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오늘과 나의 옛날을 잇다
거실에 날짜 지난 신문지를 몇 장 겹쳐서 펼쳐 놓는다. 뒤 베란다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내 키만 한 길이의 두꺼운 나무 도마가 등장한다. 뒤이어 그 길이와 비슷한 나무 밀대, 일명 홍두깨가 따라온다. 이 무거운 두 가지가 신문지 위에 올라오면 엄마는 드디어 밀가루와 물을 준비해 자리를 잡으신다.
엄마의 반죽은 늘 신기하다. 커다란 그릇에 밀가루 한 봉을 탈탈 넣고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손이 바삐 움직인다. 또 다른 마법의 가루인 생콩가루도 같이 뿌리면 고소한 냄새가 벌써 코끝에 머문다. 처음에는 손가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데 금세 반죽 모양이 만들어지면서 지저분하게 찢어버린 종잇조각 같은 것들은 사라진다. 계량도 없이 감대로 밀가루와 물의 조화를 자연스럽게 이루면 어느 순간 하얗고 매끈한 피부의 커다란 밀가루 반죽이 완성된다. 반죽 과정을 현장에서 넋 놓고 지켜보던 나는 그 밀가루 반죽을 그냥 만져보고 싶다. 하지만 그 반죽은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칼국수가 될 몸이라 내가 함부로 찔러 볼 수가 없다.
반죽이 끝나면 곧이어 두 번째 작업이 시작된다. 기다랗고 커다란 나무 도마 위에 식빵만 한 반죽을 올려놓고 엄마는 몇 번이나 손으로 만져본다. 그리고 드디어 가장자리부터 정성스럽게 밀대로 굴려서 민다. 나무와 나무가 부딪히는 정겨운 소리가 들린다. 반죽이 붙지 않도록 간간이 밀가루를 뿌리며 점차 얇게 만드신다. 그 두꺼운 반죽이 어느새 바닥이 비칠 정도로 얇고 넓은 밀가루 종이가 된다. 그것은 커다란 도마를 지나 신문지 영역으로 확장해 나간다. 적당히 얇은 두께가 되면 그 종이를 반으로 접고, 또 같은 방향으로 반 접기를 반복한다. 그러면 어느새 손바닥 폭만 한 크기로 된, 홍두깨만큼 긴, 몇 번 접어 겹겹이 말린, 국수 바로 전 단계의 순간으로 변신한다.
잘 드는 칼로 끝부터 송송 썬다. 면 두께가 두껍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신다. 송송송송 일정한 속도와 리듬이 나무 도마를 거치면서 내 귀에는 경쾌하고 맛있는 소리가 들린다. 완성된 칼국수 면이 붙지 않도록 면을 헝클는 것을 잊지 않으신다. 커다란 쟁반에 방금 완성한 엄마표 손칼국수 생면이 수북하게 쌓인다. 곧 뜨거운 멸치육수에 그 면이 들어가고 감자와 애호박을 채로 썰어 넣고 간을 하면 만드는 과정 구경이 더 기억에 남는 손칼국수가 완성된다.
“아가야, 오늘은 밀가루 반죽 만들까? 점심에 수제비 만들어 먹자.” 우와 신난다. 오랜만에 반죽 놀이한다. 기뻐서 방방 뛰었다. 엄마에게 언제 하는 거냐며 물어보니 자꾸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신다. 어서 반죽 만지고 모양 놀이하고 싶은데 시시하게 신문지나 깔아 달라고 하신다. 어서 신문지를 펼쳐본다. “모양 찍기 장난감 가져오자” 내가 좋아하는 모양 맞추기 장난감인데 반짝반짝 별, 사랑해요, 동그리, 네모, 세모가 있다. 방에서 열심히 찾아서 내 손에 한꺼번에 쥐고 신문지 위에 올려놓는다. 엄마는 그 사이에 나의 소중한 모양 장난감을 설거지하신다. ‘대체 언제 만드는 거지?’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엄마가 시작하실 모양이다.
저울이라고 말하는 기계에 접시를 올리고 밀가루를 마구 쏟는다. 앗? 많이 쌓인 것 같은데 엄마는 좀 더 넣는다. “자, 밀가루 반죽을 만들려면 이렇게 계량을 하면 좋아. 밀가루는 150g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오케이 넘어가자. 그 밀가루를 큰 볼에 옮기는 것은 내가 했다. 뿌듯하다. 그리고 선이 그어져 있는 컵에 물을 담는다. “물은 90cc를 넣으면 반죽하기 딱 좋아.” 또 모르겠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 영광스럽게도 물은 내가 넣기로 한다. 엄마가 물을 부어달라고 하면 천천히, 조금씩 부어본다.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때때로 들리지만 뭐 어떤가. 그렇게 엄마의 바쁜 손가락에 가루가 덕지덕지 묻는다. “엄마 손에 밀가루 무더쪄.” “응, 괜찮아. 반죽 만들면서 금방 없어져.” 정말 신기하게도 깨끗하고 예쁜 반죽이 금방 완성된다. 엄마가 마법을 부린 건지 분명 가루만 있었는데 반죽이 되었다.
신문지 위에 내 도마를 놓고 반죽 반을 떼서 올려 주신다. 손가락에 하얀 가루가 붙을까 봐 무서웠는데 엄마는 걱정하지 말고 만져도 된다고 하신다. "반죽 만지니까 어때? 말랑말랑해?" "응, 말랑말랑해. 초콤 챠가워." 엄마와 함께 손으로 꾹꾹 눌러 넓게 만들고 모양 틀로 도장을 찍었다. “우와 사랑해요다.” 옆에서 별 모양을 예쁘게 만드는데 나는 영 잘 안된다. 엄마와 함께 힘을 합쳐 꾸욱 누르니 나도 엄마처럼 예쁜 사랑해요 모양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두 손을 비벼서 길게 길게 국수를 만들어 보고 다른 모양도 찍으면서 나의 작품을 하나, 둘씩 완성했다. 아까 뗀 반죽은 엄마가 냉장고에 넣어 두셨다. 놀이 끝나면 수제비로 만들어서 감자와 함께 보글보글 끓일 거라고 하셨다.
옷과 신문지에 하얀 가루가 묻었지만 밀가루 반죽의 느낌은 언제나 참 좋다. 계속 만지고 싶은 그 느낌과 반죽의 냄새가 기억에 남는다. 조물조물 만지다 보니 배가 고프다. 고개를 들어보니 수제비를 끓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쫄깃쫄깃한 수제비와 포슬포슬한 감자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