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읽은 꿈나무를 위한 책
아이들의 책은 항상 충격을 준다. 어른이 되어 만난 아이의 책은 미처 보지 못한 풍경을 다시 마주한 감동처럼, 놓쳤다면 아찔한 느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책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서평 작성 과제가 있어서 주기별로 책 한 권을 탐독한다. 단지 과제를 위해 접한 ‘옥수수를 관찰하세요’를 읽고 오늘 아침 내내 책이 준 가르침을 되새기느라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 책은 여성 유전학자 바버라 매클린톡의 삶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목소리로 어린 시절부터 여성 최초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노년기까지 삶의 순서대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일종의 위인전인 셈인데, 표지 상단에 ‘인물다큐’라고 쓰인 점이 시대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책 제목도 이상스럽고, 표지도 영 끌리지는 않았기에 기대하지 않고 책을 시작했다. 제목처럼 옥수수를 관찰하느라 옥수수밖에 모르는, 한 여성 과학자의 삶은 갈수록 나의 호기심과 흥미를 북돋웠다.
“학교 공부는 하루에 여섯 시간씩 학교에서 하는 걸로 충분해요. 나머지 시간에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집중하게 해야죠.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이 무엇이 될지가 아니라 지금 모습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바버라 매클린톡의 부모님은 자녀의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였기에 매클린톡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닌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독립적이고 호기심 많은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이런 환경과 성격 덕에 시대가 요구하는 ‘여자다움’을 벗어나 본인만의 길을 걷는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과학과 수학을 좋아했던 고등과정을 지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뻔했으나 자신의 노력으로 학업을 이어갔다. 대학에서 그녀는 원하는 강의를 마음껏 듣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온전한 사랑, 옥수수를 만나기까지 다양한 세계를 자유로 유영하는 시간을 보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내게 큰 기쁨을 줄 테니까’라는 말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깨달음의 문장이다.
“사람들은 정해놓은 기준에서 분류되지 않는 것은 비정상으로 취급하지. 내 연구 결과는 생명의 신비로움을 다른 시각에서 보았기 때문에 발견한 거라고 생각해.”
매클린톡은 대학교 3학년 때 유전학을 알게 된다. 생명의 비밀을 탐구하는 유전학에 매료되어 깊이 알고 싶은 지적 욕구가 생겼다. 교수의 제안으로 진행한 첫 연구에서 최초로 옥수수 염색체를 식별하는 방법을 발견했지만 기존의 방식대로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며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았고 오히려 옥수수 염색체에 더 몰입하는 계기가 된다. 옥수수는 유전학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작물이기에 아예 옥수수 농장에서 살면서 연구를 진행했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옥수수를 지키고 가을에 수확하여 염색체를 조사해 1931년 그 결과를 정리한 논문을 발표했다. 다른 식물도 연구하면서 1950년에 ‘이동성 유전자’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지만 읽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학술 토론 회의에서 연구 결과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별 관심을 못 받았고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인다며 학계의 냉대를 받았다. 그래도 매클린톡은 멈추지 않았다. 기존과는 다른 시각에서 예외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새로운 발견을 하기 위해서는 선입관을 버리고, 인내심을 갖고, 대상에 몰입해야 한다는 과학자의 자세를 넌지시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인생은 참 이상해”
매클린톡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유전학은 계속 발전했다. 1960년 프랑스의 두 과학자가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 매클린톡이 그간 연구한 내용과 비슷해서 두 과학자와 매클린톡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세 과학자는 학계에 발표하지만 두 과학자는 노벨상을 받고 매클린톡의 ‘이동성 유전자’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다시 묵묵히 과학의 길을 걷고 있는데 인생은 참 이상하게도 매클린톡의 가설이 옳다는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후대의 연구가 매클린톡이 발견한 사실에 닿은 것이다. 30년 가까이 외면받은 연구결과는 결국, 1983년 여성 최초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옥수수를 연구하는 동안 모든 기쁨을 누렸기에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는 소감을 표현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일이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의미에 큰 울림이 있었다. 세상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은 의연한 자세가 과학의 발견을 초월한 삶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 주는 것 같다.
이 책은 꿈을 헤매는 초등학교 고학년 친구들이 읽으면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접하면 어떨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고, 특히 과학의 세분된 분야 ‘유전학’이 궁금하다면 관련 용어와 과학자도 언급되기에 유익함도 얻을 수 있다.
어른이 되어 이 책을 읽어보니 아이의 개성을 존중하자는 다짐을 한다. 교육 과정에만 매진하지 않고 아이 주도로 세상의 재미를 찾도록 부모는 한 발 뒤에 있어야겠다. 무엇보다 ‘실패’라는 단어에 연연하지 않도록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자세를 알려주고 싶다. 이 책은 어쩌면 노벨상이라는 업적 덕에 매클린톡의 연구 여정이 세상에 드러난 것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업적은 단지 거들뿐, 과학자로서 진정 본인이 몰입하고 즐긴 연구 자체에 이미 기쁨의 보상을 받았다는 말로써 이 책이 알려주는 가장 큰 가치가 내 안에 촘촘히 새겨져 있음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나를 믿는 마음이 중요해요.
시간이 오래 걸려도 내 방식대로 묵묵히 밀고 나갈 수 있는 뚝심을 가져야 해요."
'옥수수를 관찰하세요' 크리스티아나 풀치넬리 글, 알레그라 알리아르디 그림, 김현주 옮김, 책속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