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숲 속 중학교

너의 오늘과 나의 옛날을 잇다

by 시샘달 엿새

“태리는 어떤 날씨가 좋아?”

“음~ 시원한 거!”

“정말? 엄마도 바람 부는 시원한 날씨가 좋은데. 우리 똑같네!”

아침에 EBS에서 방영하는 우리 집 유치원을 보다가 날씨 이야기가 나와서 문득 궁금했다. 우리 꼬마는 어떤 날씨가 좋을까, 나는 어떨까. 생각보다 구체적인 대답에 이유를 알고 싶었다.

“왜 시원한 날씨가 좋아?”

“음, 달콤한 냄시(냄새)가 나. 나무에 냄시가 났어.”

“???”

아마도 산책을 하면서 쐰 바람에 기분 좋은 향을 맡은 것 같다. 나무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는 말에 갑자기 20년 전으로 돌아가 잊고 있던 나의 숲 속 중학교가 떠올랐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시내에서 가장 떨어진 변두리에 있었다. 우리 집 코앞에 있는 지명이 들어간 여자중학교를 두고 가장 먼 곳으로 배정받는 바람에 어른들의 걱정이 컸다. 당시 남녀공학으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고등학교 입시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면학 분위기에 대한 우려가 있던 터라 발표 후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여차여차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사용할 비상금도 챙길 만큼 긴장을 유지하며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비탈길로 100m 정도 오르는 길 끝에 우리 학교가 있었다. 학교로 향하는 방향 왼쪽에는 길쭉하게 뻗은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자리했고 소나무 냄새를 맡으며 걷다 보면 체육관, 학교 건물, 운동장이 보였다. 등교라더니, 그곳에 도착해 지나온 길을 바라보면 작은 산에 오른 느낌이었다. 커다란 운동장을 품은 3층 짜리 건물에서 3년간 수업을 받았고 그 뒤에 매일 아침부터 맛있는 냄새가 올라오는 급식소, 자람터가 있었다. 그 뒤에는 역시 울창한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산이 있었는데, 비탈에 벤치가 스무 개 정도 놓여있어 흡사 숲 속 교실 같은 느낌이었다. 솔방울이 후두두 떨어져 있고 바늘 같은 솔잎이 가득한 그곳에서 어느 국회의원의 특강을 듣기도 하고 간혹 국어 선생님의 수업도 진행되었다.



우리도 숲 속 교실을 참 좋아했다. 자람터에서 점심을 먹고 자판기에서 깡통 음료를 골라 숲 속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떨던 기억이 가장 많다. 추운 봄이 가고 춘추복을 입고, 그리고 하복을 입고, 체육 대회 때 체육복 차림으로 옷을 바꾸면서 숲 속에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수다를 신나게 떨며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숲 속 교실을 벗어나 산자락 길을 조금 따라가면 별관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 음악실에서 나오는 피아노 소리는 언제나 예뻤다. 1층 과학실에서는 개구리 해부 수업을 마치고 산으로 나와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을 배웅하기도 했다. 2층에는 아주 작은 도서관도 있었는데 창문을 열면 소나무 산과 연결되어 마치 숲 속에서 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책은 눈에 안 들어왔고 초록색 나무와 깨끗한 바람만 실컷 마음에 담았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숲을 좋아하기 시작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소나무 향을 품은 바람이 솔솔 불 때 청량한 기분이 중학생 나에게도 참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는 아파트에 둘러싸인 곳에서, 고등학교는 시장 옆에서 다녔는데 훗날 돌아봤을 때 학교 주변 환경이 좋았던 것은 중학교가 유일했던 것 같다. 물론 안전의 염려는 언제나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불시 감시가 늘 있었다. 요즘, 그때는 잘 몰랐던 어른들의 말씀이 자주 떠오른다. 이런 곳에서 공부할 수 있는 너희가 부럽다. 얼마나 좋으냐. 자연에 취하신 어른들의 마음은 모른 채 정작 수혜자인 우리는 그 수업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3년 내내 숲 속 학교가 전해준 자연의 보듬음에 이제야 참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20년이 지나서야 그 시절 자연에 있던 나와 자연을 담은 마음이 삶에 큰 자양분으로 자리했음을 깨달았다. 오늘 꼬마와의 대화에서 자연이 우리 아이에게도 시원한 바람과 나무의 좋은 향을 선물로 준 것을 알았다. 자연은 언제나 모든 이들에게 고른 사랑을 주고 있었구나. 늘 받기만 하는 자연의 선물에 우리는 화답은 못 할망정 아프게 하는 것 같다. 우리 아이의 삶에 자연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내 숲 속 학교의 가르침을 하나씩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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