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무엇도 없던 대학 5년

경영학 전공자가 진로를 찾는 방법

by 시샘달 엿새

스무 살 3월. 나에게 첫 개강이 찾아왔다. 강의실을 찾아다니고 선배에게 점심을 얻어먹으며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입학 당시 300명이 넘는 경영학부 동기와 선배를 구분하는 일은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채로운 배경을 지닌 그들을 알아가는 과정은 꽤 흥미로웠다.




동기 이 씨는 본인의 꿈이 C.E.O라며 미니홈피 대문에 당당하게 소개해놨다. 그 동기 덕분에 CEO(chief executive officer : 기업의 최고경영자)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친구는 대기업 회장님이 되고 싶구나. 꿈도 야무지구나. 이런 생각이 스쳤다.


복학생 선배 김 씨는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했다. 선배는 경영정보학(MIS)을 더 깊게 공부하고 싶다면서 타 대학 석사 과정을 꽤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선배 덕분에 졸업 후 취직만이 유일한 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삼수생 선배 김 씨는 시중은행 이번 공채에 합격해 합숙 연수를 다녀왔다고, 역시 교육을 듣는 일은 못 해 먹을 일이라고, 입사해도 또 공부해야 하고 현금 100만 원을 수기로 세는 일도 쉽지 않다고 새내기 직장인의 애환을 읊조렸다. 평소 금융 분야가 좋아서 은행 입사를 준비하셨단다. 동시에 취업 시장에서 나이가 많을까 봐 걱정이었는데 졸업 전에 합격해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 덕분에 은행에 입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은행원의 삶은 어떤 모습일지 짐작해 보았다.


내가 선배가 되어 만난 후배 민 씨는 입학하자마자 본인은 회계사를 준비할 거라고 외쳤다. 어린 친구인데 어떻게 꿈이 저렇게 확고할까, 기특하면서도 후배에게 목표가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그 후배 덕분에 회계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준비하는지, 그리고 기업의 회계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학군단 선배 안 씨는 복수 전공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교직 이수를 했는데, 곧 교생실습에 나가게 된다고, 학생들을 만날 생각에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선배 덕분에 경영학 전공자도 교사의 길을 걷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보통 상업과목이나 경제 복수 전공으로 사회과목을 맡았다. 소싯적 꿈이 선생님이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교직 이수 도전할걸. 후회가 밀려왔다.


절친한 동기 H는 광고가 너무 즐겁다고, 일찌감치 광고동아리에 합류했다. 친구의 동아리 활동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져서 서운한 감정도 들었지만, 그 친구 덕분에 공모전, 기획, 후원, 발표(PT, 프레젠테이션)의 세상을 엿보게 되었다. 그간 몰랐던 신세계였다.




사람들과 친해질수록 그들의 꿈(목표)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이야기가 거창하기도,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목표를 향한 걸음이 사소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히 그 일이 멋져 보여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인이 일하는 모습에서 흥미를 얻기도 하는데 공통점 한 가지는 모두 내가 끌려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대학 시절 내 가슴을 뛰게 하는 확고한 꿈이 없었다. 주어진 수업을 듣고 시험 보고, 과제하고, 방학에는 토익 공부를 하고, 다시 개강하고 반복하면서 그 무한한 자유시간을 유유히 흘려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그나마, 나에게 맞는 분야를 찾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1학년 때는 <경영학 원론>, <회계 원리>, <경제학 원론>, <경영정보학개론> 등 각종 원론을 들으며 공강 시간에는 수다로 채우고 수업이 없던 목요일에는 기숙사에서 늦잠을 잤다. 늦은 시작이니 남은 하루도 휴식으로 채웠다. 스터디룸이나 온라인(네이트온)으로 만나자고 약속했던, 조별 과제를 위한 모임에도 늦게 나갔다. 시간 중요한 줄 모르던 한심한 시절이다.

2학년 때는 <관리회계>를 수강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려서 답을 찾았을 때 상쾌한 짜릿함을 느꼈다. 1학년 때는 줄곧 약술, 서술 형식의 시험을 치느라 이게 답이 맞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수식을 대입해 문제집을 푸는 기분이 반가웠던 것 같다. 반면, 전공자들 사이에 선호도가 높던 <인사조직>과 <마케팅>에서는 별다른 흥미를 못 찾고 <생산운영관리>는 나와는 너무 안 맞아서 첫 수업에 D를 받았다. 졸업을 앞두고 싫어하는 과목을 재수강하려니 짜증이 절로 났다.

3학년 때 전공필수로 <재무관리>를 수강하면서 최초로, 졸업 후 진로를 금융, 재무 분야로 가닥 잡았다. 회계와는 달리, 기업의 미래가치를 현재 시점으로 환산하여 NPV(Net Present Value : 순현재가치)를 찾는 과정이 즐거웠다. 그 안에는 복잡한 현실의 다양한 변수가 없었다. 즉, 재무의 원론적 세계도 순수한 셈이다. 단순한 가정을 두고 이론(MM, CAPM, 채권의 듀레이션 등)을 도출하면서 동시에 이 이론으로 현실을 설명한다는 것을 깨닫는 자체가 지식의 깊이와는 무관하게 모든 전공과목을 통틀어 가장 흥미로웠다. 이때부터 은행, 증권사에 입사해서 금융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4학년 때는 <투자론>, <노사관계론>, <글로벌경영론> 등 전공 심화 과목을 이수하면서 금융투자연구회 활동에 참여하고 증권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AFPK와 같은 금융 자격증을 공부했다. 이렇게 하면 은행에 들어갈 줄 알았다. 커다란 착각의 시작이었다. 취업을 준비할수록 스펙(학점, 외국어 성적, 자격증 등 내 가치를 높이는 다양한 증빙)이 중요한 것 같았다. 아주 간혹, 스펙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S그룹이나 시중 4대 은행에 합격한 소식이 들리면 그들에게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경험(스토리)’이 있었다. 이를테면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해외 봉사활동 경험이나 기숙사생을 위한 무인 과일 트럭을 운영하는 경험 자체가 면접에서 주목받을 이유가 되었다.


4학년 2학기부터 1년 10개월간 125번의 입사 원서를 썼다. 단 한 곳에 최종 합격할 때까지 계속 떨어졌다. 당시 은행원 100명을 뽑는다면 10000명이 지원하는 시기였다. (아마 지금은 더욱 힘들 것이다.)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하던 내 상태를 돌아보니, 내가 가진 스펙은 남들도 가졌던 것 같다. 당시 취업이 된 선배들은 분명, 그 만의 비기가 있었다. 어쩌면 학교 성적보다도 취업에 도움이 된 것은 특출 난 외국어 실력, AICPA(미국회계사), CPA(공인회계사), CFA(공인재무분석사)와 같은 도전하기도 어려운 자격증, 해외 봉사활동 경험, 창업 경험, 해당 직무와 관련한 아르바이트 경험, 아니면 해당 기업과 어울리는 이미지나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친화력도 합격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자 자격증과 소소한 금융 자격증을 따려고 휴학했다. 졸업하면 바로 청년 실업자가 될 것 같아서 졸업 유예로 학생 신분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을 대학생으로 지내면서 나는 그저, 어렵지 않은 길만 선택했던 것 같다. 아울러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겉핥기로만 맛본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막연하게 취업이 잘 되리라고 낙관론을 펼쳤다. 꿈도, 무엇도 없던 대학 5년의 세월이었다. 여기서 무엇이란, 나만의 비기 또는 나만의 이야기라 정리하고 싶다.




다음 이야기 :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받은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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