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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Sep 13. 2020

직무적성 검사 공부 방법

첫 번째로 지원한 기업(증권사)으로부터 서류 합격 소식을 받았다. 당시 그곳은 일정 조건(학점, 영어성적 등)을 충족하면 바로 인성 및 적성 검사(보통 직무적성시험이라고도 불림)에 응시하도록 기회를 줬다.

 

인·적성 검사란 서류전형 통과 후 주로 면접 단계 전 일종의 필기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개인의 성향을 확인하는 문항이 제시되는 인성 영역과 언어, 수·추리 영역 등 기업별, 직무별로 다양한 유형의 객관식 문제로 이루어진 적성 영역으로 나뉜다. 인성 영역은 최대한 솔직하게 답변을 하라는 팁에 별 신경을 안 썼다. 오히려 선한(또는 유리한) 답변만 고른다면 판독 기계가 나를 비정상으로 확정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 결국 인·적성 시험의 열쇠는 문항별로 정답이 확실한 적성 영역에 있었다.


시험 날짜와 장소를 확인하니 비로소 내가 취준생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곧바로 중간고사 일정이 확정된 것처럼 마음이 분주해졌다.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OO 그룹 인·적성 최신 기출 유형>이라는 문제집을 샀다. ‘이 책만 다 풀면 충분하겠지. 벼락치기 인생 10년이 넘는데, 이 한 권쯤이야. 증권사에 필요한 적성이라면 금융 관련해서 물어보겠지. 난 자격증도 땄는데 뭐 그렇게 어렵겠어. 우선 책을 보자.’ 혼자 하는 것보다는 함께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부랴부랴 인·적성 스터디 모임도 만들었다. 각자 정해진 분량을 풀고 모르는 것은 질문하고 아는 사람이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문제집을 펼쳤다. 언어, 수리, 추리, 공간지각력으로 구성되고 시사상식이 추가되었던 것 같다.


언어 영역은 수능을 떠올리게 하는 비문학 지문이 대부분이었고, 가끔 단어나 한자어를 물어보면서 나의 어휘 감각을 물어보는 느낌이었다. 처음 보는 유형의 나름 창의적인 문제도 보였지만 답지를 보면 되니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한자도 술술 풀릴 것 같았다. 그냥 쓱 훑어보면 될 것 같았다.

수리 영역은 초등과 중등을 떠올리게 하는 소금물과 거리·시간·속도를 구하는 문제가 많았다. 옛날에 다 배웠으니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대체 증권사 업무랑 무슨 관계일까? 현실을 자각하면서 문제의 의도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풀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대강 훑어보았다.

추리 영역을 살피니 조금씩 겁이 났다. 여러 사람이 한 문장씩 말을 하는데 다짜고짜 그 문장의 진실 혹은 거짓을 밝히라는 식이다. 심지어 그중 한 사람은 거짓을 말하고 있단다. 만약 셜록이 이 문제를 푼다면 1분 안에 정답을 맞힐 수 있을까?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서 질문을 여러 번 읽어봤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해답을 찾아보면 요령을 찾지 않을까 싶었다. 시험의 변별력이 여기서 생길 것 같았다.

문제적인 영역은 따로 있었다. 글과 숫자만 있던 책에 갑자기 그림으로 가득 찬 페이지가 펼쳐졌다. 공간지각능력에 관한 유형이었다. 수학이 싫었던 것은 숫자 이외에 문자와 도형이 나오면서부터였는데, 그때의 아찔한 기억이 몰려왔다. 십여 년을 잊고 살았던 블록 쌓기와 입체 도형 회전, 종이접기, 전개도 등이 다시 내 앞에 펼쳐졌다. 이것은 해설을 봐도 알 수 없었다. 마치 해독되지 않은 고대 문서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영역을 마주할수록 점차 나를 알게 되었고, 문득 나의 뇌에는 공간지각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벌써 좌절을 할 수는 없어 시사상식 영역을 찾아봤다. 알듯 말 듯 단어가 많이 나오고 문화, 예술을 묻기도 하고 당최 종잡을 수 없는 문제를 풀다 보니 오답이 이어졌다. 내가 이렇게 몰상식한 건가, 앞으로 갈 길이 험난하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밤마다 자기소개서 쓰기도 바빠 죽겠는데 이제는 인·적성 문제집도 풀어야 하니 인생은 참 피곤하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드디어, 내 생에 첫 번째 인·적성 시험을 치기 위해 고사장에 도착했다. 00명 뽑는다는데, 얼핏 봐도 몇천 명은 될 것 같았다. 매일 자소서만 쓰다가 시험을 치러 나오니 한반도의 경쟁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제야 취업이 왜 그렇게 어려운 건지 조금은 가늠이 왔다. 사람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시험이 시작되었는데.



내가 풀었던 문제 유형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없었지만 시간이 몹시 모자랐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문제도 잘 안 읽혔다. 언어 지문은 어찌나 길이가 들쑥날쑥한 건지 붙들고 있다가는 다른 문제를 못 풀 것 같아서 어려운 문제를 넘겨버리다 보니 오히려 제대로 푼 게 없었다. 소금물과 거시속(거리 시간 속도)은 응용문제로 나를 찾아와 며칠간 열심히 외웠던 공식은 의미가 없었다. 공간지각력 문제는 시험지를 여러 차례 돌려봐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나의 첫 번째 인·적성은 배 속에 마르지 않는 한숨을 심어주었다. 그래도 혹시나 기적이 일어나서 합격할 수도 있으니 희망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별 잡스런 생각이 교차하다 보니 어느덧 시험 종료 5분 전이었다. 결국 3번으로 내리찍으며 시험을 끝냈다.



시험 결과가 발표가 나기 전까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합격 상상을 하며 마음은 벌써 신입사원 연수원에 갔다. '이거 붙으면 바로 면접을 준비해야 하는데, 면접을 온종일 본다던데, 그 면접만 통과하면 최종 합격이라는데.'라는 쓸데없는 생각에 매몰되고 불합격이라는 상황은 애써 외면했다. 얼마 후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탈락!


기적 같은 건 없었다. 내가 3번으로 내리찍는 순간 그 시험은 이미 끝난 것이다. 충격과 동시에 원망이 부글거렸다. 소금물의 농도는 왜 구해야 하고, 숨겨진 블록이 몇 개인지를 왜 알아야 하는 건가. 이것들이 증권인과 무슨 관계냐. 인재도 못 알아보고 납득할 수 없는 시험으로 나를 탈락시킨 회사에 분노가 치밀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떨어뜨리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자 대부분은 서류전형을 통과하니 다음 단계(면접)를 향하는 과정에서 인·적성 시험을 통해 준비된 지원자를 찾아내는 방법인 것이다. 문제 유형과 입사의 상관관계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다른 대기업들도 이런 식으로 인·적성 시험을 채용 과정에 두었다. 이런 걸 알 턱이 없는 애송이 취준생 내게는 첫 번째 인·적성의 충격이 꽤 커서 다른 회사 시험도 어려울 것이라고, 난 머리가 나빠 힘들 거라는 인·적성 포비아가 생겼다.



보통 토요일 오전에 중, 고등학교에서 인·적성 시험이 진행되었다. 밤마다 자소서를 생산하고 또 광탈 소식을 들으며 피로가 겹겹이 쌓여가는 와중에 이상한 문제를 만나는 그 시간은 몹시 고통스러워서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면접도 볼 수 없으니까. 귀찮아도 싫어도 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꾸역꾸역 시험을 치러 가다 보니 기업별로 인·적성 항목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라서 합격 여부를 스스로 단정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뇌에 공간지각력은 없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자신하던 분야(단순 계산)는 있었다. 어떤 회사에서는 추리, 공간지각력이 없이 자료 해석 문제가 제시되어 편하게 풀어보았다. 그러다 보니 합격하는 날도 있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처럼 인·적성 시험 결과도 어떨지 모를 일이었다. 공공기관 취준생으로 살면서도 인·적성 공부는 계속 이어졌다. 즉, 취뽀를 위한 인·적성 공부도 2년 가까이 한 셈인데 지나 보니 이 영역의 열쇠도 역시, 연습! 또 연습이었다.

 



1. 매일 정해진 분량을 풀었다. 

문제 유형이 다양한 문제집을 사서 분야별로 골고루 풀었다. 다만, 절대로 몰아서 하지 않았다. 매일 30분 정도 할애해 두었다. 취약한 영역은 회독을 늘렸다. 어렸을 때 학습지를 푸는 것처럼, 그렇게 문제 유형과 친해지는 전략을 이행했다. 매일 30분의 연습은 아주 조금씩 내 인·적성 레벨을 높였을 것이다.


2. 1문제 1분! 

인적성은 시간이 생명이다. 가령 60분 동안 50문제를 푼다고 하면 답안지 마킹까지 감안할 때 한 문제를 두고 5분, 10분 할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즉,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 게다가 정확한 답을 찾는 게 포인트다. 그래서 문제집을 풀면서도 시간을 설정하고 실전처럼 풀었다. 최대한 빠르게,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 연습했다.


3. 해설을 꼼꼼히 읽었다. 

공식을 대입하는 문제는 먼저 원리를 이해하려 공들였다. 어려웠던 수리와 추리 영역도 어떻게든 잘 풀고 싶었다. 해설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인터넷(특히 구굴)에 떠도는 깨알 팁을 찾아 적용해보았다. 


4. 가끔은 포기도 전략이다. 

도무지 안 되는 건 버렸다. 즉, 내 뇌에 없던 공간지각력(도형) 관련 문제는 과감히 포기했다. 어떤 기업에서는 아예 나오지 않을 테니까. 해도 안 되는 걸 잡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 외에도 풀어야 할 문제는 많고 난도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이런 전략으로 오히려 다른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긋지긋한 소금 소금




여러 문제집을 구매하다 보니 방 안 구석에는 두꺼운 인·적성 책들이 쌓였다. 문제를 풀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했다. 나에게 취뽀의 날이 온다면, 인·적성 독립일 그 날이 오면 이 지긋지긋한 책부터 다 불 질러버릴 거라고. 오오 그 날이 오면 그 짜릿한 순간을 위해 오늘도 짜증을 참아본다고. 문제집에 빨간색 비가 내려도 풀고 또 풀었다.



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들 투성이라 공부를 해야만 했다. 이걸 놓으면 취업은 더 어려울 테니까. 세상에 맞서는 전략을 취한 셈이다. 비록 나의 뇌는 섹시하지 못해도 노력으로 커버하는 영역이 있을 테니까. 그 하나만을 믿고 닥치는 대로 문제를 풀었다. 이러는 와중,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


소각! 그 날을 위해


다음 이야기 : 회사는 단순히 말 잘하는 사람을 뽑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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