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받은 충격

처음으로 나를 돌아본 시간

by 시샘달 엿새

대학 마지막 학기, 본격적으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나의 첫 번째 취업 원서는 모 그룹 증권사 공채였다. 원서를 작성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졸업 전에 취뽀하면 친구들에게 취업 턱을 내야 할 텐데. 여러 군데 합격하면 어떤 회사를 선택하지? 5년간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자니 눈물이 글썽거리네.’ 그러나 이런 가슴 뛰는 환상은 금세 접을 수밖에 없었는데, 공들여 작성한 취업 원서가 시장에서 먹히지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취업준비생 초반 시절부터 숱한 탈락을 맛보았다. 처음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이러다가 취업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귀하의 역량은 출중하나, 한정된 자리로 인해... 어쩌고 저쩌고…



장난하냐? 출중한데 왜 안 뽑냐? 합격 여부를 확인할 때마다 나를 두 번 죽였던 이 멘트는 스물네 살 인생 최초로 세상에 대한 앙심을 품게 만들었고, 1년 10개월이라는 취업준비생 역사의 서막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내게 그 시절은 단 하나의 최종 합격을 위한 무수한 탈락의 기록이었다.



취업이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돌아보니 탈락 멘트가 팩트다. 즉, 개인적으로 지원자들은 충분히 훌륭하고 출중하고 소중한 사람이지만, 지원자에 비해 채용 인원이 현저히 적다 보니 아쉽게도 모두 모실 수가 없는 까닭이다. 한정된 자리를 두고 몇십, 몇백 배가 많은 사람이 경쟁을 하니 지원자로서는 성공 확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기업에서도 수많은 지원자 중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알아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 취업 시장에서 내가 선택되려면 나를 브랜드라 생각하고 세상에 선보이기 위한 취업 원서를 작성해야 했다. 원서를 작성한다고 함은 기업별 채용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기본 정보란에 성적, 외국어 능력, 자격증, 특기 사항 등을 입력하고 자기소개서(자소서)라는 빈칸을 채우는 행위를 말한다. 문제는 기업별로 항목이 다르다 보니 작성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는 점이었다. 아울러, 서류전형 탈락 소식이 계속 전해질수록 이러다가 취업을 못 할까 싶어 원서를 하나라도 더 쓰려고 발악했다. 일종의 다량생산 전략을 취한 셈인데 거의 매일 채용 사이트를 확인하고 나에게 적합한 분야(금융, 재무)를 골라 원서를 썼다. 한번 시작한 글을 끊기 어려워서 밤을 새우기 일쑤, 매일 다크서클을 달고 다녔다. 가내수공업처럼 한 땀 한 땀, 한 칸 한 칸 자기소개서를 생산하면서 취업 시장에 나라는 인재가 있다고 무수히 외쳐댔다. 이렇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몇 번의 충격을 받았다.



충격 1. 자기소개서 항목이 간단하지 않다.


OO 은행 입행이 본인의 비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자기소개와 함께 자유롭게 기술해주십시오. (6000 bytes 이내) → 6000바이트? 공백 포함 한글 3500자 정도

당신을 한 가지 계절로 비유한다면 그 계절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 입사 지원과 계절이 무슨 관계??

OO 은행에 지원 동기와 입행한다면 어떠한 역할과 본인의 성장으로 OO 은행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십시오. → 돈 벌려고 지원하는데요???

인생에서 실패한 사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 인생 실패????

성장 과정 (300자) → 300자로 줄이라고?????


그 시절 취준생들에게 원서를 쓴다는 말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행위와 맥이 통했다. 자기소개서 항목을 보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질문 내용도 다르고 글자 수도 천차만별이라 기업 이름만 바꿔서 Ctrl+c, v가 쉽게 먹힐 턱이 없었다. 아울러 글은 늘리는 것보다 줄이는 게 더 어려웠는데 가령, 성장과정에 관해서 1500자로 쓰는 것보다 300자로 짧고 임팩트 있게 표현하는 일이 더욱 힘든 일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자기소개서를 작성할수록 기업들이 묻는 내용마다 관통하는 키워드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 나름 돌려막기가 되었는데, 글자 수가 다른 건 통일하기가 어려웠다. 기업마다 적게는 3, 4개 많으면 7, 8개를 작성하라고 한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항목별로 글을 직접 쓰거나 다듬을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두 번째 충격을 받았다.



충격 2. 자기소개서에 쓸 말이 없다.


난 뭐 하고 살았냐. 인생에서 성공, 실패한 경험은 몇 번을 생각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그 옛날 성공시대처럼 자서전을 낼법한 인물들의 거창한 이야기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실제로 그럴싸한 도전을 하지 않았다. 새내기 시절 학과 선배들과 친목을 도모한답시고 학교 앞에서 술만 마셨던 기억이 스쳤다. 무슨, 건배할 때마다 사람들이 좋다고 목이 터지라 외쳤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동아리 활동에 관심이 없었다. 대학 방송부원 모집 공고에 잠시 눈길이 머물렀지만 고등학교 때 방송반 면접에서 탈락한 경험이 떠올라 외면했다. ‘나는 떨어질 거니까. 실패하는 삶은 옳지 않으니까.’ 대학 신문기자 모집 공고에 잠시 멈췄지만, 다시 발길을 돌렸다. '중등 신문편집부 활동을 해봤으니까, 대학이라고 별거 있겠어?' 이런 생각으로 나 스스로 도전 자체를 거뒀다. 참으로, 아쉽기 짝이 없는 시간이다. 나에게 그어놓은 한계는 나를 도전하지 않는 자로 만들었고 결국 작은 성공도 실패도 없는 삶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해당 항목별로 기억을 쥐어 짜냈다. 중, 고등 때 상을 받았던 소소한 기억부터 축제 때 주점을 운영해서 수익을 창출한 이야기, 학교에서 지원해준 영국 연수 이야기, 교내 리더십 프로그램을 하면서 겪은 일, 모 은행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경험, 졸업을 위해 참여한 봉사활동 이야기 등등 아주 작은 에피소드를 기억해내서 자기소개서 항목과 어떻게든 연결해보려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인지 한 기업 원서를 쓸 때마다 보통 며칠씩 걸렸는데, 최종 입사 지원 버튼을 누르는 순간 쾌감을 맛봤다. 탈고(脫苦)의 느낌일 것이다.



충격 3. 원서 접수 마지막 날의 아찔함


그날도 며칠 동안 새벽까지 자소서를 쓰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모 은행 접수 마감일이 금요일 오후 5시까지였는데, 막판에 내용을 수정하고 싶어 4시쯤 접속해봤다. 그런데, 홈페이지가 마비되어 접속할 수가 없었다. 아마 원서 마감 시간을 앞두고 접속자가 폭증해서 생긴 일일 것이다. 결국 수정은 못 하고 그냥 보냈는데 찝찝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어떤 친구는 접속 불가로 지원 기회를 아예 날려 버렸다. 이날 이후로 절대, 급하게 원서를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채용 시즌이 도래하면 작성해야 할 원서가 많아서 자연스레 바빠졌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미리 관리해두어 4학년 때 수강할 과목이 적었던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거의 매일 밤 원서 작성을 하고 발표일이 되면 초조하게 홈페이지 새로 고침을 반복하며 거의 매번 떨어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를 몰라봐주는 더러운 세상을 향해 분노 섞인 욕을 하고 친구들과 회포를 풀고 또다시 원서를 쓰는 쳇바퀴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나름 나만의 원서 작성 루틴을 만들었는데.




1. 매일 아침 채용 일정을 확인했다.


채용 사이트에 접속해서 채용 달력을 확인하며 일과를 시작했다. 보통 한 달간의 일정을 공개한 것 같은데, 여기서 내가 도전할 만한 기업 혹은 직무를 골라서 다이어리에 써넣어놨다. 자기소개서 문항이 공개되면 미리 그 문항을 따로 적어놓고 생각해보았다. 수업을 받거나 친구들과 스터디 모임을 하는 등 일과 도중에 잠깐씩 문항에 대한 글감을 생각해 놨다. 그리고 조용한 밤에 자기소개서를, 아니 나에 대한 글을 썼다. 아마도 인생 최초로 나를 돌아보게 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취준생 시절 다이어리

2. 원서 작성 후 해당 정보를 반드시 남겨두었다.


모 기업에서 서류 합격 소식을 듣고 얼떨결에 면접을 앞두다 보니 자기소개서 항목이 기억나지가 않았다. 봉사활동 증명서를 제출하라는 요청에 무슨 내용을 적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혹시나 내가 기재한 각종 자격 정보가 서류 내용과 다르면 입사가 취소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서 모든 취업 원서를 스크린 캡처하여 증거로 남겨두었다. 컴퓨터 하드나 USB에 저장한 것 같은데, 나중에는 내 메일로도 보내 놔서 확인이 간편했다. 자기소개서 내용도 워드 파일로 따로 저장해놓았다. 비슷한 업무를 하는 기업에 글감으로 활용이 가능하니까 편집하기 쉽도록 파일을 남겨둔 것이다.



3. 항목마다 정성을 다해 채우고 꼼꼼히 확인했다.


어떤 회사가 날 찾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자소설’이라는 말이 돌았지만 양심상 거짓말을 쓸 수는 없었다. 언제 붙을지는 몰라도 나중에 면접 때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하기에 어쨌든 정성을 다해 쓸 수밖에 없었다. 접수 마지막 날 접속 장애를 대비해 최소한 그 전날까지 마무리하고 최종 지원 여부를 확인했다. 혹시나, 복사해서 붙여 넣다가 타 기업 이름이 들어갈 수 있으므로 몇 번이나 살폈다. 아울러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자 수 체크/맞춤법 확인 기능을 이용해 오, 탈자를 체크했다.



4. 자기소개서를 공유했다.


이는 취준생 시절 내가 가장 잘한 일이라고 손꼽는다. 내 자소서가 새벽 2시에 작성한 감성 에세이라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남에게 보여준 것은 훗날 자소서가 발전하는 단초 역할을 한 셈이다. 뭐든지 처음만 어렵다. 처음에는 내 실체를 보이는 것 같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자소서를 비슷한 분야에 도전하는 친구들, 아예 다른 분야를 지원하는 선배, 아니면 취업 코치 선생님께 보여드려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한 사람이 아닌 다수의 의견이라면 내가 보완할 사항이었다. 그 점을 다음번 작성 때 녹여보았다. 나 역시 친구들의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같은 항목을 두고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분명한 것은 이 영역에 정답은 없겠지만, 나를 조금 더 진솔하고 매력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방법으로 변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금융권 사기업으로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는 ‘금융인’이라는 막연한 목표만 있을 뿐 어떤 회사, 어떤 직무를 위해서 나만의 차별화된 경험도 없었고, 어떻게 내가 발전할 것인지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디 하나만 걸려라, 이런 생각으로 마구잡이 지원을 하다 보니 왜! 이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지, 내가 훗날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이 회사가 찾는 사람이 왜 나여야만! 하는지 솔깃한 매력 포인트가 없었다.


125번 작성한 입사 원서 중 서류 합격 소식은 44번이었다. 밤마다 다크서클로 원서를 찍어냈기에 그나마 예선 통과 가능성을 높인 것 같다. 서류 합격 여부가 내가 작성한 자기소개서와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다만, 이 시기를 돌아보니 자기소개서도 쓰면 쓸수록, 피드백을 받을수록 조금씩 나아진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다음 이야기 : 회사가 원하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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