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다 이해할게
두 손을 펼쳐 조심스레 톡톡 두드리며 얼굴에 남은 물기를 정돈한다. 말끔해진 공간 구석구석에 몇 가지의 수분과 영양을 펼쳐 흡수시킨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충분히 아낄 수 있도록 나만이 아는 일련의 과정을 천천히 이어간다. 빗을 들어 머리를 빗는다. 아까 말린 머리카락에 컬이 살도록 에센스를 묻혀 손가락으로 돌돌 말기도 한다. 몇 번을 쓰다듬은 머리카락이 정돈된 것 같은데 어느새 꼬마가 내 곁에 나란히 서 있다. 조금 전 화장대에 올려놓은 빗을 들고 길고 얇은, 풍성하지 않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열심히 쓸어내린다. 고개를 들어 머리를 흔들며 기다란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는 느낌을 즐기고 손으로 머리를 묶는 연습도 몇 번 해보더니 결국 긴 생머리로 확정한 것 같다.
BB크림을 바를 차례다. 손등에 콩알만큼 짠 BB를 새끼손가락으로 얼굴 다섯 군데에 균일하게 찍고 스펀지로 톡톡 두드리며 넓게 펴 바른다. 새로 산 팩트를 열어 깨끗한 솜에 만족해하며 비비 바른 피부 위에 덧대는데, 거울에 비치는 꼬마도 어디선가 굴러다니는 스펀지로 얼굴에 톡톡 두드리고 있다. 아기용 선크림 팩트도 가져와 역시 톡톡 대며 아이뻐를 열심히 하더니 전신 거울로 뽀로로 달려가 벅차오르는 표정을 짓고 있다.
펜슬을 꺼내 아이라인을 그린다. 삐져나가면 곤란한 글을 그리는 것처럼 거울에 바싹 붙어 속눈썹 사이를 까만색으로 촘촘하게 메꾼다. 눈이 또렷해진다. 아이섀도 붓으로 눈을 그리며 마무리한다. 꼬마 역시 전신 거울에 바짝 붙어 면봉을 들고 아이라인을 그리고 있다. 투명 메이크업이 잘 안 된 모양인지 몇 번을 갸우뚱하다가 드디어 만족스러운지 납작한 장난감과 면봉을 화장대 위에 올려놓는다. 나를 따라 하고 있군. 조용하면서도 부산스럽게 투명 화장을 하는 꼬마의 나이로 순식간에 돌아갔다.
커튼을 비켜 해가 길게 들어와 그 빛 속에 떠다니던 먼지도 보이는, 늦어가는 어느 오후였다. 수건과 여러 옷이 담겨있던 갈색 3단 서랍장, 그 위에 갈색 테두리 거울 앞 엄마와 내가 나란히 서 있다. 내 눈앞에는 호기심을 일으키는 물체가 있다. 훗날 알게된, 살구색 파운데이션과 때로는 부서진 아이섀도 가루가 곳곳에 묻은 화장품 병이 몹시 궁금하다. 어떤 순서가 있는 것 같아 어렵기만 한 엄마의 화장 과정을 까치발로 지켜보다 엄마 몰래 립스틱을 바를 계획도 세운다. 그 옆에 있던 매니큐어는 진즉 발라봤다. 엄마는 피부 나빠진다고 매번 나무라지만 어서 어른이 되어 화장을 하고 뾰족구두도 신고 싶었다.
오늘은 무슨 색으로 바를까나. 그중에 하나를 골라 입술에 색을 입힌다. 마스크를 쓰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생기를 주는 아이템, 꼬마도 어느새 그중 하나를 들고 있다. 뚜껑은 닫은 채로 입술 허공에다 본인을 예쁘게 해줄 색을 바른다. ‘빠빠빠빠’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닿게 하여 예쁜 빨간색이 골고루 퍼지게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엄마, 나 화장 다 했어. 이쁘지?”
아까와 똑같은 얼굴로, 하지만 전보다 더 환하고 자신감이 담뿍 담긴 모습에. 호기심 가득한 네 살 꼬마의 여자 표정에. 난 왠지 설레고 웃음이 절로 난다. 그래, 학교 가서 화장 몰래 해도 다 이해할게. 지금처럼 너의 그 예쁘고 환한 웃음만 잃지 말아 주렴. 우리가 지켜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