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하는 시간
낮잠 자기 딱 좋은 날이네. 하늘에는 구름이 낮게 깔리고 어제보다 차가운 꽃샘바람이 몸을 웅크리게 했다. 점심을 먹고 정리하는 시간, 꼬마도 날씨에 졸음이 느껴지는지 평소보다 차분했다. 여기서 꼼지락 저기서 꼼지락 하다가 결국 침대로 향했다. 이렇게 스스로 침대로 향하다니 대견스러워 감격에 겨웠지만 내색은 하지 않기로 한다. “엄마, 나 졸려. 자장자장 해줘.” 햇볕이 들어오는 창을 피해 몸을 편하게 눕혀 보았다. 꼬마가 좋아하는 이불과 인형 친구들이 커다란 침대를 다 차지했다. 나는 그 옆에 누워 한 손으로 팔베개를 하고 한 손으로는 꼬마의 배를 토닥토닥한다.
온몸으로 깜짝 놀라 주변을 살펴보니 아기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사방이 조용했고 나는 갑자기 내가 누구며 여기는 어디이며 무엇을 하는 건지 삽시간에 자문했다. 이내 꼬마와 함께 잠이 들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것도 잠시, 머릿속에 내적 갈등이 시작됐다. 빨래, 겨울옷 정리, 분리수거, 생각할수록 해야 할 집안일이 쌓여갔다. 이건 아니야. 그러면 영화를 볼까, 그냥 핸드폰만 봐도 재밌겠다. 오늘 같은 여유로운 오후에 커피 한잔 마시며 편하게 책을 봐도 좋겠다. 다양한 선택지가 좌르르 펼쳐지며 내 안에 숱한 내가 충돌했으나 결국 나는 낮잠을 선택했다. 일어나기에는 침대가 너무 달콤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말도 안 되는 꿈에 잠이 다시 깼다. 꼬마의 배가 까꿍 하고 있었다. 춥지 않도록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래도 밤이랑은 다르게 낮에는 얌전히 자는 것 같다. 매일 보는데도 이렇게 크는 걸 보면 문득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꼬마의 미래를 기분 좋게 상상하며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신생아 때 집에 와서 모두가 서툴렀던 그때가 갑자기 떠올랐다. 초보 엄마, 아빠는 밥도 함께 못 먹었고 아기는 편안했던 조리원이 그리운지 최선을 다해 울었다. 우여곡절 끝에 며칠이 지나고 3월을 향하는 초봄의 햇살이 꼬마가 함께한 우리 집에 길게 들어오던 어느 오후, 우리 셋은 처음으로 낮잠을 잤다. 역시 깜짝 놀라며 깼지만 이런 평화는 처음이라 어리둥절한 행복을 느꼈다.
다시 잠들고 다시 깼을 때 드디어 나는 잠이 달아났다. 침대에 누워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데 꼬마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왠지 일어날 것 같다. 한 번 더 방향을 바꾸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나를 찾는 표정이 보인다. 우리 둘은 눈이 마주쳤다. 꼬마가 싱긋 웃는다. 나도 웃는다. “잘 잤어?” 고개를 끄덕이며 꼬마가 말한다. “엄마, 나 안아줘.” 나에게 다가오는 우리 꼬마를 한 품에 안아본다. 아직 내 안에 쏙 들어오는 우리 아가. 혹시 추웠을까 걱정을 하며 곧 따뜻해지도록 와락 안아본다. 푹신한 침대와 포근한 이불이 포옹과 어우러졌고, 우리는 낮잠으로 잠시 떠났던 서로의 시간에 안부를 물어본다.
오늘도 이만큼 컸다. 잘 자고 일어난 날엔 이런 생각이 더 커지는 느낌이다. 어느덧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유시간과 바꿨지만 평온한 휴일 오후에 함께한 단잠에 꼬마와 나의 기분이 상쾌해졌다. 덩달아 가뿐해진 몸으로 남은 휴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침대를 벗어났다. 아까 애써 미뤄둔 집안일이 떠올라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 꼬마는 침대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배터리 충전을 완료한 우리 꼬마가 갑자기 치타처럼 뛰어나간다. “아빠~~” 모두의 휴식이 끝난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