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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May 10. 2020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참 신기해

그 예쁜 입술을 움직이며 꽃 같은 말을 하잖아

일 년에 손꼽는 깨끗한 하늘을 보며, 

태리야, 오늘 하늘은  예쁘다. 그렇지?”

 “...”

여행지에서 바다를 지나가며, 

태리야, 여기 봐봐. 우리 지금 바다 지나간다. 우리   바다를 보네

 “...”

그해 겨울 첫 딸기를 먹으며,

태리야, 딸기 어때? 맛있어?” 

“...” (우물우물)

22개월 아기는 갑자기 냉장고 문을  열고 채소 칸을 드르륵 열더니, 까만 비닐봉지 속에 감춰진 딸기를   가득 채워 내게 내밀었다. 아니, 세상에 딸기가 이렇게 귀여웠나?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본 그녀의 눈빛은 ‘엄마,  지금 당장 이거 빨리 먹고 싶으니까 어서 씻어서 잘라줘욧!’이라며 무언 시위를 하는  같았다.




엄마는 수다쟁이였다. 아기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는 배를 쓰다듬으며 연신 태명을 불렀다. 복중에서 깜짝 놀랄 발차기로 새벽에 엄마를 깨우면 잘 잤느냐고, 오늘도 잘 보내자고 인사를 했다. 직감적으로 만날 날이 가까워졌음을 알았을 때는 우리 건강하게 만나자고 수백 번 약속했다. 신생아 때는 아직은 어색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고, 수유하면서는 천천히 먹으라며 다독이면서 맘마를 먹였다. 기저귀를 교체하며 시원하냐고, 목욕하고 깨끗한 옷을 입히며 기분 좋으냐며 혼잣말을 했다. 하도 일방적으로 떠들어서 언제 한 번은 아기가 참 시끄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기는 울음과 웃음으로 대답했다. 초보 엄마는 그 의미를 몰라 허둥지둥. 빗나간 정답에 아기의 성질을 돋우기도 했고 어느 날 모녀는 활화산처럼 함께 폭발하기도 했다. 그렇게 부대끼며 시간이 지나니 울음이 아주 조금씩 줄어들면서 아기는 훌쩍 컸다. 엄마는 아기의 몸짓과 표정만 봐도 마음속을 꿰뚫었다. 그렇게 어색했던 '혼잣말처럼 보이는 일방적인 대화'도 익숙해져서 유모차를 밀면서도 아기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언제 말을 하게 될까? 아기의 두 돌이 지나고 엄마는 말문이 언제 트일지 늘 궁금했다. 이 조그만 입으로 말을 하면 과연 어떤 기분일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짧은 단어로 표현은 했지만, 문장으로 이어지는 대화를 하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되었다. 암냐(감자), 또또리(토마토), 부삭(수박), 무!(물), 맘마, 하삐할미, 호또(애착 속싸개), 땅꿍(까꿍), 포도 맘마(흑미밥), 아따(태리) 언젠가부터 아기의 단어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30개월이 되던 어느 날, “아빠가 뽀요요 책 일거죠떠요”라고 문장을 말했다. 순간 너무 놀라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렇게 시작한 말이 봇물 터지듯 늘어나니 별소리를 다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기의 어떤 말이든 받아 적고 싶어서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인형이 말하는 것처럼 그 말과 목소리가 너무 귀여웠다.



“엄마, 밥 줘. 몽쉘 두 개 먹고 싶어. 딸기랑 배도 먹을래.” “엄마, 솜꿈노리(소꿉놀이) 하자” “엄마, 머리 가려워 씻자.” 그녀는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말로써 요구한다.

“엄마, 밖에 공기 안 좋대? 마스크 해야 해?” “하비지, 할머니 마스크 했대?” “엄마, 엘사는 왜 도망가?” “엄마, 엄마는 왜 아빠한테 오빠라고 불러? 태리 아빠잖아!” “아빠는 왜 엄마한테 누구야~라고 해? 태리 엄마잖아!” “엄마, 구름이 있어. 왜 밀가루가 구름이 됐지? 너무 예쁘지 않아? 예뻐! 밀가루 예쁘다. 밀가루가 하늘에 착! 붙어있어.” “엄마! 엄마!! 엄마!!! 엄마!!!!” 그녀는 정말 궁금한 것이 많은가 보다.



과거 수다쟁이 엄마는 현재 과묵해졌다. 온종일 재잘재잘 종알종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꼬마 덕에 엄마 입은 쉬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신, 귀가 바쁘다.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 피로가 몰려올 때가 많다. 요즘 더 그렇다.



지난 금요일 날씨가 참 좋을 때 꼬마가 창가에서 바깥 구경을 하고 있었다.

“엄마, 구름이 기차가 됐어!”

“???”

그녀의 끊임없는 외침에 나도 절로 창가로 끌렸다

“!!!”

와, 정말 하늘에 구름 기차가 지나가나 보다. 저기 멀리서 저쪽 멀리까지 기다랗고 하얀 띠가 쭉 이어졌다. “칙칙폭폭이다. 와 예뻐!”



오월의 바람이 만든 작품인 건가, 요즘 띠띠뽀에 심취한 우리 꼬마를 위한 선물인 건가.

휴. 하마터면 이 멋진 풍경을 놓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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