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샘달 엿새 Sep 11. 2021

창문으로 인사하는 날들

영상통화하면 더 보고 싶단 말이야

출산을 앞둔 어느 날, 나는 첫째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유치원을 다녀온 첫째는 갑자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쉴 새 없이 떠들고 까불 시간인데 저렇게 폼 잡고 있으니 집안 공기가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동시에 나는 배가 터질 듯 커져서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가자미눈에 입을 삐죽 내밀고 저러니 짜증이 솟아올랐다. 화를 억누르고 이를 악물며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

“알았어. 그럼 말하고 싶을 때 엄마한테 와줘. 그동안 엄마 빨래하고 있을게.”



아이에게 화를 내면 내가 무조건 후회한다. 부글부글 끓어올라 뚜껑이 열리기 직전에는 상황을 잠시 모면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 그래서 기다렸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내 옆에 와 있다.



“흙흐ㅡㅎ르ㅡㄱ흐륵흑. 엄마 병원 가면 너무 보고 싶을까 봐 그게 걱정돼. 응어어으으아어어으아아앙”  

“엄마 병원에서 동생 건강하게 잘 낳고 아프지 않게 회복해서 집에 올게. 지금 나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 딸이 엄마 병원에 들어올 수 없대. 이해할 수 있지?”

“으어으어어으어으아앙”

“엄마 보고 싶으면 언제든 영상통화하면 돼. 엄마가 늘 핸드폰 가지고 있을 테니까 아빠한테 전화해달라고 해.”

“응어응아아앙 영상통화 싫어!!”

“영상통화가 왜 싫어?”

“영상통화하면 엄마가 더 보고 싶을 거란 말이야!!!”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싶었다. 우리에게는 최첨단 영상통화가 있기에 상대가 보고픈 마음을 그나마 위로받지 않는가. 그런데 영상통화를 하면 내가 더 보고 싶을 거라니. 의아했다. 아이의 말을 이해하고자 곰곰이 생각해보니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남편이 외국으로 출장 간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세 살이던 첫째는 가끔씩 나와 함께 외가 방문을 하면 아빠와 영상통화도 곧 잘했는데, 출장 때는 많이 달랐다. 밤마다 영상통화를 하면서 그때마다 꺼이꺼이 울었다. 아빠가 아주 멀리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왜 그렇게 우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영상통화를 하면 아빠가 더 보고 싶어.”



출장 기간 동안 첫째는 아빠가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고 있었다. 그러다 휴대전화로 아빠를 보면 그리움이 증폭되어 터지는 것 같았다. 아이는 영상통화를 해도 아빠가 멀리 있기에 직접 만질 수 없고 안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직접 보고 안아줘야 비로소 포근해지는 마음을 첫째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빠가 집에 올 날은 아이에게 몇 밤을 자야 하는 만큼 몹시 길게 느껴졌을 것이니 오죽 답답했을까.



그때를 떠올리니 더 이상의 설명은 의미 없었다.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그냥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시간만이 약이었다.



출산 후 입원 3일 차. 남편은 내가 요청한 물건을 전해주러 병실에 들렀다. 그 김에 첫째가 엄마 근처에라도 가고 싶다며 따라나섰단다. 엄마 못 봐도 괜찮다고 몇 번이나 약속했다는데. 막상 엄마를 못 보니까 화가 단단히 났다. 나와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토라진 뒷모습만 보여줬다.



‘차라리 울어라.’



첫째의 삐친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더 속상해졌다. 저렇게 뒀다가는 집안 분위기가 또 삭막해질 것 같아서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엄마 말 잘 들어봐. 냉장고에 반죽 있어. 그걸로 쿠키 만들어서 내일 엄마한테 갖다 줘. 아빠만 엄마 병실에 들어올 수 있으니까 아빠한테 쿠키를 전해주면 엄마가 받을 수 있어. 그리고 우리는 창문으로 인사하자.”



첫째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전화를 끊고 쿠키를 만들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모양으로 굽겠다며 앙증맞은 수박 모양도 만들었다.



다음 날, 남편이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고 먼저 병원으로 찾아왔다. 나는 바깥이 보일 창문을 찾아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남편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케이! 상대가 작게 보여도 나름 잘 보이는 위치였다. 미리 인사 연습을 하고 남편은 다시 집으로 향했다.



몇 시간 후, 첫째는 약속한 대로 유치원에 다녀와서 아빠와 함께 내게 찾아왔다. 남편이 쿠키를 전해줬고 나는 그 편에 마침 병원에서 나온 간식을 보냈다. 그리고 아까 봐 둔 자리로 부녀가 위치를 옮겼다. 저 멀리서 아빠 손을 잡고 움직이는 첫째가 보였다. 내가 있는 7층에서 바라보니 첫째가 더 작게 보였지만, 그래도 직접 볼 수 있음에 기뻤다. 첫째는 내가 만든 인형과 내가 사준 선물 상자를 들고 나에게 끊임없이 손을 흔들었다. 동시에 통화를 했다.



“엄마 쿠키 잘 먹을게. 두 밤 자고 병원(조리원) 옮길 때 엄마 진짜 만날 거야. 와줘서 고마워. 조심히 들어가.”



짧은 인사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내가 전해 준 간식을 먹으며 영상통화를 했다. 첫째의 환한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포근해졌다.


서로에게 건낸 간식


이틀 후 조리원으로 옮긴 날. 나와 둘째를 조리원에 데려다주고 첫째는 아빠와 함께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댁에 모셔드리고 첫째가 좋아하는 쇼핑몰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예쁜 젤리 구두도 사고 좋아하는 단팥빵도 사고 평소에는 탈 수 없던 미니 놀이기구까지 타면서 체력을 방전시켰다. 아빠의 계획대로 아이는 몹시 피곤했는지 바로 잠이 들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안 계시고 유치원도 가지 않는 첫 주말이었다. 한가로운 주말 오전이 심심함으로 바뀌는지 자꾸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주말과 무관한 나는 둘째 신생아를 먹이기도, 나도 먹기도, 유축도 해야 하는데, 내 일과에 첫째의 통화까지 얹으니 쉴 틈 없이 바빠졌다.



첫째는 영상통화로 어제 산 구두를 자랑했다. 다시 온 전화에는 어제 산 원피스를 자랑했다. 또다시 걸려온 전화는 뭘 먹는지 브리핑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밤 9시가 되었다. 아빠랑 단 둘이 보내는데도 첫째는 씩씩하게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다시 영상통화로 이번에는 잘 자라고 인사를 하는데. 갑자기 이상한 흐느낌이 들렸다. 흐흐흐흐흙흐흐흐흑. 새까만 배경에 소리만 들으면 TV에 나오는 귀신 소리 같았다.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첫째가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며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자기 우는 모습을 엄마에게 보이는 게 싫었는지 잠시 카메라를 돌렸던 것이다.



“으어어어으아아앙 아앙앙아 어어엄마 보고 보고 싶어. 으아아아아앙”



아뿔싸. 터져버렸다. 이대로 뒀다가는 아이도 남편도 힘들 것 같았다. 다시 묘책이 떠올랐다.



“울음 그치고. 지금 준비해서 엄마한테 와. 엄마랑 창문으로 인사하자.”



순간 첫째는 움직임이 빨라졌다. 남편도 체력이 바닥난 것 같았지만 그 방법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준비하는 모양새였다. 우리 집에서 조리원까지 거리는 몇 백 미터. 아이가 걷기엔 짧지 않은 거리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조리원이었다. 난 혹시나 자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곳으로 예약했었다.



어른 걸음으로 10분 정도면 도착하는 곳.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언제쯤 올까 싶어서 창문 밖을 계속 쳐다봤다. 아파트 앞 신호등이 여러 번 바뀌었다.



‘이번 신호에 건너 오려나. 다음번 신호에 나타나려나.’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드디어 부녀가 보였다. 내 손을 열정적으로 흔들었다. 나 보라고 팔이 빠지게 움직여보았다. 부녀는 나를 발견한 것 같았다. 곧 전화가 걸려왔다. 그 사이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다 가장 적절한 위치에 서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있던 5층과 부녀가 도착한 아스팔트 바닥. 우리의 거리, 작은 강아지처럼 보여도* 전화로 들리는 숨결이 더해지니 비로소 아이와 내가 마주한 느낌이었다.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엄마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 이렇게 찾아와. 엄마가 여기서 기다릴게. 늦었는데 집에 들어가서 편히 잘 자.”  



역시 짧은 인사를 하고 부녀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첫째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계속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이 순간, 우리 첫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였을 것이다.



내가 조리원에서 지낸 2주간, 아이는 거의 매일 나에게 인사하러 왔다. 다리가 아파도 오고 여름 햇살이 기승을 부려도 찾아왔다. 유치원 일과로 피곤해도 엄마 보러 가겠다고 나섰단다. 영상통화로는 결코 메울 수 없던 그리움은 창문으로 인사하던 우리의 만남으로 조금씩 채워졌다.



그렇게 첫째와 인사를 하던 어느 날, 갑자기 내 방 전화벨이 울렸다.


“사랑이 엄마! 사랑이가 지금 엄마 찾아요.”




♡ 다음 이야기 : 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었던 것


*훗날 집에 와서 그때 느낌을 물어보니 엄마가 작은 강아지처럼 보였다고 표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기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