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오늘과 나의 옛날을 잇다
날씨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향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에 둘러싸였다. 발아래 도랑물을 궁금해하며 다리를 건넜다. 곧이어 도랑 옆으로 이어지는 흙길이 나왔다. 혹시라도 차가 올까 봐 갓길로 조심스레 따라갔다. '빠아아앙~'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잰걸음으로 갓길에 멈춰 섰다. 나는 잡았던 손을 놓고 그분의 품에 안겼다. 치맛자락으로 한번 더 안긴 채로 그곳에 잠시 머물면 내가 알던 가장 큰 차가 다가왔다.
내 생에 가장 시끄러운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 소리가 무서워서 품속에서 눈을 감았다. 이제 다 지나갔을까. 소리가 점차 흐려졌다. 그러나 아직 품에 안겨 있다. 커다란 소리가 스치고 바로 이어지는 흙바람이 우리를 거세게 지나갔다. 그 누렇고 메케한 흙먼지는 그때 날씨를 기억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스치는 그 먼지바람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할머니는 나를 그렇게 안아주셨다. 그 길은 할머니와 내가 건넛마을로 마실을 떠나는 길이었고 동시에 시골 흙길에 아스팔트가 깔리던 시기였다.
그 어떤 세상보다 할머니의 품이 가장 컸다. 그곳에서는 다정한 할머니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흙길이 남색과 까만색을 섞은 신작로로 바뀌며 시간도 훌쩍 흘렀다. 내 키가 할머니보다 커지고 내 손을 잡으시는 할머니의 힘이 약해지실 때도 나는 종종 할머니 품에 안겼다. 내가 울 때 할머니는 어디선가 나타나 나를 안아주셨다. 이상하게 그 품에 안기면 울음이 더 커졌지만 이내 그 눈물을 다스릴 수 있었다.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아픔도 서서히 잊어갔다.
그 안은 포근했고 따뜻했고 정겨웠다. 세월이 흘러도 표현할 방법이 없는, 언제나 그리운 곳이다. 그 포옹은 훌쩍 커버려 엄마가 된 나에게 여전히 아늑함이고 안식처다. 글썽거리는 눈물과 몽글거리는 마음은 그때 안겼던 품을 불러와 내 마음은 이내 잠잠해진다. 할머니는 하늘과 가까운 할아버지 곁에서 시골을 지키고 계신다. 그때 변하기 시작한 흙길처럼 시골 마을도 많이 변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때 기억은 자꾸 또렷해지는 것 같다.
"엄마, 안아 줘."
내 옆에 꼬마가 다가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집중하는 찰나, 방해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오려다 말았다. 아, 나도 그랬지. 맞아. 나도 그냥 안기고 싶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두 팔을 펼쳐본다. 이내 꼬마가 내 품에 와락 들어온다. 한동안 말없이 그렇게 안아 본다. 그 시간, 너는 포근함을 느낄 것이고 나는 어린 내가 받았던 사랑을 너에게 전해준다. 더 따뜻하게, 사랑이 잠깐 비었던 시간을 다시 나의 온기로 채워본다.
"안아주세요."
오랜만에 친정에 왔다. 꼬마가 나의 엄마에게 외친다. 반년 동안 쑥쑥 자란 손녀가 꽤 묵직할 텐데 엄마는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안아주신다. 할머니 힘드시다고, 내려서 걷자고, 내가 안아주겠다고 하는데도 내 딸이 우리 엄마의 몸을 더욱 감싼다. 미안하고도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내며 잠깐 잊었던 할머니의 포옹이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