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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Jun 21. 2020

오늘을 자주 탐할지도

엄마의 자유 시간

오전 내내 들썩이던 집안이 점차 제자리를 찾았다. 오로지 놀기 위해 그렇게 밀어내던 낮잠을 꼬마는 드디어 받아들였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히려 창문을 열어 바람을 통하게 하고 포근한 꿈을 위해 얇은 커튼을 쳤다. 시원함을 더하고자 선풍기로 만든 잔잔한 바람을 방안 곳곳에 닿도록 손을 썼다. 그녀의 잠을 지키기 위해 옆에 있기로 하자 오래 기다렸던 달콤함이 손을 내밀었다. 조금 전까지 바닥으로 짓누르던 잠이 순식간에 달아난다. 순간, 모든 게 완벽하다.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이 내 다리를 스치니 실크가 온몸을 감싼다. 잠시, 이 평화에 모든 것을 맡겨 보기로.



그렇지! 할 일이 떠올랐다. 챙겨 온 책을 꺼내 나란히 자리했다. 어떤 책부터 읽을까 고민하는데 갑자기 듣고 싶은 음악이 마음에서 요동친다. 이것부터 해결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 이어폰을 찾아서 조심스럽게 버튼을 누른다. 한 귀에만 꽂은 이어폰은 곧이어 나머지 귀에도 장착해 완벽하게 주어진 나만의 세상에 음악을 덮어 이 순간을 가뒀다. 한 줌도 새어 나가지 않았으면.



책을 빠르게 훑으며 바람을 만들어본다. 손바닥으로 종이를 문질러 감촉을 느껴본다. 이 활자에 어떤 느낌의 샘을 마주할는지 자꾸 마음이 부푼다. 처음부터 심상치 않다. 한 문장, 한 단어, 작가의 혼잣말 같은 말도 놓칠 수가 없다. 비슷한 경험을 해봤지만 결코 표현할 수 없었던 생각의 줄기를 또렷하게 바라보며 기대를 담아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긴다. 생각의 입체를 마주할 때마다 접착 종이를 붙이고 다시 읽겠노라 다짐하기를 반복한다.



이따금 들리는 버스의 매연 소리, 오토바이의 바쁜 움직임, 누군가를 향한 어떤 외침이 번갈아 가며 나만의 세상에 추파를 던진다. 잠깐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니 커튼으로 다듬은 온화한 빛에 안겨 아기는 새근새근 잘도 잔다. 살포시 부풀었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바람의 물결, 조용히 움직이는 선풍기가 너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라고 전한다. 이 순간을 잠시 멈출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책장을 넘기는데 '끼익' 방문이 열린다. 이번에는 잠시 쉬었다 가란다. 거실에서 저녁 메뉴를 의논하고 서둘러 복귀했다. 낌새를 알아챈 것인지 아기가 등을 돌린다.



동공이 커지고 목이 몹시 마르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아기의 미간이 옴짝 움직이더니 갑자기 눈을 부릅뜬다.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이내 눈을 감는다. 그녀는 아직 꿈속에 있을 것이다. 예감은 적중했고 안도로 책을 덮었다. 이번에는 다른 책을 펼쳐 이어가 본다. 또 다른 세상에서 걸음을 나아가며 과거 속 나는 어땠는지,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펼쳐질 미래에 원하는 모습을 그리기를 반복한다. 왜 이런 순간은 더 자주 오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러하기에 이토록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 걸까 싶다.



시간은 묵묵히 흘렀고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꽤 긴 시간 나를 채우니 그간 침묵을 이어온 영혼이 숨 쉬는 것 같다. 알고 있다. 또다시 흔들릴 것을. 그때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이렇게 자신감이라는 샘에 신선한 물을 부어 놓았다. 아, 어찌해야 하나. 오늘을 자주 탐할지도 모르겠다. 이를 위해 내 모든 잠을 빼앗을 수 있다면 너무 욕심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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