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슬픔 Anticipatory Grief

by 김몽실

작년 4월

간암 말기에 척추뼈 전이를 진단받은 할머니

그때부터 하나씩 적은 글

1.

피를 자주 뽑으면 정맥이 숨는다고 한다.

항암이 길어질수록 할머니 혈관은 점점 안 보여 피를 뽑기 어려워졌다.

손과 팔이 멍투성이가 되자

할머니는 간호사가 끌고 다니는 카트 소리만 나도 무서워했다.

정맥을 괴롭힐수록 숨어버린다는 말은

그 당시 내 상황 같아서 기억에 남았다.

난 존재를 숨길 순 없었지만 괴로워하는 마음을 숨겼다.

숨다 보면 사라질까

내게는 그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없었다.

2.

예상 슬픔(Anticipatory Grief)

3.

퉁퉁 부은 할머니 얼굴을 오래 보기가 어렵다.

4.

화장실 변기에 앉아 아파하던 할머니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난 할머니를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자부했고 할머니의 아픔이 별거 아니라 믿었다.

그 아픈 걸 참고 견뎌온 할머니가 미련했지만 이 가정을 지키려 할머니가 지금껏 해온 인내를 나 까짓 게 이해할 리가 없었다.

5.

심장을 움켜쥐고 싶을 만큼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과거를 후회한다. 아파하던 할머니가 혼령처럼 내 곁에 붙어있는 것 같다. 죄책감은 사람을 갉아먹는다.

6.

토대가 무너져간다.

날 일으켜 세우고 충만하게

채워준 사람들이 고꾸라진다.

그들을 다시 세울 방도를 난 알지 못한다.

헤아릴 수 없이 사랑한다.

사랑만으로는 그들을 잡아둘 수 없다.

7.

내가 몰랐던 할머니의 삶 전체가 뒤늦게 날 덮쳤다.

8.

내가 태어나고 할아버지는

나만 손녀를 가진 것 마냥 기쁘다 말했다

다 큰 나를 보면서

눈가의 눈물을 새끼와 약지가 휘어 펴지지 않는 손으로

연신 닦아내셨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만큼이나 소중했다

9.

꿈에 할머니가 나왔다.

항상 입던 꽃무늬 하늘색 원피스 잠옷에

생전 신지 않던 슬리퍼를 신고

내가 가는 길마다 주저앉아있었다.

발을 붙잡고 있기에 자세히 보니

발등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두세 번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면서

멍은 더 푸르고 넓어졌다.

항암은 할머니 손등 전체를 푸르게 만들었다.

그 손등을 어찌할지 몰라

보습제나 가져와 듬뿍 발라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 전부였다.

푸른 멍이 비수처럼

꿈이고 현실이고 찔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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