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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Jul 06. 2020

아기 엄마도 자기 계발 하고 싶다

매일 흔들리는 균형의 추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먼 훗날 아이가 내 품을 떠나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망상에 사로잡힌 채 어떤 것도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육아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출산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에는 인류의 육아사가 담겼으리라. 역시 몰랐기에 당당했던 나는 처음부터 육아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뜨거움은 꽤 오래 이어진 것 같다. 오로지 잘 키우기 위해 그리고 아기의 모든 것을 기록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다. 첫돌까지 서투른 날들이 반복되었지만, 어떻게든 시간은 흘렀다. 핸드폰에는 아이 사진만 가득하고 어떤 대화든 아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기가 자라는 만큼 나름 능숙한 엄마가 되어 갔다.



세 돌을 앞둔 작년 겨울. 밤이 길어 캄캄한 새벽이었다. 유독 잠이 일찍 달아났던 날이다. 다가올 새해를 생각하니 문득,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먼 훗날 아이가 내 품을 떠나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망상에 휩싸인 하루였다.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잘 자라는 아기를 보며 뿌듯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외로웠다. 그 외로움의 원천은 내가 나를 상실한 자리였다. 생각해보니 건망증도 생겼고 단어도 기억이 안 났다. 이러려고 공부를 했나, 이러려고 회사를 그만둔 건가. 현재의 나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며칠간 그 소용돌이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그러던 어느 아침. 어디선가 기회가 찾아왔다. 온라인으로 함께 책을 읽는 모임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것도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때부터 직감대로 했다. 예전 같았으면 고민하다 도전을 주저했을 텐데, 나도 모르게 그냥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날 이후, 반년이 넘는 지금까지 나는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으로 매일 뭔가를 하고 있다. 그 뭔가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이 주지만 모두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처음에는 마냥 신났다. 아기가 잠든 시간, 자리에 앉아 책 한쪽 읽는 순간 자체가 행복했다. 그 어떤 일도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독서 후 생각을 하고,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자꾸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고 나도 모르게 또 다른 모임을 신청하고 결제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두 개씩 할 일이 늘어나다 보니 내 하루의 축이 극단의 육아에서 극단의 자기 계발로 향하고 있었다.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순간에 몰입한 나머지 네 살 아기에게 이해를 바라고 있었다. 아기는 울며 안아달라고 했다. 집안일은 쌓여 갔는데 이상하게 자꾸 회피하고 싶었다. 감정이라는 홍수로 이성이 잠긴 적이 많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로지 내 만족을 위해 가족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잠든 아기에게 숱하게 사과했다. 이런 날이 점차 자주 반복되었는데, 그럴수록 엄마인 나를 찾아왔다. 내 역할을 잊은 것 같았다. 그건 내 가슴이 원하지 않은 일이었다. 네 살 아기 엄마도 결국 나였다. 



주말에 시험을 치러 다녀왔다. 올해 초에 신청한 자격 과정을 이수하고 마지막 점검 단계에 참여한 것이다. 오랜만에 임하는 시험이라 나름 준비를 했는데도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녹초가 되어 가족을 만나는 길, 온종일 나를 기다렸을 아이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 잘 다녀왔느냐고, 보고 싶었다고 나에게 안겼다. 마치 나를 다 이해하는 것처럼. 순간, 결과가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나를 응원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과 내가 어떤 도전을 했다는 자체가 큰 의미가 된 날이었다.  



이제는 둘 다 놓을 수가 없다. 나에게 허용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를 위해 매일 육아와 자기 계발 두 가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가족에게 항상 감사하기

지나치지 않도록 유의하기

힘들 때는 쉬어가기 

도와달라고 요청하기 

그리고 처음을 생각하기 


이렇게 생각하면 아기를 키우면서 나도 함께 자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엄마인 내가 자기 계발을 하는 이유가 뚜렷해졌다.


훗날 도전하지 않은 것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미래에 펼쳐질 나만의 점을 그어가기 위해

그리고 지금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34년 만에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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