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를 향한 겉절이

그대를 생각하며 만드는 요리

by 시샘달 엿새

그는 이성적이다. 그녀는 감성적이다. 어떤 날 이 둘은 양극단에 있는 것 같다.

그는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녀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같은 영화를 놓고 아주 다른 양상의 기억을 펼친다.

그는 양식파다. 그녀는 한식파다. 그가 피자며, 그녀는 순두부다.

그는 겉절이를 좋아한다. 그녀는 묵은지를 좋아한다. 한국인의 힘, 김치마저도 극단이다.


고소한 깨를 매일 볶던 신혼 시절 날마다 시도하는 요리는 복불복이었다. 결과에 항복해 한 번만 해본 것도 있고 여러 번 시도한 것도 있었다. 그때는 요리 자체가 즐거워 레시피를 묻고 찾으며 굳이 주방에서 애를 쓰며 행복한 시간을 만들었다.


문제는 김치였다. 양가에서 주신 김치가 서서히 바닥이 드러나면 그녀는 애가 탔다. 파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갓김치, 무말랭이, 섞박지 등 식탁에 어떤 김치라도 올라와야 하는 나는 처음으로 김치 만들기에 도전했다. 순전히 나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겉절이를 좋아하는 그의 취향이 떠올라 배추와 갖은 재료를 준비하며 팔을 걷어붙였다. 인생 최초로 겉절이에 도전한 것이다.



배추를 씻어 소금에 절여보았다. 굵은소금을 그냥 뿌리면 되는가? 아니면 소금물을 만들어 거기에 담가놔야 하나. 전화찬스를 여러 번 쓰고 집밥 백 선생님 레시피까지 찾으며 배추 절이기에 도전했다. 이게 된 건지 아닌지. 갸우뚱하며 맛본 절은 배추는 소태 그 자체였다. 으악 너무 짜!!! 마늘과 생강, 액젓을 기본으로 찹쌀풀까지 쑤어 열심히 흉내 냈지만 만들면 만들수록 김치가 비싼 이유를 알 뿐이었다. 내겐 너무도 어려운 김치.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다면 시도도 안 했을 것이다. 대체 엄마들은 어떻게 그렇게 뚝딱 만드는 것인지 연구하고 싶었지만 그냥 산뜻하게 포기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삼복더위를 이기려 어떤 백숙 집에 앉아 있었다. 맛있는 누룽지 백숙을 기다리며 먼저 나온 반찬에 입맛을 다시고 있는 순간, 그 집 겉절이가 눈에 확 들어왔다. 뻣뻣하게 살아있는 노란 배추에 고춧가루만 바른 모양이었다. 죽이지 않은 배추로 만들었다는 직감에 바로 맛을 보았는데, 아니 이게 웬걸. 아삭하고 짜지 않은 적당한 맛이 백숙에 찰떡궁합으로 어울렸다. 그에게도 물어보니 그 겉절이 괜찮았다고 말했다.



배추를 절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겉절이 재도전으로 이어졌다. 계절이 몇 번 바뀌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그의 입맛을 사로잡은 겉절이 만드는 방법은 드디어 정착했다.


겉절이는 한, 두 번 먹을 분량으로 적게 만든다. 제철 채소를 활용하는데 초봄에는 봄동을 자주 무쳤고 평소에는 알배기 배추를 무친다. 겉절이용 채소를 깨끗이 씻어 알맞은 크기로 썰어 물기를 털어놓는다. 마늘 네다섯 개, 생강 약간을 곱게 다진다. 대파를 송송 썬다. 큰 대접에 다진 마늘과 생강, 대파를 넣고 고춧가루 한 큰 술, 매실청 한 큰 술, 액젓 한 큰 술, 생수 한 큰 술을 넣고 골고루 저어준다. 간을 보고 내가 원하는 김치 맛이다 싶으면 됐다. 아니라면 온 미각을 동원해 부족한 맛을 채워준다. 혼자가 어렵다면 가족에게 도움을 청한다.

간단한데 맛있는 겉절이 만들기 (봄동)


양념장이 완성되면 준비해놓은 채소를 넣는다. 그 위에 꽃소금 두 꼬집 정도 골고루 뿌리고 채소에 양념장이 골고루 묻도록 조심스럽게 무친다. 살살 버무리며 이 겉절이가 부디 맛있어지도록 주문을 외워본다. 비닐장갑 낀 손으로 작은 잎 하나를 골라 맛을 본다. 생각할 찰나도 없이 바로 맛있다는 생각이 들면 성공이다. 갸우뚱하면 뭔가 부족한 것이겠지만 이만해도 김치 맛은 날 것이다. 다음에 다시 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마음에 드는 접시에 예쁘게 담는다. 그 위에 통깨를 솔솔 뿌리면 완성이다.


봄동으로 하든 배추로 하든 같은 양념으로.

그는 말도 없이 겉절이를 음미한다. 어느새 조용히 겉절이를 더 담아 온다. 그녀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이제는 비닐장갑 끼고 무치는 소리만 들려도 겉절이 만드는 걸 안다. 기대에 찬 느낌이 참 좋다.



“요즘 봄동을 많이 팔아서, 매일 겉절이를 무치게 되네.”

그녀는 쓸데없는 말을 한다.

“아, 그렇구나.”

“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오빠가 좋아해서 매일 만드는 거야.”

“…!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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