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생각하며 만드는 요리
보글보글 샤부샤부가 먹고 싶은 날이었다. 손님이 오시거나 따끈한 국물이 당길 때, 혹은 남은 국물로 만든 죽이 유난히도 먹고 싶을 때 샤부샤부가 떠오른다. 주말 첫 메뉴를 위해 냉장고를 열어봤다. 며칠 전 사 놓은 샤부용 소고기가 있었다. 딱 좋다. 채소는 알배기 배추, 깻잎, 팽이버섯이 있다. 이것만으로는 채소가 좀 부족한데, 산책 겸 시장에 다녀와야 하나. 그러기엔 왠지 귀찮아서 참 오랜만에 해보는 밀푀유나베로 노선을 바꿨다. 냉장고에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나의 요리 철학 ‘Simple is the best'로 만드는 오늘의 점심, 밀푀유나베다.
샤부샤부용 소고기 500g, 알배기 배추, 깻잎, 팽이버섯, 양파를 준비한다. 육수는 물, 멸치 가루, 조각 다시마를 끓여 준비한다. 물이 끓으면 다시마를 제거하고 소금 반 큰술과 다진 마늘을 조금 넣어 멸치 냄새를 없애준다. 배추, 깻잎을 깨끗이 씻어 꼭지를 깨끗이 다듬어 물기를 뺀다. 팽이버섯과 양파도 씻는다. 양파는 동그란 단면으로 썰어 놓는다. 잎사귀를 만든다. 알배기 배추를 맨 밑에 깔고 그 위에 소고기를 얇게 포개고 그 위에 깻잎을 포개고, 다시 소고기, 깻잎, 소고기를 올리고 맨 위에 배추로 덮는다. 몇 단 샌드위치처럼 몇 개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배추 샌드위치를 3등분으로 잘 썰어 놓는다. 오목한 냄비 밑에 양파와 팽이버섯을 살포시 깔고 그 위에 잎사귀를 냄비 가장자리부터 야무지게 포개 넣는다. 열심히 두르다 보면 중간이 비는데 그곳에 팽이버섯을 꽂는다. 마침 양송이버섯이 있어서 꾸밈 용으로 하나 얹었다. 조금 더 신경을 쓴다면 숙주, 청경채, 표고버섯이 들어가면 좋은데 오늘은 냉장고 파먹기를 위한 요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냄비가 꽉 차면 그것만으로 참 예쁜 요리다. 이 재료가 익을수록 아름다움은 사라지기 때문에 더 못 볼 이 모습을 찰칵찰칵 사진으로 남겨놓고 아까 끓여놓았던 육수를 부어 끓인다. 채소에서 수분이 나와서 컵라면 물 붓는 선 정도까지만 부었다.
약한 불에 보글보글 끓는 사이 소스를 준비한다. 냉장고에 있는 칠리소스, 스리라차 소스를 접시에 담았고 간장에 고추냉이를 넣은 간단한 소스를 추가했다. 세 가지로는 조금 아쉬워서 폰즈 소스와 비슷한 소스도 휘리릭 만들었다. 고추 피클(또는 청양고추)을 종종 썰고 간장 2큰술, 식초 2큰술, 매실청 1큰술을 넣어 섞었다. 매콤 새콤한 이 소스를 곁들이면 밀푀유나베가 훨씬 근사해진다. 매실청 대신 유자청으로 넣으면 더 향긋하고 새콤해지는데 다 먹고 나서야 기억이 났다.
보글보글 잘 끓었다. 고기는 얇아서 금방 익을 것이고 배추가 적당히 익으면 불을 끈다. 흐물흐물해진 채소와 회색 비슷한 색으로 변한 고기를 건져 다양한 소스에 한 번씩 찍으면 슴슴한 맛이 옷을 입어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아뜨뜨 하면서 혀도 데지만 뜨끈한 국물 한 숟가락에 따뜻한 기운이 도는,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맨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팽이버섯과 양파도 살캉살캉 달달하다. 채소와 고기를 한 번씩 건져 먹다 보면 식탁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밀푀유나베는 몇 해 전 ‘오늘 뭐 먹지’ 프로그램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두 명의 진행자가 맛있게 시식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도 요리의 화려한 모습에 넋을 놓았다. 천 개의 잎사귀라더니, 냄비에 재료가 담긴 모습은 흡사 꽃다발 같았는데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싶을 정도로 요리의 색깔이며 담음새에 반한 것은 처음이었다. 육수를 붓고 냄비를 끓일수록 처음의 화려한 모습은 사라지는데 꽃잎이 저무는 것 같았다. 감상 끝에 재료가 다 익으면 일반 샤부샤부처럼 다양한 소스에 찍어서 먹으면 되는 음식이었다.
한창 요리 배우기에 빠졌던 나는 주말에 밀푀유나베를 시도했다. 블로그를 찾아보며 만들었는데 멸치 육수를 내기 위해 마른 멸치도 사고 폰즈 소스를 만들기 위해 레몬도 사면서 하나부터 끝까지 재료를 공수하느라 준비 단계부터 가성비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무엇보다 적당한 냄비가 없어서 자취집 아무 냄비에 채우느라 아무리 넣어도 그릇이 가득 차지 않았다. 급기야 재료가 부족해 속이 꽉 찬 냄비가 되지 않아서 나중에는 그냥 고기와 채소를 헹궈 먹었다. 그 이후 나에게 밀푀유나베는 손이 많이 가고 예쁘기만 한, 치장하는 일이 참 고된 요리로 남았다.
새댁이 되고 신혼집에 손님을 초대할 기회가 왕왕 생겼는데, 초대 요리로 늘 추천하는 이 음식을 생각하지도 않고 패스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예쁘기에 이만한 건 없는데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샤부샤부를 해 먹든가 아니면 삼시세끼에서 박신혜 배우가 선보인 간장 샤부샤부를 즐겨 먹었다. 나만의 요리법을 터득하면서 요리는 필수 재료로 최대한 쉽게 하려고 하는데, 오늘 문득 밀푀유나베가 그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처럼 맛은 참 좋았다. 그러나 힘은 덜 들었다. 어렵지 않게 시도한 오늘의 점심 메뉴는 꽤 근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