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하는 시간
아침부터 구름 낀 날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어젯밤부터 마음에 꽂힌 노래를 새벽까지 듣다 잠들어서 선잠인지 숱한 꿈을 꾸었다. 비몽사몽 정신을 차려보려 했지만 몸이 바닥에 붙어 있었다. 늦은 아침까지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 그런지 꼬마는 늦잠을 잤다. 덕분에 일요일 아침을 평화로 시작했다. 분명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시간의 대가가 있겠지만 지금은 오직 지금의 행복만 생각하기로.
늦은 아점을 먹고 늦게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덧 2시다. 평소 같으면 꼬마가 조금씩 졸려하는 시간인데 오늘은 눈이 더 초롱초롱 빛난다. 반면 나에게는 지난밤 자유에 대한 인내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요 며칠 놀이에 집중하지 않은 것 같아 반성의 자세로 오늘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노는 중간에 커피로 잠을 깨 본다. 이 방 저 방 오가면서 은근슬쩍 자리를 떠보지만 꼬마의 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했다. 오늘은 분명 나를 택한 것 같았다.
비가 와서 낮잠 자기 더없이 좋은 날에 아빠는 코 자고 계셨다. 안방을 내어 드린 꼬마는 거실에서 캠핑하자며 이불을 죄다 나르기 시작했다. 그래, 이참에 여기서 자자. 나는 큰 그림을 그리며 모든 걸 수용하기로 했다. 이불은 물론 베개, 인형들까지 총출동했다. 여기에 장난감까지 모이니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은근슬쩍 이불을 깔아본다. 텐트를 쳐보자고, 바닥이 차가우니 이불을 깔면 따뜻할 거라고 속삭였다. 기대되는 모양인지 꼬마가 돕는 손이 빨라졌다.
고맙게도 내 자리에 베개도 내주었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대보니 딱딱한 바닥에서 나름대로 운치가 느껴졌다. 구름 깔린 자연 채광 아래 창밖에 빗소리가 들리니 방과는 다른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상황에서 바로 재워볼 생각으로 팔베개를 제안했다. 내 품에 쏙 들어온 꼬마는 폭신한 텐트가 마음에 들었는지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그러는 것도 잠시, 팔베개를 벗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인형을 데려오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는데 이러다 나 혼자 잘 것 같아 수를 썼다.
“태리야, 우리 바닷속에 들어가 보자!” “바다?” 마침 가져온 이불이 하늘색이었는데, 옛날에 이불속에서 놀던 기억이 떠올라 청했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내 옆으로 오자마자 냉큼 이불을 뒤집어썼다. 갑자기 푸른 하늘로 변한 바닷속 세상에 진심으로 놀란 것 같았다. “우와! 바다다! 엄마, 여기 불가사리가 있어.” 이불에 있는 별 모양 비슷한 게 불가사리로 입력되었나 보다. 웃음과 신기함을 참지 못하는 꼬마에게 노래를 듣자고 제안했다. 평소 나의 주크박스를 별로 안 좋아하는 꼬마였는데, 이번만큼은 절호의 기회다!
새벽까지 무한 반복한 노래를 또 듣기 시작했다. 바닷속에서 들으니까 울리는 느낌이 있어 더 감동이다. “엄마, 눈 감고 들어 봐.” 나에게 더 좋은 감상법을 제안했다. “엄마, 왜 바닷속에서 노래를 듣는 거야?” “응, 이런 데서 들으면 더 멋있잖아.” 헛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몇 번 더 들었다. 이러다 흥미가 끊길 것 같아 꼬마가 좋아하는 노래로 바꿨다. 푸른 배경에 어울릴 것 같은, ‘Into the unknown’,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를 연이어 들으며 역시 내가 좋아하는 디즈니로 꼬마의 세상을 물들여 보았다.
꽤 시간이 흘렀다. 바닷속 세상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책도 가져오고 상어도 찾고 색다르게 딸기 모양 이불을 뒤집어써 보았다. 종종 바닷속에서 나와 구름 낀 하늘을 바라 보기도 했다. 어느덧 낮잠이 아닌 이른 취침을 계획할 때가 됐다. 졸음과 사투를 벌이는 꼬마를 어르고 달래서 저녁을 먹고 치카를 하고 잠자리를 준비했다. 그런데 아까 그 바닷속에서 자자고 한다. 이미 해가 져서 이제는 추울 것 같았다. 필연적으로 이어진 잠투정과 실랑이 끝에 내일 다시 하기로 약속하고 안방에 간신히 누웠다. “태리야, 오늘 재미있었어?” “응, 정말 좋았어. 바닷속 너무 신기했어. 또 가자.” 이불 덕에 나도 누워 놀아서 편했는데 네가 좋았다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