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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Apr 07. 2020

꼬마야 꽃신 신고 단지에나 나가보렴

너를 사랑하는 시간

“엄마, 나 밖에 나가고 싶다.”

꼬마가 거실 창문에 붙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청소하다 순간 멈칫했다. 이런 표정과 말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서 모를 줄 알았다. 아이라서 괜찮은 줄 알았다. 언제 외출을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봤다. 지난 2월 중순 집 앞 마트를 다녀온 후 대한민국은 멈췄다. 꼬마도 집 안에 머물며 그 멈춤에 동참하고 있던 것이다.

“밖에서 뛰놀고 싶다. 꽃 만져보고 싶다. 아 답답해.” 

별 내색 없던 아이라 나름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다. 창밖의 풍경이 보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구나. 어려도 다 아는구나. 어려서 괜찮은 건 없구나.



“마스크 하고 엄마랑 잠깐 꽃 보고 올까? 간식도 사 오고.” 

“정말? 우와? 와 신난다. 좋아!”

나가자는 얘기에 이렇게 방방 뛰다니 미안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오랜만의 외출에 몸과 마음이 달나라까지 올라간 것 같다. 입을 옷을 골라오는데 여름 원피스를 골라왔다. 진정 계절을 잊은 모양이다.

“바깥은 추워. 따뜻하게 입어야 해.” 그런 거냐며 배시시 웃으면서 옷을 함께 골랐다. 바람이 왠지 차가울 것 같아서 단단히 외출 준비를 마치고 신발을 신었다. 주인을 기다린 운동화에 빛이 닿았다. 작았던 발을 조심스레 넣으니 헐거웠던 운동화가 꼭 들어맞는다.



꼬마야 꽃신 신고 단지에나 나가 보렴

오늘 봄엔 꽃나무 봄빛 춤출 텐데


너는 들리니 바람에 묻어오는 자연 빛 노랫소리

그건 아마도 봄빛처럼 예쁜 마음일 거야


꼬마야 그 빛에 입 맞추렴



현관문을 나섰다. 꼬마의 손을 잡으니 왠지 긴장과 기대가 느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수십 일 만에 디뎌본 대지는 어떨까. “아, 상쾌해.” 생각보다 춥지 않은 것 같아 안도하며 손을 잡고 꽃나무로 향했다. 나 홀로 쓰레기를 버리고 감상을 즐기곤 했던 익숙한 길을 꼬마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이 아이에게 네 번째 봄이 사라지기 전에 이렇게 봄이 왔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마침 그 길은 봄바람이 일어 꽃잎이 흩날리며 움직이는 액자가 되었다.

“와, 예쁘다. 꽃 만져보고 싶어.” 

자연의 아름다움은 어릴수록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 이끌림에 어느덧 우리도 액자 속에 들어와 있었다.



“아빠 차야?!” 

언제 움직였는지 역시 기억이 가물거리는 아빠 차도 꽃바람을 맞고 있었다.

“아빠 빠방도 꽃놀이하네. 새똥이 무더쪄. 어떡해”

“응 그러네. 아빠 속상하니까 말하지 말자. 비가 오겠지.”

모녀가 숙덕숙덕하며 초록과 노랑이 섞인 개나리를 만났다. 키와 비슷한 꽃에 본능적으로 코를 가까이 댔다.

“음, 냄시(냄새) 좋다.” 

우리 꼬마 KF 80 마스크는 개나리 향을 얼마나 걸러줄까. 향이 나는지 의심스럽지만 행복해 보이니 그걸로 됐다. 마스크를 낀 채 꽃향기를 맡는 사진도 찰칵 남기고 미션을 수행한 듯 서둘렀다.


 

어느덧 거실에서 매일 보던 벚나무에 도착했다. 집에서는 내려서 봤는데 가까이에 가니 고개를 높이 들어야 간신히 보였다. 꼬마를 안으려던 찰나, 나무 기둥에 열심히 인사를 하는 벚꽃 잎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세게 불어 마구 움직이고 있었는데 여린 꽃잎이 꽤 씩씩하게 버티는 느낌이었다. 꼬마도 그 꽃에 눈을 떼지 않았다.

 “태리야, 안 추워?”

 “응, 시원해. 바람 너무 좋다. 엄마 나 옴총 답답해떠(엄청 답답했어)”

말 못 했으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창으로 보는 풍경은 일부일 수밖에 없나 보다. 진정, 바람을 느껴야 우리 마음이 자연에 위로받는가 보다.




찰칵찰칵. 며칠 후면 여린 잎으로 변할 꽃이 너무 아쉬워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엄마, 차 와. 위험해.”

“???” 

나는 분명 차가 없는 곳에서 이러고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차 한 대가 주차 준비 중이었다. 갑자기 죄송스러워져서 긴급하게 철수했다. 이제는 내 안위까지 챙길 만큼 자랐구나. 안전한 길에 도착해 다시 손을 잡고 꽃길을 걸어보았다. 연분홍 벚꽃 잎이 바닥에 후두두 떨어지고 저쪽에서는 회오리바람에 맞춰 군무를 추고 있었다. 목련이 하나, 둘씩 떨어져 바닥을 꾸며주고 있었다. 봄이 무르익고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떨어진 꽃잎을 밟고 있었다. 뽀얀 하얀색과 여러 갈색이 섞인 시든 꽃잎은 덜 예뻤나 보다. 다음에는 밟지는 말자고 약속했다.



오랜만에 도착한 마트에서 먹고 싶은 간식을 직접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손을 잡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지난겨울 눈 구경을 하면서 걷던 길이 나타났다. 하얗게 쌓인 눈 위에 강아지 발자국이 있던 화단에는 커다란 새싹이 파릇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새싹은 커서 뭐가 될까? 꼬마와 함께 새싹의 미래를 꿈꾸며 올해의 봄과 오늘을 우리 마음에 더 소중히 담아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C6Y-FRJh-xA&list=RDC6Y-FRJh-xA&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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