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놀이터

나만큼 세월이 흐른 그곳은

by 시샘달 엿새

흙과 나뭇잎은 누구든 가질 수 있는 소꿉 장난감. 그네로 바람을 맞고 미끄럼틀로 스릴을 즐기던 곳. 나란히 서 있는 키 다른 철봉은 누가 오래 버티나 자랑하던, 어쩌다 거꾸로 매달리는 묘기도 보는 곳. 시소로 내 편 네 편, 편 가르기를 하며 무게를 경주하기도 했던. 너희 언니야? 네 동생이야? 궁금한 것은 스스로 물으며 친구의 형제, 자매와도 친구가 되던 곳. 언니에게는 고무줄놀이를 배우고 울고 있는 동생을 챙겨주기도 했던 곳. 헌 씽씽이도 함께 타고 자전거를 잡아주던 곳. 알아서 놀고, 알아서 친해지고, 알아서 헤어지기를 반복한 그곳.


함께 뒷산에 올라 산들바람을 맞으며 개나리와 진달래 구경을 하다 보면 아카시아 향도 맡고 꿀도 맛보고. 한 여름내 키만큼 자라는 달걀처럼 생긴 풀꽃으로 다발을 만들고 토끼풀을 반으로 쪼개 팔찌도 만들어 놓고. 매미와 잠자리도 잡고 바람이 부는 날 높이 연을 날려 연싸움도 해보고. 색 색깔 단풍을 손에 주워 예쁘다, 관찰도 하고 떨어진 대추, 밤으로 가을 줍기를 하기도. 밤새 소복이 쌓인 눈을 굴려 못생긴 눈사람을 만들어 내고, 적당히 편을 나눠 살벌한 눈싸움도 하고 문구점에서 팔던 플라스틱 썰매로 눈이 닳아 없어져 흙이 비칠 때까지 알아서 놀았던 시절.



땅거미가 지면 그곳에 나타난 친구 엄마의 모습. 밥 다 됐어, 이제 집에 들어와. 너는 어디 살아? 나중에 놀러 와. 그렇게 어른과 첫인사를 하고 친구네 집에 밥을 먹으러 가는 사이가 되며 우리는 자랐고. 10대가 되었다며 아이돌 가수에 빠지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비밀을 나누는 단짝 친구와 수다 삼매경에 빠지니 놀이터는 애들만 노는 데라며 그곳에 발길이 끊겼다. 그렇게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의 손을 잡고 매일 그곳을 찾고 있다. 놀이터가 텅텅 비었다고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렇지만도 않다. 시원한 날씨, 적당한 시간에는 아이 반, 어른 반으로 북적북적하다. 모래 놀이터에는 모종삽으로 흙을 퍼다 나르는 아이들이, 공놀이를 위한 장소에는 힘차게 공을 차는 남학생들이, 옆쪽에는 말랑한 공으로 피구를 하는 학생들이 있다. 미끄럼틀 아래 플라스틱 딱지치기에 열중하는 친구들이 있고, 아기를 안은 엄마 손잡고 산책을 하는 조금 더 큰 아기, 엄마와 함께 그네를 타는 꼬마, 그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유치원생들이 있다. 어른들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가끔 아이들을 확인하고 위험한 행동을 막는다. 자전거 부대가 휙 지나가고 씽씽이가 바람개비를 돌리며 놀이터를 산책하고 있다. 줄넘기로 묘기를 보이는 언니, 오빠들은 시간이 되면 무거운 가방을 챙겨 어디론가 뛰어간다. 아이들의 엄마, 할머니는 자꾸 집에 가자는 말을 반복한다.



그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비슷한 것은 아이들은 지치지 않고 계속 놀고 싶어 한다는 것. 달라진 점은 어른이 항상 함께 있다는 것. 이미 알고 있는 사이인 것처럼 무리로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 속에 쉽사리 끼어들지 못하겠다는, 어린 나보다 더 용기 없는 어른이 된 나. 내 옆에서 또래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어쩌다 말을 걸면 내 뒤에 숨어버리는 날 닮은 꼬마. 해가 져서 하나둘씩 귀가한 놀이터를 떠나며 꼬마를 업고 집에 가는 길, 밥 다 됐다고 집에 오라는 목소리가 없는 그곳에서, 친구가 없는 그곳에서, 이렇게 혼자임을 처음 느껴보는 걸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