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오늘과 나의 옛날을 잇다
2017
“태리야, 오늘은 우리 도서관 가보자.” 도서관은 또 뭐지? 오늘도 놀이터에서 놀 줄 알았는데 엄마가 초록색 버스를 타고 저어기 가보자고 하신다. 엄마가 좋아하는 로기*를 탄다니 재미있을 것 같다. 그곳에는 아기 도서관이 있어서 내가 좋아할 거라고 하셨다. 맘마를 먹고 외출 준비를 마쳤다. 아장아장 걷다가 엄마 품에 안겨 버스를 기다렸다. 아빠 차보다 엄청나게 큰 버스를 탔다. 엄마 무릎에 앉아 차창 밖을 구경했다. 빨리 움직이는 바깥 배경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바람이 불어 은행잎이 노랗게 비처럼 내린다. 엄마와 자주 가는 빵집도 휙 지나간다. 언니 오빠들은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가고 친구들은 유모차에 들어가 있나 보다. ‘삐~’ ‘끼익!’ 소리가 나고 우리는 다섯 번째 정류장에 내렸다.
아주 커다란 건물이 보인다. 큰길을 건너 도서관에 가까워졌다. 갑자기 뛰어보고 싶은 넓은 공간이 있었다. 나는 아장아장 뒤뚱뒤뚱하며 오늘 못 채운 걸음 연습을 마음껏 해본다. 문이 보인다. 엄마 품에 안겨서 들어가 보니 갑자기 사방이 조용하다. 이상해서 두리번두리번해본다. 엄마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여기서는 조용히 해야 해”라고 하셨다. 엄마는 무슨 글씨를 보더니 계단으로 가자신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한 발씩 한 걸음씩 천천히 계단을 올라봤다. 어휴 힘들다. 안 되겠어서 두 팔을 벌려 안아 달라고 했다. 그렇게 나머지 계단은 엄마 품에 안겨 올라갔다. 드디어 어린이 자료실에 도착했다.
키즈 카페에 온 건가? 재미있는 그림이 많고 내가 앉을 수 있는 책상과 소파도 있었다. 나는 신발을 벗자마자 그곳에서 달려보았다. 엄마는 또 “쉿~!” 여기서 뛰면 안 된다고 하셨다. 아무도 없는데 좀 뛰면 어떤가. 나는 달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이리저리 앉아 보았다. 엄마가 책을 고르셨다. 나도 골라볼까? 총총총총 여기서 하나, 총총총총 저기서 하나, 총총총총 이것도 뽑고 저것도 뽑고. 엄마 앞에 책을 쌓아 보았다. 엄마가 읽어주신다고 했는데 나는 책 뽑는 놀이가 좋다. 엄마는 책을 읽고 계셨다. 나도 좀 읽어볼까? 어떻게 하는 거지?
갑자기 집에 가고 싶다. “이잉~~” “벌써 집에 가려고? 아쉽지 않겠어?” 많이 놀아서 피곤하다.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역시 우리 엄마는 금세 포기하신다. 아기 화장실에서 기저귀를 보송보송하게 바꾸고 신발을 신었다. 1층 휴게실에서 챙겨 온 간식을 먹고 가자고 하셨다. 엄마의 가방에는 내가 좋아하는 짜 먹는 요구르트와 과자가 많이 있었다. 냠냠 짭짭 오늘 한 일 중에 가장 재미있다. 다시 로기를 타러 가는 길에 또 뛰고 싶었다. 후다닥 뛰려는데 엄마가 뒤에서 잡으러 오셨다. 그새 바람이 차져서 엄마 품에 들어갔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니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아까보다 버스를 짧게 탄 기분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세 살이 되었고 어린이집이 끝나면 엄마와 놀이터에서 놀았다. 조금만 밖에 있어도 더운 여름에 엄마는 놀이터 뒤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쉬다가 가자셨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는 그곳에는 무슨 수업을 마쳤다는 언니 오빠들이 많이 있었다. 아기 때 가본 큰 도서관보다 작았지만 내가 앉을 책상도 있고 그림책도 제법 있었다. 친구로 보이는 아기는 엄마 무릎에서 책을 읽었다. 나도 엄마가 책을 읽어주셨다. 그렇게 놀이터와 도서관에서 놀다가 엄마의 책 몇 권을 빌려 집에 가면 아빠와 함께 저녁 맘마를 먹었다.
그해 가을에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엄마와 함께 새로운 동네 구경을 하다가 작은 도서관을 찾았다. 시장도 있고 놀이터도 있고 도서관도 있는 만능 그곳은 엄마와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시장 구경을 하고 작은 도서관에 들렀다. 인형의 집처럼 2층으로 된 모습이 신기했다. 나는 엄마와 1층에서 책을 보다가 몹시 궁금해져서 계단을 살금살금 올라가 2층 구경을 해봤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그곳에 있어서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면 도서관에서 늘 그 책을 보고 집에 갔다.
어느 날은 물씬 쌀쌀해진 날씨에 손이 차고 코가 빨개졌다. 엄마와 함께 들어간 도서관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도서관에 계시는 선생님이 아기 춥다고 보일러를 틀어주신다고 하셨다. 엄마와 함께 앉아서 책을 보는데 곧 바닥이 따뜻해졌다. 작은 담요가 옆에 있어 엄마가 무릎 위에 올려주시니 아까 추위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노곤해지면서 추위가 사라졌다.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또 보고 집에서 볼 내 책과 엄마 책을 빌렸다. 그날은 꽤 추워서 엄마 품에 안겨 가는데 어떤 예쁜 언니가 우리가 나갈 때까지 문을 잡아 주었다. 엄마는 언니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나에게는 언니가 참 착하고 예쁘다고 하셨다. 그 언니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가는 것 같았는데 엄마는 나중에 저 언니처럼 나도 누구를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요즘 매일 집에만 있다 보니 내가 어렸을 때 다녔던 도서관이 생각난다. 작은 도서관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책은 자꾸 찢어지던데 무사히 잘 있는지 궁금하다. 오늘은 책을 읽어주시던 엄마가 먼저 낮잠을 주무셨다. 켜진 텔레비전에는 마스크 쓰고 다니는 사람들만 있던데, 나쁜 병균이 사라져야 바깥에 나갈 수 있단다. 네 살 꼬마도 걱정이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좋은 날씨에 엄마와 산책도 하고 책 보러 가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꼬마버스 타요의 친구로 초록색 버스다
1987
열두 살 무렵부터 시립도서관으로 놀러 다녔다.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어서 해치우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아니면 동생과 함께 책을 핑계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꽤 높은 언덕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큰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산과 밭 사이에 멀쩡한 건물이 있다니 조금은 어색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멀리서 들려오는 가지각색의 소리가 호기심을 불러왔다. 이 모든 것을 우리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새로웠다. 그곳에는 책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매점도 있었다.
1층에 있는 어린이 열람실은 우리만의 장소다. 푹신한 소파가 있고 친구들과 함께 앉을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벽을 따라 우리들의 키에 맞게 낮은 책꽂이에 알록달록하고 크기가 제각각인 책들이 많았다. 2층과 3층에는 어른들의 책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 그곳이 궁금해서 몰래 가보니 정말 엄숙한 도서관 그 자체였다. 숨소리도 내면 안 될 것 같은 적막감에 책들은 거무죽죽했고, 심각한 표정의 어른들이 무슨 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았다. 더 있다가는 숨이 막힐 지경이라 어서 빠져나왔었다. 신나는 마음으로 지하에 가면 작은 매점이 있었다. 컵라면과 과자가 많았고 떡볶이도 한 접시씩 팔았는데 인기 메뉴였다. 어떤 날은 떡볶이가 없어서 아쉬웠다. 떡볶이 먹으려고 도서관에 갔던 것 같은데 말이다.
다들 놀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는지 주말 오후면 같은 학교 친구들로 도서관이 북적댔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도서관에서는 ‘정숙’하려고 노력했다. 발소리도 살금살금, 친구와의 대화도 소곤소곤. 그러다 어떤 무리는 별안간 이곳이 도서관이라는 생각을 잊었는지 크게 웃고 떠들어서 어른에게 혼나고 있는 장면도 몇 번 목격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사서 선생님 한 분은 우리 사이에 무서운 어른으로 통할 정도였다. 그분이 어린이열람실에 계시면 자동 정숙 모드였다. 척척박사 친구를 따라 나도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골랐다.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친구 옆에서 나는 책 읽는 친구의 모습을 구경했다. 너무 신기했다. 책에 빠져서 재미있다고 하는 그 모습에 나는 놀랐다. 내가 골라오는 건 영 재미가 없는데 그 친구는 책을 펼칠 때마다 그 세상에 다녀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동상이몽 독서시간을 마치고 집에서 볼만한 책을 골랐다. 세 권을 빌려 1주일 정도 대여 기간이었던 것 같은데 읽지도 않고 그대로 반납하는 책이 더 많았다.
책을 빌리려면 카드가 필요했다. 처음으로 도서관 회원카드를 만들었다. 앳된 증명사진을 챙기고 몇 가지 정보를 적어 사서 선생님께 신청서를 내니 얼마 후 하늘색 배경에 내 사진과 바코드가 찍힌 도서관 회원증을 받았다. 어린 마음에 그 회원증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책 세 권을 신중히 고르고 회원증을 내밀었다. 사서 선생님은 ‘삑’ 소리와 어디 나무 같은데 책을 몇 번 문지르면 대출 절차가 끝났다. 처음으로 ‘대출’이라는 단어를 익힌 곳이다. 대여 기간을 지키려고 주말에 또 도서관에 갔다. 언젠가 연체에 연체하는 바람에 된통 혼나기도 했다. ‘연체’라는 단어도 알게 되었다. 반이 바뀌고 새로운 친구와 다시 책을 빌리고 그냥 반납하며 우리는 도서관과 친해졌다.
새 천년이 도래하고 나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친구 아버지께서 종종 그곳에 우리를 차로 데려다주셨다. 우리는 1층을 넘어 높은 층에 있는 칸막이 열람실에 있었다. 시험공부를 핑계 삼아 늘 그렇듯 머리 식히는 시간이라며 과자를 먹고 휴게실에서 떠드는 시간이 더 많았다. 갑자기 컴퓨터를 하고 싶을 때는 시청각실을 애용했다. 자리 맡기도 힘든 그곳은 집에서는 자주 끊기던 인터넷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글짓기 숙제가 있던 날은 작성한 한글 97 파일을 플로피디스크로 저장하기도 하고, 갑자기 보고 싶은 영화도 한 편 끝나면 해가 지고 있었다. 제법 컸다고 거무죽죽한 책들 사이에서 책을 고르고 읽고 독후감도 작성하며 중학교 방학을 보냈다.
도서관은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큰 도로로 나와서 작은 산을 넘어 숲 속 오솔길을 걷다 보면 그 길 끝에 밭이 보이고 그 밭 건너편에 도서관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그 길이 좋았다. 봄과 가을에는 날씨가 좋아서 그 길이 좋았다. 초록색 새순도 예쁘고 아카시아 향이 백미였다. 예쁜 단풍잎을 구경하며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마음껏 웃으면서 익숙한 길을 걸었다. 여름에는 풀이 제법 자라서 수풀이 우거진 녹음을 보고 산딸기도 보며 걸었다. 시원한 매미 소리는 BGM이었다. 겨울에는 산길이 위험하다고 길을 빙 돌아갔다. 주택가에 눈이 녹으면서 얼어버린 빙판길을 피하며 가다 보면 오솔길 따라 걷는 시간의 2배는 족히 걸렸다. 해가 일찍 지던 겨울에 시간도 걸리니 겨울의 도서관은 기억이 가물거린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시립도서관으로의 발길이 끊겼다. 학교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고 시내에 열람실과 독서실이 있어서 더는 어린 시절의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대학 시절 중앙도서관도 있고 결혼을 하며 작은 도서관 주변에서 살고 있지만 예절을 배워가던 10대 때의 도서관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가끔 도서관에서 커다란 가방을 멘 초등학생 친구들을 볼 때면 눈을 뗄 수가 없다. 20년이 지나도 도서관이 품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