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결혼기념일

그날을 떠올리며 만드는 샹그리아

by 시샘달 엿새

그날 기억나? 맞아, 그랬어. 서로가 함께 기억의 퍼즐을 맞추며 4년 전 오늘을 추억했다. 마치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과 떨림으로 맥모닝과 함께 결혼기념일 아침을 열었다. 우리 오늘 뭐 할까? 꽃놀이다 뭐다 봄이 이곳저곳에서 손을 흔들지만 이번만큼은 자제해야 했다. 딱히 떠오르는 뾰족한 일정이 없어서 그냥 흐름에 맡기기로 했다. 오늘 특별히 휴가를 낸 나의 영원한 신랑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조식을 마치고 창밖을 보니 파란 하늘이 보였다. 구름도 두둥실 떠 있었다. 그날 아침은 잠시 맑았지만 이내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었는지 뿌옇게 변했던 것 같다. 오늘은 마치 하늘이 빨래한 것처럼 맑아 우리 마음도 상쾌해졌다.



침대 청소하자! 창문을 활짝 열고 그가 청소 준비를 했다. 아무리 내가 결혼 후 팔뚝이 굵어졌다지만 매트릭스 청소만큼은 신랑의 도움이 필요했다. 며칠 전 내 말을 기억하고 오늘 아침 침대 청소를 맡았다. 이불을 걷어내고 매트릭스 먼지를 빨아들였다. 매트릭스를 들어내 그 밑에 뭉쳐 굴러다니는 먼지 뭉치도 빨아들이고 물걸레질을 몇 번 했다. 속이 다 시원했다. 매트릭스 방향을 바꾸고 깨끗하게 빨아놓은 침구로 단장하니 신혼집에 처음 도착한 침대를 맞이한 기억이 떠올랐다. 마침 바깥 날씨가 좋아 침대 청소하기 딱 좋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나른한 오후를 보내다 오늘 꼭 만들려고 준비한 것을 꺼냈다. 오늘 새벽 산책길에 산 술을 식탁에 올려놓고 냉장고에서 오렌지, 사과, 사이다를 준비했다. 우리가 신혼여행을 추억하는 칵테일, 샹그리아를 만들 작정이었다. 방법은 무척 쉽다. 사과와 오렌지를 깨끗이 씻어 껍질째 얇게 썰어놓는다. 적당한 병에 과일을 반 이상 골고루 담고 레드 와인 3: 사이다 2 비율로 넘치지 않게 담고 뚜껑을 닫아 하루 정도 냉장고에서 숙성시키면 완성된다. 우리 결혼기념일 즈음이면 오렌지가 많고 맛있어서 샹그리아 만들기에 딱 좋다. 과일을 씻고 와인을 따며 함께 샹그리아를 만드는 동안 우리는 스페인으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고심 끝에 결정한 스페인. 그중에서도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에서 보낸 신혼여행은 우리 생에 최고의 여행이었다. 결혼식 헤어도 유지한 채 17시간 만에 도착한 바르셀로나는 피로도 못 느낄 정도로 좋았다. 이 나라 사람들이 즐겨 마신다는 샹그리아는 음식을 더 맛있게 해 줬다. 복스럽게 담긴 과일 섞인 와인은 바라만 봐도 예뻤다. 가우디 투어를 하는 구엘 공원에서도, 람블라스 거리에서도, 쇼팽을 찾은 마요르카에서도 음식과 함께 샹그리아를 곁들였다. 한 모금 마셨던 그 순간을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포도주에 소주를 탄 것인지 목을 태우는 것 같은 맛에 대낮부터 얼얼하게 취기가 올랐다. 이로 인해 가우디 투어가 멈추는 줄 알았지만 간신히 성 가족 대성당에 도착해 최고의 순간을 함께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신혼집에서 거의 매일 샹그리아를 만들었다. 그때를 기억하며, 그때보다 훨씬 순하게.

가우디를 만나는 길, 먹물 빠에야와 함께 한 샹그리아
마요르카 소예르 항에서 핫도그와 함께한 샹그리아


시간 여행을 마치며 만든 샹그리아를 냉장고에 넣어놓았다. 어느덧 그날 우리의 결혼식 시간이 다가왔다. 날씨는 여전히 좋았다. 우리 셋 함께 잠깐 바람을 쐬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마스크를 쓰고 도착한 아파트 단지 커다란 나무에는 아직 꽃잎이 남아 있었다. 적당한 바람이 불어 이따금 꽃 비를 뿌리는 황홀경에 취하기도 했다. “아빠, 꽃잎 잡고 싶어.” 아빠가 된 나의 신랑은 열심히 꽃잎을 잡으러 뛰어다녔다. 아름답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우리는 함께 하고 있었다. 이 행복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꽃나무가 자리한 파란 하늘 아래 마스크를 한 우리 가족은 조심스러운 오늘을 서로의 마음에 담아보았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오늘을 돌이켜보니 군데군데 커다란 행복이 동그랗게 자리하고 있었다. 1주년은 신생아를 갓 벗어난 우리 꼬마와 집에만 있었고 2주년은 그 꼬마가 어느 정도 커서 외식을 했었다. 3주년은 여행을 하며 타지에서 결혼식을 기념했었다. 4주년 오늘은 집에서 일상을 보내면서 틈틈이 결혼식을 떠올려보았다. 매년 오늘이 돌아올 때마다 때로는 새로운 장소에서 특별한 일정과 함께할 것이고 때로는 오늘처럼 기념할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이든지 우리가 함께 만든 행복이 그해의 결혼기념일을 더 빛나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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