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공기관 취업 이야기를 시작하며
대학 입시 원서를 쓰면서 경영학과만 지원했다. 이유는 간단한데, 문과 전공 중 취업이 잘 된다기에 다른 선택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험생 시절 한 달에 한 번씩 모의고사를 보면 그 성적으로 붙을만한 대학을 찾아 경영학 전공 유무를 확인했다. 전공을 확정하니 고등학생 시절의 가장 큰 고민을 해결한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더 중요할 대학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기계처럼 시험 보고 점수 맞춰 배치표를 찾는 쳇바퀴 같은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 바랐다. 대학만 합격하면 모든 것이 행복한 결말이 되는 줄 알았던 셈이다. 이런 마음으로 수험 시절을 보냈다.
고3 9월, 드디어 수시 원서접수 기간이 되었다. 지난 3년간 성적 데이터를 종합해 몇 개 대학을 골라 원서를 썼다. 어떤 대학은 논술을 보고, 또 다른 곳은 면접 전형이 예정되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닥치는 대로 논술을 쓰면 될 것이고 면접에 임하면 될 테니까. 수시 떨어지면 수능 치면 되니까. 뭐든 방법이 생기겠지. 이런 생각으로 전략을 갖춘 준비란 1도 없이 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쿨하려던 내 의도와는 다르게 초조해졌다. 심지어 친구들의 합격소식이 연달아 이어지니 이러다가 나만 대학에 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던 와중 한 대학으로부터 수시 합격 소식을 받았다. 열아홉 살 인생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모의고사를 안 봐도 되고, 덥고 추운 방학에 보충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간 ‘너희는 공부만 잘하면 돼. 대학 가면 다 보상받아.’라는 말이 귓가를 스치면서 앞으로 내 인생에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다. 대학생이 되면 내 마음대로 수업에 들어가도 되는 줄 알았다. 중간, 기말 같은 온갖 시험과 수행평가가 없는 줄 알았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CC(Campus couple)가 생길 줄 알았다. 내 전공이 졸업 후 취업을 보장해주는 줄 알았다.
수험생 시절을 돌아보니, 진로를 고민하는 시기는 인생 전반을 볼 때 중요한 메시지를 담았다. ‘어떤 직업을 가져라, 어떤 대학을 가라'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에 끌리고 호감이 생기는지 알아가는 과정 그 자체다. 내가 전공을 선택할 때는 경영학이 뭔지 취업이 뭔지도 몰랐다. 심지어 이 추상적인 개념을 하나씩 벗기며 그 실체를 스스로 알려하지도 않았다. 그때도 취업은 어려웠고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전공은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동시에 먹고살기 바쁘다는 어른들의 한숨이 스쳐 지나갔다. 나를 둘러싼 외부에만 집중할 뿐, 정작 나를 쳐다보지 못한 것이다. 즉,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흥미가 생기는 분야가 있었다. 이를테면, 윤리와 사상에서 배웠던 동양철학에 매료되어 시험공부가 어렵지 않았다. 세계지리 시간에는 외국을 여행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재밌었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다. 문학에 빠진 국어 선생님 덕분에 나도 그 세계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흥미를 확장하지 않았다. 코앞에 닥친 시험을 보기 바빴고, 순수 인문은 진로가 불확실하다는 얘기에 만류당한 경험이 기억난다. 진지한 고민 없이 지극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한 결과 나는 경영학과를 선택한 것이다.
그때 나의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알아봤다면. 그 분야로 진로를 정했다면. 대학 시절 무한한 자유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끌리는 마음을 실행으로 옮겼을까? 취업도 대학처럼 쉽게 될 거라는 착각을 하지 않았을까?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에 시행착오가 적었을까? 취업 그 후, 직장인의 삶에는 돈과 행복만이 가득하지 않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았을까?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돌아보면 분명한 깨우침을 찾게 된다. 그때 교훈은 나의 현재와 미래를 향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공공기관 취업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수험생 시절 대학 전공을 선택한 이유를 돌아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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