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저예요
진정한 자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글을 쓰고자 준비했어요. 일종의 자기소개를 하는 셈인데 지금껏 저를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언제나 망설였거든요. 자기소개를 자주 하던 청년 시절에는 이름과 나이, 무엇을 전공하고 지금 어떤 일을 한다는 것으로 저를 알렸어요. 말을 하면서도 어딘가 아쉽더라고요. 이런 방식이 맞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지만 자기소개에도 공식 같은 접근은 무난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던 것 같아요.
하루키는 <잡문집>에서 좋아하는 ‘굴튀김’으로 자신을 보여주더군요.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방법을 물어본 독자에게 본인만의 굴튀김을 찾으라네요. 좋아하는 음식을 통해 나를 알 수 있다고요. 그 글을 읽자마자 답을 찾고 싶었어요. 나의 굴튀김은 무엇일까, 생각할수록 굴튀김만 먹고 싶을 뿐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어요. 돌아보니 그러네요. 어떤 방식을 적용하든 나를 알기란 쉽지 않아요. 그래도 며칠을 고민한 결과, 드디어 저의 굴튀김을 찾게 되었어요.
제철 음식을 즐기는 편이에요. 여름이 깊어질수록 답은 감자네요. 쪄서 먹고 볶아 먹고 지져 먹고 여러 방법을 쓰지만, 그중에서도 감자전을 가장 좋아해요. 굵은 감자를 서너 개 골라서 껍질을 벗기고 강판에 열심히 갈아요. 믹서에 갈면 팔은 아프지 않지요. 하지만 서걱거리는 식감이 좋아서 강판을 고집한답니다. 팔에 힘을 잔뜩 주어 갈다 보면 어느새 오른팔이 더 두꺼워진 것 같은 신체의 비대칭을 걱정하게 돼요. 그래도 괜찮아요. 감자전이 곧 완성되거든요. 감자가 곱게 갈리면 그사이 물이 고였을 거예요. 그 물을 조심스럽게 따라내요. 그 위에 쫑쫑 다진 애호박과 양파를 넣고요. 감자 전분 반 숟가락을 넣고 소금을 한 꼬집 넣어 골고루 섞어요. 감자의 전성기는 여름이기에, 반죽이 된 모습도 찬란할 거예요. 갈변도 잘 안 되고 특유의 뽀얀 막걸리 색깔이 꽤 오래 유지되거든요.
자, 그럼 부쳐볼까요.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둘러주세요. 튀기듯 구워주면 더 바삭해져요. 광장시장에 유명한 빈대떡 아시나요? 그 빈대떡의 비밀처럼 저의 감자전도 기름이 낙낙히 필요해요. 손바닥보다 작게, 지름 10cm 정도로 반죽을 골고루 펴요. 센 불을 유지하세요. 지글지글 감자와 기름이 만나는 소리를 낼 거예요. 자리를 지키다가 얇게 편 반죽 가장자리가 노르스름하게 변하면 으쌰! 하고 잘 뒤집어줘요. 뒤지개로 능숙하게, 한 번에 뒤집어 주는 게 중요해요. 너무 크게 부치면 찢어지겠죠? 그래서 손바닥보다 작게 부치게 되었어요. 골고루 잘 익고 귀여워서 이 모양을 선호해요. 한번 뒤집으면 불을 줄여주고요, 타지 않게 확인하면서 양면이 노릇하게 익으면 접시 위에 올려요. 기름이 많으니 키친타월이나 종이호일로 기름기를 제거하면 좋을 거예요.
여름이지만 더위를 잊어요. 감자전만 생각하면 포근해지거든요. 가장자리가 바삭! 하고 속은 쫀득! 한 감자전이 하나씩 완성될수록 부모님이 떠올라요. 제가 살던 동네는 여름이면 감자가 지천이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감자를 많이 먹었거든요. 그렇게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예요. 몹시 더운 날에도 감자전은 반갑지만 비가 내리는 날에는 접시에 운치를 더하네요. 엄마는 어떻게든 더 훌륭하게 부치시려고 여전히 연구하신답니다. 매콤함을 위해 썰어 넣은 고추가 너무 맵다고 조심하라고 야단이시지만 맵든 탔든 찢어졌든 엄마의 감자전은 언제나 사랑이에요. 그 감자전을 배우고 싶어서 몇 년간 물어보고 연습했지요. 노력의 결과인지 제가 만든 감자전을 저희 아가도 좋아해요.
막걸리는 아빠의 소울 푸드예요. 우리 가족이 함께 만나면 만찬에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랍니다. 친정 가는 날, 아빠는 그 날의 막걸리를 특별히 엄선하세요. 내 고장 막걸리가 최고라 말씀하시는데요, 소백산의 깨끗한 물과 공기를 담은 것인지 맛이 다르긴 해요. 인정! 감자전을 기다리는 동안 옹기종기 밥상에 모여 앉아요. 가장 맑은 부분, 그러니까 첫 잔은 사위에게 선사하신 후 이윽고 제 잔에도 뽀얀 막걸리가 차오릅니다. 엄마의 감자전과 아빠의 막걸리는 그야말로 금상첨화예요. 따뜻한 한 점과 시원한 한 모금은요. 하. 뭐랄까, 이걸 먹기 위해 태어난 기분이라면 맞는 표현일까요.
감자전과 막걸리를 먹는 저를 보신다면요, 아마도 제가 가장 편안해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고향의 흙과 바람, 부모님의 사랑을 버무려 만든 음식이니까요.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저는 감자전을 먹었어요. 예쁜 감자 4개를 갈아 지글지글 부쳤답니다. 앗, 그런데 다 담고 보니 접시가 넘칠 것 같아요. 주부 5년 차가 되니 저도 모르게 손이 커졌나 봐요. 아, 아쉬워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네요. 맛있는 음식은 나눠 먹으면 더 즐겁다고 부모님은 항상 말씀하시니까요. 언젠가 이 음식을 함께 한다면 참 좋겠습니다. 당신의 굴튀김도 알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