠의 말처럼 어기의 학교 생활은 순탄치 않다. 어기가 지나갈 때마다 친구들의 시선이 쏠리고, 더러운 병균이 옮는다며 피해 다니고, 피구를 하면 어기만 맞춘다. 고약한 아이 한 명은 스타워즈를 좋아한다는 어기에게 다시 시디어스를 좋아하지 않냐고 묻는다. 그 아이를 필두로 한 남자아이들 무리가 어기를 괴롭힌다. 학교 첫날부터.

도살장에 갔다 온 어기는 울면서 왜 자신은 이렇게 못생겼냐며 묻는다. 그때 엄마가 해주는 말이 인상 깊었는데


"날 봐, 누구나 얼굴에 흔적이 있어. 이 주름살은 네 첫 번째 수술 때, 이마에 주름은 네 마지막 수술 때 생겼어. 얼굴은 우리가 갈 길을 보여주는 지도이자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지도야. 절대로 흉한 게 아니야."

좋은 가족을 둔 어기는 고된 학교 생활이지만 현명하게 이겨내고 졸업을 한다. 졸업식 날, 어기의 학교 생활을 잘 보여주는 투쉬맨 교장님의 연설이 있었다.


"위대함은 강함에 있지 않고 힘을 바르게 쓰는 것에 있습니다. 정말 훌륭한 사람은 그 힘으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며 직접 본을 보입니다. 그 강인함으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 학생에게 헨리 우드 비처 메달을 선사합니다. 어기스트 풀먼 군."


똑똑하고 재밌는 어기는 많은 친구들을 두게 되었고 졸업식 날에는 당당히 상까지 받았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어기가 겪은 일들은 나였다면 견디지 못했을 만큼 심했다. 겪은 일을 여기다 다시 옮겨 적고 싶지도 않다. 보면서 몇 번이나 울음을 참지 못할 만큼 못된 일들이었다. 유독 내가 더 힘들어했던 이유는 나 역시 학창 시절에 어기처럼 주변 친구들의 시선에, 말들에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체구의 어기가 처음에는 혼자 꿋꿋하게 이겨내다가 마지막에는 친구들과 함께 이겨내는 모습을 보며 많이 울었다. 아직 갈 길이 많고 아마 이보다 더 한 아픔을 겪을지도 모를 어기지만, 10살 때 나보다 용기 있고 대단한 아이이기 때문에 꼬마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기 덕분에 10살의 나에게도 이제야 위로를 건넬 수 있었다.


<원더>는 어기의 이야기 말고도 어기의 친구 잭과 어기의 누나 비아, 비아의 친구 미란다의 입장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내 어린 시절에 겪는 관계의 문제를 잘 보여줬다. 특히 어기에게만 집중하는 부모님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줬던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비아의 이야기가 와닿았다.


"난 널 알아. 할머니는 세상에서 널 제일 사랑한단다."


"어기는요?"


"네 동생도 사랑하지. 하지만 걔는 지켜주는 천사들이 많잖니. 너는 내가 있어.

 늘 네 생각뿐이야. 그리고 할머니는 네가 제일 좋단다."

어기가 태어나고 일찍 철이 든 비아는 자신이 부모님에게서 항상 뒷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하루는 물어보지 않고 엄마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는 비아에게 할머니는 유일하게 자신을 1순위로 생각해주는 사람이었다. 요새 들어 나도 종종 나를 1순위로 생각해주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 다른 사람 다 제쳐두고 내가 먼저인 사람이 있을까 하고. 그래서인지  비아와 할머니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많이 슬펐고 기억에 남았다.


가볍게 본 영화였는데 머리가 띵해질 정도 울었다. <원더>는 그 시절 나에게 정말 큰 위로를 건넸다. 너무 아팠고 어두웠던 시절이라 묻어두기만 했는데 이렇게 영화 한 편으로 토닥여질 수 있구나. 이게 영화의 힘이구나 또 한 번 느꼈다. 그래서 굳이 이 영화의 단점을 꼽고 싶지 않다. 그냥 이렇게 마냥 행복한 영화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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