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아니었으면 놓쳤을 이야기
동이 트는 아침 유난히 맑은소리가 나를 이끌었다. 이 호기심으로 옷을 갈아입고 조심스레 집을 나섰다. 한눈에 들어오는 바깥세상은 새벽 공기로 가득하다. 마스크를 뚫고 맞이하는 신선한 공기는 이내 몸속에 들어와 정신을 맑게 해준다. 1층에 도착해 바깥으로 나오니 나를 이끈 그 소리가 더 진하게 다가왔다. 바람도 없는 푸른 새벽에 듣곤 했던 아기 새 소리였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봐도 새는 찾을 수 없었다. 둥지에서 아침을 먹고 있나 보다. 내 주변에 있던 키 큰 나무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내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툭, 툭, 휙, 찌지지직’ 오늘은 분리수거 요일. 언제 펼쳐놓으셨는지 어슴푸레 새벽인데도 분리수거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상자 한가득 우리 집에서 생산한 껍데기들을 마대자루 별로 분리하고 있었다. 앗. 그런데 소리가 너무 크다. 지금 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조금 전까지 새 소리로 기분이 좋았는데, 갑자기 사랑스런 소리는 사라지고 쓰레기들이 날아가서 마대자루에 냅다 떨어지는 소리로 가득 찼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하나씩 조심스레 놓아봤다. ‘짝짝짝’ 손을 털고 그냥 집에 돌아가는 길이 아쉬워 잠시 걷는 길을 선택했다.
도로에 조금씩 늘어가는 것 같은 차들이 보였다. 동시에 뒤에서 자동차 리모컨으로 차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양손을 주머니에 꽂고 쪽문으로 단지를 탈출하는데 그 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오늘도 회사에서 건승하시기를. 아직 앙상한 화단을 보며 코너를 도는데 빨간 신호에 버스가 멈추는 소리가 들린다. ‘끼익~!’ 갑자기 회사원 시절 마르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이른 버스를 탔던 기억이 떠올랐다. 초록 버스 안 모든 분들은 마스크를 쓰고 계셨다. 현실을 자각하며 다시 내 길을 걸었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화단 길이 계속 이어졌다. 평소에 자주 걷는 길인데 정말 앞만 보고 걸었나보다. 하룻밤 사이 변해있는 벚꽃은 팝콘이 되어 곧 작별 인사를 할 것 같았다. 오늘 못 봤으면 1년을 기다릴 것 같은 아찔한 안도감에 더 반가웠다. 꽃나무 아래서는 여기에 개나리가 있었다고 작은 몇 송이가 용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서 난데없이 '찰칵' 소리를 곁들였다.
‘딸랑’ 어디선가 이른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가게일까? 작고 예쁜 종소리가 손님이 오셨다고 알려주기 전에 주인을 맞이하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탁! 윙~~~’ 어느새 오른쪽에는 편의점이 있었고 커다란 냉장고가 아침 일을 시작하는 모양이다. 냉장고를 지나 다시 단지로 들어갔다. 지난가을에 이발한 앙상한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곳곳에 꽃들이 피어있고 또 지기 시작하고, 이미 새순도 돋으며 제각각 속도로 자연의 시간이 흐른다.
도시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용한 새벽에 눈을 감고 들어본 소리는 내가 자연 어느 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늘 그자리에 있는 자연도 올 봄의 이야기를 묵묵히 이어가고 있었다. 속세의 소리와 모습이 곁들여지지만 이것도 우리 삶에 꼭 필요할 터. 이 요상한 새벽 봄의 어우러짐 속에 선물 받은 오늘 아침이 유독 빛났다.
걷다 보니 우리 동 앞에 다다랐다. 다시 아까 들었던 어린 새의 지저귐이 들린다. 형제 자매들도 일어난 것인지 귀엽고도 요란한 시끄러움이 알람소리가 되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잠시 멈춰서 오늘의 소리를 담았다. 새벽하늘 도화지에 나뭇가지와 목련을 그려 넣고 새들의 지저귐을 흘러넘치도록 가득 채워 보았다. 산책하고 싶다고 노래 부르는 우리 꼬마에게 들려줘야지.
아까보다 사람들이 많아졌다. 차도 움직이고 집집마다 빠르게 불도 켜진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새벽이 선사하는 소리와 모습을 마음껏 누려보니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 마음에 새벽 봄이 선사한 여유가 가득찼다. 이 여유로움으로 휴식을 위해 들어가는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안식처가 되기를, 하루를 시작하는 누군가에게는 평온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