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향수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by 시샘달 엿새

‘똑똑’ 고1 야간 자율학습 1교시. 내 책상 위에 누군가 노크하는 모습에 고개를 들어보니 담임선생님이셨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대, 어서 집에 가봐” 순간 멍했다. 오늘 종일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었다. 어제부터 할아버지께서 매우 편찮으시다는 얘기를 들어서 신경이 내내 쓰였던 것이다. 어서 집에 가서 동생과 함께 아빠 친구분의 도움으로 시골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할머니와 부모님이 할아버지 곁을 지키고 계셨다. 바람이 몹시 차갑게 부는 시월 중순의 밤이었다. 우리 네 식구는 병풍을 사이로 할아버지와 함께 그 밤을 보냈다.


날이 밝았다. 시골에서 치르는 큰일이라 손이 많이 필요했다. 고모들, 삼촌 가족까지 모이니 작은 시골 마을은 오랜만에 사람으로 북적였다. 먼 친척까지 모이고 아빠의 절친한 친구들까지 속속 도착하니 집안에 앉을 데가 없었다. 조문이 이어지고 부엌에서는 조문객을 대접할 음식을 마련하느라 쉴 새 없다. 시골집 대문 앞에 있는 비닐하우스는 식사 장소로 변했다. 나는 친척들과 그 과정을 보며 할아버지의 첫 번째 친손주 역할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길. 깊은 가을의 안개와 서리가 내려앉은 추운 이른 아침. 할아버지를 배웅하려 모두가 모였다. 몇 번을 오열하신 둘째 고모는 무릎을 꿇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셨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뒤따라 길을 걸었다. 친하게 지내신 옆집 할아버지 댁을 지나고, 또 왕래가 잦았던 그 옆집 아저씨 댁을 지났다. 내가 태어나던 해였던가 만들어졌다는, 도랑 위 커다랗고 튼튼한 다리를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건너신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할머니의 여덟 번째 출산으로 첫아들, 아빠를 얻으셨다. 아빠의 첫 딸인 내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춤을 추셨단다. 그리고 귀한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을 제안하셨다. 첫 생일에는 당시 귀했던 케이크를 직접 구하셔서 돌상 위에 올리셨다. 내 첫돌 사진에는 할아버지가 나를 안고 환하게 웃고 계신다. 아빠의 만류로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할아버지의 사랑과 정성을 먹으며 자랐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농사일을 쉬시는 겨울이면 나는 한 달 정도 할아버지 댁에서 지냈다. 저녁을 앞두고 지게 가득 나무를 해 오셔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다. 우리의 저녁이 완성되면 들에 매어놓았던 소를 집으로 몰고 여물을 먹이셨다. 소박한 시골 식사를 마치면 채널 몇 개 없는 텔레비전을 함께 보며 볏짚을 엮으시기도, 꾸벅꾸벅 주무시기도 하셨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할아버지는 젊은 날 강제 징용을 다녀오셔서 몸이 편찮아지셨다. 자주 편찮으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할머니께서 생계를 이끌어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초등학교 입학식 때 할아버지 손을 잡고 담임선생님께 명찰을 받으러 갔다. 가을 운동회에 할아버지가 오셔서 식구 모두 돗자리에 앉아 함께 김밥을 먹었다. 정글짐 뒤 나무 아래 돗자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우리는 무척 좋았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할아버지는 침놓는 기술을 가지셨다. 내가 우리 꼬마만 했던 네 살 무렵, 할아버지와 마지막 밤을 보낸 그 방에서 할머니는 침을 맞고 계셨다. 아프실까 봐 동생과 함께 할머니 눈을 가려드리고 ‘호~’ 불어 드렸던 기억이 있다. “에고 이쁜 내 새끼, 우리 강아지. 할미 안 아파” 늘 웃고 씩씩하시던 할머니께서 편찮으신 날에는 할아버지께서 제일 먼저 할머니를 보살피셨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인사를 못 드렸다. 돌아가시기 한 주전, 급하게 나오느라 귀가 어두우신 할아버지께 학교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깜빡했었다.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마지막이라니. 난 그 사실이 너무 서글퍼 한동안 먹먹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얼마 후, 내 꿈속에서 할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오셨다. 나는 햇볕이 따뜻하게 비치는 조용한 학교에서 할아버지의 손을 씻어 드리고 있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다리를 건너니 시골길 차도가 나온다. 신작로 옆은 논으로, 반대쪽은 도랑이 이어진다. 다시 산이 나온다. 좁은 산길을 열심히 따라간다. 할아버지의 마늘밭이 움푹 파여 있었다. 할아버지를 자연에 안전하게 모셔 드렸다. 그곳에서는 시골집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하늘과 더 가까워진 곳에서 할아버지는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 나는 명절마다, 그리고 시골에 갈 때면 할아버지 산소를 찾는다. 인사를 드리고 다시 또 오겠다는 약속을 반복한다.


결혼을 앞둔 설날. 차례를 올리고 여느 때처럼 부모님과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를 찾았다. “아부지, 엄니, 우리 딸 시집가요.” 아빠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태어나 17년 동안은 할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 그보다 더 긴 세월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 손녀가 나중에 할아버지 나이가 되더라도 묵묵히 주셨던 사랑은 절대 못 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