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이니셰린의 벤시>
영화는 1923년 아일랜드 내전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일랜드 외딴섬인 이니셰린에서도 작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바로 파우릭(콜린 퍼렐)과 콜름(브렌단 글리슨)의 갈등이다.
영화는 콜름이 파우릭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절교선언을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영화 초반은 도대체 콜름이 왜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했을지 궁금하게 만든다. 파우릭 자기 자신도, 친한 마을 사람들조차도 왜 콜름이 파우릭에게 매정하게 대하는지 알지 못한다. 파우릭은 갑자기 자기가 싫다며 거리를 두는 콜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콜름에게 치근덕거린다.
영화를 보다 보면 서서히 절교의 이유가 드러난다. 사이가 좋았을 시절, 두 남자는 펍에 앉아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하루하루를 보낸 듯하다. 그러다 어떤 시점부터 콜름은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로 여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졌다.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에만 몰두해 베토벤, 모차르트처럼 세상에 위대한 음악을 남기고 싶어 한다.
반면, 파우릭은 음악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다. 베토벤이고 모차르트고 전혀 관심이 없다. 파우릭은 훗날 미래의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이곳 이니셰린의 사람들과 다정히 서로를 챙기며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
파우릭이 쉽게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것 같자 콜름은 한 번만 더 귀찮게 한다면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며 경악할만한 협박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우릭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을 거듭하고 결국 콜름은 자신의 손가락을 다 잘라버린다.
파우릭의 삶의 의미는 단순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가축들과 함께 있는 것.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여동생이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고 설상가상으로 아끼던 당나귀 제니가 콜름의 잘린 손가락을 먹다 죽게 되자 파우릭은 흑화(?)한다. 그렇게 둘의 갈등은 최고조에 치닫는다.
나는 영화 이야기 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영화에 대한 생각과 애정을 말하진 않는다. 영화에 대한 의미가 모든 사람들에게 다 깊은 것은 아니기에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영화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처음엔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 영화를 다른 사람은 안 좋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를 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 사람과 대화할 땐 나도 모르게 조심하게 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가 깊지 않은 이야기라도 상대방에겐 의미가 깊다면 귀를 기울여준다. 이게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파우릭이 콜름의 음악에 대해 조금만 이해를 해줬더라면, 그의 결심을 말도 안 되는 거라 비난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신박한 소재, 적절한 유머들, 아름다워 감탄한 영화 배경지, 훌륭한 연출 모두 좋았던 영화였다. 다만 조금 잔인하니 감상할 때 참고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