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만 보네
무심코 창밖에 서서 바람에 너울거리는 나무를 보니 무작정 그네가 타고 싶었다. 그리하여 오늘은 내가 졸랐다. 매일 나가자고 하는 아기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어찌 저 바람을 두고 그네를 안 뛸 수가 있을까. 놀이에 심취한 아기를 어르고 달래고 꾀어서 그네로 향했다. 날이 갈수록 녹음이 짙어지는 커다란 나무 그늘을 지나는 길이 좋다. 귀여운 새소리가 반갑고 바람과 나뭇잎이 만나 흐드러지게 춤추는 소리가 예술이다. 손을 잡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다 보면 어느새 놀이터에 도착한다. 그네가 보인다. 아무도 없는 정오 시간, 이미 바람이 그네를 타고 있다. 우리도 냉큼 바람 숲 그네에 앉아본다.
내가 앉고 내가 안았다. 한 손은 그넷줄을 잡은 채 다른 손으로 아기를 감싼다. 아기의 양손도 그넷줄을 꽉 붙잡도록 조정한다. 준비되었다면 발을 굴러 본다. 조금씩 속도가 붙는다. 벌써 까르르 소리가 내 턱밑에서 마구 퍼진다. 앞으로, 뒤로 움직이니 두 살 가을이 절로 떠오른다. 아장아장 걸으며 말을 못 하니 답답해하던 시절, 매일 놀이터 산책을 즐겼다. 점심 먹는 비둘기 무리를 지나며 짹짹이 안냐, 똑같이 산책 나온 강아지를 보며 멈머 안냐. 손잡고 걸으며 바람을 느끼고 나뭇잎 구경을 하면서 오늘처럼 그네도 탔다. “태리야 하늘 봐봐.” 그녀는 말이 아닌 표정으로 답했다. 하늘을 보며 까르르 웃는, 그날의 아기가 지금과 겹친다. 아, 이 모습을 오늘도 나만 보네.
아까 구경하던 바람 물결 안에서 우리는 그네를 물씬 즐기고 있었다. 그때와 달라진 건 목소리다. “아! 바람 좋다. 저기 엄마 나무랑 아기 나무가 있어. 엄마 나 떨어질 것 같아.” 이런 말을 듣고 있는데, 저 멀리서 바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놀이터를 에워싸는 나무들이 차례대로 바람을 맞이한다. 우리의 머리카락도 서서히 흐트러진다. 더 커진 바람의 소리에 지금 이 순간을 즐겨본다. “엄마, 나 저기 가볼래.” 아, 나 더 타고 싶은데. 우선 멈췄다. 오로지 아가를 위한 흔들 목마로 쪼르르 뛰어가 씩씩하게 앉았다. “엄마는 그네 타.” 이게 웬일인가. 늘 50cm 이내로 유지해야 하는 우리 모녀 사이였는데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허하다니. 아기의 재촉임에 얼떨결에 그네에 앉았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자, 한번 가볼까. 이렇게 홀로 그네를 타면 더 멀리 날 수 있겠다. 신난다. 금세 속도가 붙었다. 내가 움직이는 그네에도 제법 거센 바람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어렸을 때가 절로 떠오른다. 집 앞 놀이터에 매일 출석하며 홀로 있던 그네를 가장 먼저 찾았다. 그땐 지금과 달리 아이들로 북적였던 시절이라 그네를 기다리는 줄이 길었다. 기다림 끝에 차지하면, 꽈배기처럼 꼬인 강철 같은 그넷줄을 잡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힘껏 그네를 탔다. 춘향이처럼 서서도 타면서 갖은 묘기를 부렸다. 누가 더 높이 나는지 대결도 했던 것 같다. 그네가 너무 좋아서 집에도 있으면 싶었다. 그러나 자고로 그네는 나무 밑, 바람을 맞으며 타야 하는 법. 그네를 타며 바라보는 하늘에는 나무가 구름 같았다. 계절이 좋아 더할 나위 없이 누리는 이 기쁨을 오늘 아기와 내가 함께 맞이하고 있었다.
어린 내가 잠시 나를 장악한 사이, 아기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앞으로 다가갈수록 가까워지고, 뒤로 갈수록 멀어진다. 롱 숏(long-shot)으로 멀찌감치 바라보니 아직 너무나도 아기다.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사랑해, 셀 수 없이 외쳐도 늘 부족한 그 말이 떠오른다. 매일 부대끼며 가까이서만 보니 몰랐던 너의 원래 모습을 그네를 타며 한 발짝 떨어져 보았다. 이 바람 속 나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을 보니 너를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