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김밥 & 꼬마 김밥

그대를 생각하며 만드는 요리

by 시샘달 엿새

“엄마, 나 김밥 말아줘.” 이부자리를 정리하는데 느닷없이 김밥 주문이 들어왔다. 이 김밥은 며칠 전 TV에서 나온 김밥 놀이를 말하는데, 우리 꼬마가 제대로 맛 들인 것 같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에게 청하는 모습에 나는 심호흡을 먼저 했다. “하고 싶은 이불 깔아봐.” 벌써 깔깔거리며 좋아하는 이불을 가져와서 내 앞에 예쁘게 펼쳤다. 그 위에 반듯하게 꼬마를 눕히고 인형과 갖은 헝겊을 얹어 맨 밑에 깔린 이불을 김밥처럼 돌돌 말면 된다. 온 힘을 쓰는 놀이라 제안에 당황하지만 어느새 행복한 김밥이 되어 옆구리 터질 것 같은 웃음이 낭랑하게 퍼지면 나도 웃음이 절로 난다. 네가 행복하면 됐다. 그런데 내가 김밥이 먹고 싶다. 그것도 집에서 만든 김밥이.



그러나 김밥 재료가 없다. 자고로 김밥이란 단무지를 대장으로 햄, 오이, 당근, 달걀, 때에 따라 맛살과 시금치를 바꿔가며 동그랗고 야무지게 말아야 할 텐데 말이다. 괜찮다. 냉장고에 묵은지가 있다. 그리고 언제나 챙겨놓는 김밥용 김과 달걀이 있다. 무슨 재료가 이렇게 간단할까 싶다. 커가면서 편하게 먹는 음식일수록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김치를 넣은 김밥을 만드셨다. 김치를 좋아한 나는 간단한 재료만으로도 김밥을 느낄 수 있는 이 별미를 좋아했고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김밥이 떠오를 때 나도 종종 김치김밥을 만들어 먹었다.



묵은지 몇 장을 가위로 쫑쫑 잘라 기름을 두른 팬에 달달 볶는다. 묵은지가 너무 시고 짜다면 물에 씻어서 볶아도 좋다. 김치를 볶다가 들기름 1큰술, 매실청 1큰술을 넣고 골고루 섞는다. 신맛을 줄이려면 설탕을 조금 넣으면 된다. 김치에 윤기가 돌고 살캉한 느낌이 난다면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불을 끈다. 달걀을 곱게 풀어 프라이팬에 부치고 얇게 썰어놓는다. 김 길이에 맞춰 길게 또는 지단처럼 채를 썰어도 좋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더 맛있다. 단무지가 있으면 좋고, 김치만으로 신맛이 충분하다면 굳이 안 넣어도 된다. 고슬고슬한 밥에 소금, 참기름, 통깨를 조금씩 넣어 골고루 섞어 놓는다. 김발 위에 을 준비하고 밥을 얇게 펴는데 김 위쪽 3~4cm 정도는 남겨 놓는 것이 중요하다. 밥 위에 지단과 볶은 김치를 일렬로 올린다. 김 밑 부분을 잡고 속 재료를 한번 덮고 돌돌 만다. 끝 부분에는 물을 묻혀 김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한다. 김발로 돌돌 꾹꾹 말면 하나가 완성된다.



김밥이 된 우리 아기 점심 메뉴도 꼬마 김밥이다. 우리 꼬마가 좋아하는 오이, 달걀, 그리고 깡통 햄을 넣어 삼색 김밥을 만들 예정이다. 김을 4분의 1로 잘라 놓고 그 길이에 맞춰 깡통 햄을 잘라 기름에 익히고, 오이는 돌려 깎아 길이에 맞춰 썰어 놓는다. 지단과 밥은 내 것을 넣으면 된다. 김발 위에 귀여운 김을 올리고 역시 밥을 골고루 편다. 위 1cm 정도는 남겨놓고 그 위에 햄, 지단, 오이를 깔아놓는다. 욕심내면 터질 수 있기에 적당히 넣고 역시 힘 있게 말아본다. 분식점 꼬마 김밥 모양이 나온다. 순간, 지단에 발이 달렸는지 접시가 비었다. 어느새 옆에 와서 지단을 집어 먹는 꼬마가 범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달걀을 하나 더 깨뜨려 지단을 순식간에 만들고 나머지 김밥을 말았다.


이 김밥은 내가 육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회사원 때, 아이의 소풍 도시락을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김밥을 만들고 출근을 한 워킹 맘 선배가 만든 작품이다. 선배의 고달픔은 하나도 모른 채 앙증맞은 김밥을 먹으며 이렇게 작은 김밥이 세상에 있구나 싶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는 워킹 맘이 아니지만 조금씩 그 선배가 얼마나 최선을 다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작은 김밥에 돌돌 말린 마음이 어떨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오늘도 그 선배를 떠올리며 덩달아 우리 아기도 소풍을 가면 꼭 싸주고 싶은 귀여운 꼬마 김밥도 모두 완성되었다.

도마 위에 김치 김밥 2개, 꼬마 김밥 2개를 경건하게 올려놓고 그 위에 참기름을 살짝 발랐다. 순간 소풍 가던 날 아침, 날 깨운 알람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우리 집에서 가장 잘 드는 칼로 조심스레 썰었다. 참지 못하고 꼭지부터 날름 맛보며 그때 그 맛을 느껴본다. 완성된 꼬마 김밥보다 더 귀여운 김밥 꼭지도 아기 입에 넣어준다. 김밥 안 먹는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갑자기 맛있다고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에 참 고맙다. 그렇게 서서 몇 개 집어먹다가 접시에 담아 제대로 식사를 시작했다. 김밥 놀이를 하며 줄어든 체력이 김밥을 싸며 방전 되었지만 이 정겨운 음식을 먹으며 오늘도 행복으로 배를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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