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보여주지 못한 내 마음 - 나의 꿈
20대 후반이었던 나에게는 회사가 전부였다. 영원할 것 같던 회사생활이었다. 하지만 입사 4년을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그곳을 떠났다. 청년 백수가 두려워 쫓기듯 살며 가까스로 입사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왜 그랬는가 하니 사람이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러니 일에도 흥미를 잃었다. 모든 것에 신경이 곤두섰고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인상 쓴 나를 마주하니 소름 돋았다. 회사원 시절 영혼이 메말랐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나 깨달았다. 마침 인생의 갈림길에 섰는데, 내 선택은 뼈를 묻겠다던 회사를 버리는 것이었다. 동시에 지금껏 떠밀리며 살았던 지난날의 나도 날려 버렸다. ‘어디 고등학교에 가야 한다, 취업이 잘 되는 전공을 해라, 여자들이 다니기 좋은 직장에 들어가라.’ 이런 이야기를 지나치게 귀담아듣고 나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살았던 나였다. 서른 살부터는 내 꿈을 다시 찾겠노라고 패기 넘치는 소리를 해댔다. 그것도 잠시, 내 전부였던 옷을 벗으니 다시 맨몸이 되었다. 이럴 거라는 걸 알았지만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세상에서 내가 잊힌다고 느낄수록 두려워졌다.
역시 퇴사는 미친 선택이었을까. 소속이 없어진 나는 지난 선택이 의심스러웠다. 전업주부가 되니 사회가 집안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갑갑했다. 연차휴가 같던 즐거운 시절도 잠시, 어느 순간 공허함이 몰려왔다. 다시 일을 하려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배 속에는 아이가 있었고 이 아이는 내 손으로 키워야 했다. 몇 달 후 엄마가 된 나는 처음 접한 피곤함 속 행복을 누렸지만 육아가 익숙해질수록 태초의 내가 꿈틀거렸다. 급기야 밖으로 나오려는지 세상으로 향한 문을 세게 두드렸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하지? 내 꿈은 뭐였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아이에 관한 기억뿐이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나는 침체하였는데, 처음 겪어본 이상한 경험이었다. 아이와 함께이기에 분명 행복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우울함에 휩싸였다.
극도의 두려움에 휩싸여 아무것도 못 하던 어느 날, 우연히 읽은 책 <파이브>에서 “오로지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글이 나를 찾아왔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평범한 말이 운명처럼 다가온 순간이었다. 잠자던 자아가 튀어나오려던 시기,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를 알아본 책이었을까. 그 책은 나 자신에게 여러 질문을 던져 주었다. 답변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내 꿈이 실체가 보이는 것 같았다. 가슴 뛰는 삶, 진정 그 일을 생각할 때 나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일. 되돌아보면 꿈을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추상적이었다. 하지만 꿈을 찾으니 진정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니 멀게만 느껴졌던 꿈이 드디어 손에 잡히는 기분이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꿈을 글로 옮기니 드디어 꿈과 내가 서로 마주한 것 같다. 마치, 아주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그런 사람이기를
우리 아이가 훌쩍 자란 어느 날
문득 내가 해준 요리가 먹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만들어서 기다리도록.
집안에 맛있는 음식 내음을 채우고
따뜻한 포옹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기를
그대의 어깨가 무거워질 때마다
마음을 함께 들어주며 별일 아니라며
걱정을 저 멀리 날리도록.
당신의 꿈을 지지하며
혼자의 시간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기를.
당신이 내게 그래 준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큰 고귀함을 선물해주신 부모님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고
같은 공간에 웃음을 채우도록.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기억을
많이 만드는 사람이 되기를
내 어린 날 사회인이 되기 위해 받았던 손길을 잊지 않고
그 시절을 보내는 후배들에게
존재만으로도 도움이 되도록.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끌림에 휩싸여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글을 써 내려가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
내 글이 누군가에게 희망과 온기가 된다면
감사를 새기며 처음을 기억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