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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Aug 10. 2020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법

맛있는 음식을 그대와 함께 한다면

면접을 보러 다니면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보통 난해한 질문에 답을 찾으면 그렇게 되는데, 내게 그 질문은 취미 활동에 관한 것이었다. 평소 즐기는 것을 묻는 것만큼 사소한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나는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의 취미를 말하는 기분이었다. “사진 촬영을 좋아해요. 독서를 즐겨요.” 이 두 가지로 돌려막았으나 답변을 하면서도 내가 진정으로 카메라와 책을 즐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익히 들은, 취미라고 하기에 적당할 것을 골라와 면접을 위한 형식적인 답변을 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혹시나 면접관 중 그 취미에 고수가 말을 걸면 어찌하나, 심도 있는 질문이 들어오면 어쩌나, 매번 양심이 흔들렸다.



구직을 위해 2년간 취준생으로 살면서 면접이야말로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해야 먹힌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부터 ‘날 뽑든가, 아니면 말고.’ 이런 식으로 임했는데, 몹시 긴장한 탓에 쉬운 답변조차 생각나지 않았던 나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취업이 임박할 무렵, 어떤 기업의 면접장에서 역시 단골 질문이 나왔다.


“평소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어요?”


순간 내 머릿속에서 사진과 책 따위는 없었고 친한 친구와 음식을 만들어 술을 한잔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럴 만한 사연을 설명하자면, 당시 같이 자취하던 친구와 주말에 블로그를 찾아 요리법을 숙지 후 고심 끝에 장을 보고 오랜 시간에 걸쳐 생애 첫 요리를 해냈다. 낮은 상 위에 그날의 접시를 올려놓고 축배도 얹었다. 그렇게 20대 중반의 캄캄함을 덜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다. 진정 이 시간만큼은 내 컴컴한 터널 같은 시절에 잠시 쉬어가는 맑은 샘 같았다. 협소하더라도 요리를 하는 공간이 있어 다행이었고, 적은 돈이라도 장을 보는 시간이 소중했다. 무엇보다 음식을 나누는 친구와 함께이기에 감사했다.


“저는요, 음식을 만들고 즐겁게 먹으면 행복해요. 거창한 것은 아니고요, 같이 사는 친구와 함께 인터넷을 뒤져가며 최선을 다해 만들고 ‘짠’하고 잔을 부딪치면 그렇게 좋더라고요. 이게 저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에요.”



그냥 내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면접관들이 웃었다. 보통 답변이 식상하면 싸한 분위기가 돌면서 그분들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데, 이런 따뜻한 분위기라니. 그리고 경험상 내가 웃음을 선사한 면접은 결과가 좋았다. 예상대로 그 면접은 합격이었고 그날 이후로 공식적으로 답변하는 내 취미는 ‘요리’가 되었다. 얼마 후 취업에 성공해 더욱 각박해진 사회를 이겨낼 때도 친구와 음식을 만들고 함께 들었다. 취준생 시절과 달라진 점은 월급이 오른 만큼 재료의 질도 높아졌다는 것(이를테면 유럽산 삼겹살이 아닌 한돈), 그리고 사회인의 슬픔 탓에 음식에 눈물이 떨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둘 다 결혼을 하고 각자 가정을 이루었다. 주부 5년 차라 그런가, 요리가 피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는 내 취미가 매일의 업이 되었기에 생긴 현상이라 생각한다. 매일 하는 요리와는 별개로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특별한 요리를 한다는 그 자체는 생각만으로도 두근거린다. 아울러 함께 식탁을 공유하는 시간은 더없이 즐겁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부부는 종종 친한 지인을 집으로 초대하곤 한다.



인생 별거 있을까? 인생을 재미있게 살려면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이는 돈과 연결되거나 업무가 된다면 순수함이 바랠지도 모르겠다. 아직 그런 일을 못 찾았다면 잠시 시간을 갖고 생각을 해보자. 나는 무엇을 할 때 마음이 편안한가? 어떤 시간이 기다려지는가? 면접이든 나에게든 솔직함이 중요하다. 타인의 취미를 흠모만 하기엔 나만의 재미가 저 멀리서 기다린다. 20대 시절, 지긋지긋한 면접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이 답이 그때나 지금이나 내 삶에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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