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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Aug 21. 2020

저에게 행복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내 안에 들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

저에게 행복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망설임이 마중 나올 거예요. 대답을 위해 이리저리 고민을 해봤지만 뾰족한 답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네요. 생각해보니 난 행복하다는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가끔은 의식적인 행복을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닌지 의심을 하게 되니까요. 뭐, 어찌 되었든 행복을 당장 정의할 수 없으니 행복에 대한 생각을 하나씩 꺼내보려 해요.



어쩌면 행복은 불안이라는 감정에 둘러싸인 것 같아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행복을 인정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스스로 행복을 받아들이는 순간 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질까 봐 두려웠거든요. 그리고 불행으로 이어질 것 같았어요. 이처럼 저는 애써 행복을 밀어냈어요. 불안에 휩싸여 홀로 감내하려던 시절이 있었어요. 온갖 걱정으로 하루를 채우고 불안함이 제 의지를 짓눌렀던 시기였지요. 아주 가끔, 감사인지 행복인지 경계가 모호한 감정이 피어오르면 감사는 받아들이고 행복은 고개를 들지 못하게 밟았어요. ‘지금 행복해할 때가 아니야! 나중에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거야. 그러니 지금은 내 할 일만 하자.’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 행복은 제 안에 항상 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기억해보려고요. 어떤 상황이 저를 행복하게 했을까요? 저는 학교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엄마가 계시면 행복했어요. 그리고 부모님께서 기분이 좋아 보이시면 행복하더라고요. 친한 친구와 떡볶이를 먹으며 연예인 얘기를 할 때도 행복했고요. 대학 때 휴강한다는 소리에 강의실을 뛰쳐나오니 새봄이 돋아나는 모습에 행복했어요. 보고 싶던 친구와 술을 마실 때,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걸을 때 행복했고 또 금요일 밤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무척 행복하더라고요. 하나씩 써보니 자꾸 늘어나는 것 같아요. 지난 시절이라 그런지 행복한 순간이 선명하게 자리한 것 같아요. 그때는 그게 그렇게 행복한지 몰랐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요. 



그럼 지금은 어떨까요? 저는 지금 행복할까요? 음, 이거 하나는 확실해요. 결혼하고 아기를 키우는 지금 행복을 더 자주 느끼는 것 같아요. 손빨래를 마치고 바람에 스치는 아기 향을 맡을 때, 청소를 다 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아기와 눈이 마주쳐 환하게 웃을 때, 남편이 일찍 퇴근할 때, 나지막이 비가 내리는 밤에,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을 때, 아주 오랜만에 혼자 외출할 때,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나올 때, 직접 만든 요리를 가족이 맛있게 먹어줄 때, 기다리던 택배가 왔을 때, 온전히 책과 글에 집중할 때. 등등 쓰다 보니 지금의 행복을 더 많이 찾을 것 같아요. 아마도 과거에도 그랬을 텐데, 제가 못 느끼고 지나쳤나 봐요.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많은데 말이죠. 



이렇게 생각해보니 행복은요, 보이지는 않아도 느낌으로 마주하는 찰나 같아요. 오로지 나만 알 수 있는, 모호해 보여도 어느 순간 확실하게 느껴지는 그 어떤 것으로 생각해요. 마치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올 때 ‘아 좋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처럼요. 그 바람이 어떤 날은 아예 불지 않는 것 같기도 하죠. 나와는 먼 세상 얘기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막연하기도 해요.  아직도 저는 행복을 또렷하게 정의할 수는 없네요.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살다 보면 오늘 쓴 글보다는 더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어요. 안 오면 뭐, 그런대로 행복은 제 안에 존재할 테고 또 힘들어하기도 하면서 오늘을 보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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