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떡볶이 먹을 시간을 주겠니?

그대를 생각하며 만드는 요리

by 시샘달 엿새

떡볶이가 몹시 당기는 날이다. 냉동실에 아껴둔 국물 떡볶이 꾸러미를 꺼내 놓았다. 달걀과 파, 어묵, 만두를 준비하고 오늘의 사리로 선택한 당면도 물에 불려 놓는다. 빨리 먹고 싶으니까 꽁꽁 언 떡을 찬물에 넣고 달걀을 먼저 삶는다. 도마 위에다 어묵은 숭덩숭덩, 파는 송송송송 썰었다. 떡 그릇을 힐끗 보니 서로 떨어질 것 같다. 하나가 된 떡 뭉치를 하나씩 떼며 독립시킨다. 아직 덜 녹았는지 손이 시리다. 참아야 한다. 오목한 프라이팬을 꺼내고 준비한 재료를 한눈에 살펴본다. 오케이! 준비 완료.


불을 켜고 식용유를 휙 둘러준다. 떡과 꾸러미 속 소스를 죄다 넣고 불에 볶는다. 떡이 빨간색으로 변했다. 불에 타지 않도록 조리법에 있는 물 360mL를 붓는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어묵과 만두, 불린 당면을 넣고 더 끓인다. 순간 완성되는 떡볶이 한 솥. 만두와 당면이 익으면 다 됐다. 내 맘대로 불을 끄고 떡과 어묵을 중심으로 사리도 골고루 접시에 담는다. 그 위에 파릇하고 향긋한 파를 솔솔솔솔 뿌리면 드디어 완성. 아! 달걀도 까서 올려야지. 꼬마와 함께하는 점심 식탁을 마주한다. 아기의 식판에는 먹고 싶다던 돈가스, 오이, 삶은 달걀이 올라갔다. 이제는 이 시뻘건 음식을 궁금해하지도 않는 꼬마에게 엄마는 굳이 말을 한다.


“엄마에게 떡볶이 먹을 시간을 주겠니?”




떡 하나에 스트레스와.


엽기적인 떡볶이는 수많은 직장인을 위로했다. 영혼이 너덜대는 어느 퇴근길에 매운 떡볶이를 시켰다. 익숙한 전화번호를 눌러 늘 먹는 세트를 고르고 호기롭게 매운맛을 선택했다. 내일이 두렵지만 그런 날은 먹어 줘야 했다. 새로운 맥주도 골라 집에 도착하면 떡볶이 생각에 오늘 일은 거의 잊었다. ‘띵동’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리를 듣자마자 재빨리 현관으로 튀어갔다. 오늘 나를 장악한 냉소는 사라지고 미소가 가득하다. 뜨끈한 봉지를 조심스레 식탁에 옮겼다. 모든 뚜껑을 열고 맥주도 깠다. 무서운 맛을 애써 덮은 치즈를 잔뜩 바른 떡과 어묵 한 커플을 내 접시에 담았다. 오늘은 잊자. 입으로 들어오는 무서운 맛을 느끼기 전에 맥주 한 모금에 의지해 본다. 탄산과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맛은 캡사이신을 더욱 자극한 것 같다. 매운 전율이 온몸을 감싸고 내 안의 스트레스는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머리 꼭대기로 빠진다. 어떤 날은 눈물로도 빠져나온다.




떡 두 개에 교복과.


중학교 앞 분식점에서 처음 만난 종이컵에 담은 떡볶이.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어여쁜 단풍색과 적당한 묽기. 그리고 드문드문 있어서 더 맛있는 어묵 조각. 하교 후 버스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함께한 떡볶이 한 컵은 내가 청소년임을 깨닫게 해 준 음식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단무지와의 환상 궁합도 알게 되고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튀김의 조합에 개개인의 주관이 뚜렷해졌다. 김말이냐, 오징어냐.


저녁 급식 먹고 나간 교문 밖 나들이에는 분식을 뺄 수가 없다. 떡볶이만 먹던 아이는 사라지고 어른들 음식인 줄 알았던 순대는 우리의 일부가 되었다. 순대의 백미는 초장이냐 막장이냐, 아니면 소금이냐. 소소한 언쟁을 통해 팔도의 식도락 취향을 알 수 있었다. 가끔은 라면을 먹기도 하면서 분식의 영역은 점차 확장되었다. 더운 여름밤, 얼려서 파는 달달한 종이팩 음료는 야간 자율학습 쉬는 시간에 먹는 시원한 간식이 되었다.




떡 세 개에 어린 와.


아마도 혼자서 시도한 최초의 외식이 아니었을까. 초등학교를 마치고 코앞 집에 오는 길에 들른 분식점, 아홉 살쯤 되는 아이의 두 눈에는 젓가락에 꽂은 빨간 가래떡이 스쳤다. 한가했던 그곳은 삽시간에 아이들로 북적이고 주머니 속 백 원짜리들은 돈 바구니에 모여들었다. 개미 같은 목소리로 용기를 내어 주문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쫄깃~하게 뜯어지는 떡을 맛보며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먹다 보니 접시가 비었다. 꼬마는 한창 점심 식사에 여념이 없다. 내가 제일로 꼽는 떡볶이는 떡과 어묵으로만 맛을 낸 것이다. 그 위에 화룡점정 신선한 파만 있으면 된다. 모순적이게도 오늘은 토핑 가득 먹었지만 어떤 모습이든 기억을 파고드는 이 음식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 떡 하나에 변해가는 내 모습이 주렁주렁 달려오는 그 느낌이 좋다. 영원히 변치 않는 내 모습도 이따금 건져 본다. 잊고 있던 나의 기억과 정체성을 되찾아주는 이 음식을 어찌 끊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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