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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May 11. 2020

엄마 반성문

엄마 혼자만 신나서 미안해

균형을 잃었다. 너에게 뒷모습만 보였다. 눈을 쳐다보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나의 즐거움을 방해받을까 봐, 너의 기다림을 잠시 잊었다. 같이 놀자는 얘기가 수십 번 들렸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낮잠을 자려다 나 혼자만 잠들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동시에 아쉬움이 역력했다. 잠 좀 자자고 다그쳤다. 그녀의 눈망울이 잊히질 않는다. 내 안의 균형이 깨지며 마음속에 폭풍이 일었던 날이다.



드디어 본인 좀 재워달라고 같이 누워 있는데, 갑자기 또 가슴을 내려 앉혔다. 엄마 컴퓨터만 하고 핸드폰만 본다고, 나랑 안 놀아준다고 울먹이며 또박또박 나오는 말이 스타카토처럼 내 안에 하. 나. 씩. 톡. 톡. 박혔다. 이 말에 충격을 받아 좀처럼 헤어 나오기가 힘들었다. 정말 있는 그대로 나를 본 것 같아 오늘은 반드시 반성문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런 죄책감에 사로잡혀 오늘 하루는 엉망이 된 기분이다.



늦은 낮잠을 자는 오후, 어떤 일이든 손에 잘 안 잡혔다. 내가 좋아서 하는 글쓰기와 다른 모든 활동이 아기에게 커다란 외로움을 준 것 같아 영 편치 않았다. 이 훌륭한 책을 앞에 두고 내 안에서 자꾸 죄스러움이 피어올라 교차하는 감정이 내가 지금껏 느껴봤던 마음과는 이질적이라 혼란스러웠다. 난 또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왜 하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복잡한 여러 생각이 동시에 부유하다가 문득 새해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불균형한 삶의 바퀴는 왜곡된 무게 중심축으로 인해 조금씩 목표 지점에서 이탈하기 시작한다. 만약 당신이 균형 잡힌 목표를 세우지 않고 나아간다면 언젠가 삶의 좌표를 잃는 ‘방황의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파이브> 中, 댄 자드라 저



나의 삶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도 중요하다. 마냥 재미있어서 나에게 초점이 맞춰진 요즘이었기에, 내 삶에 균형을 이뤄야 할 무게 추가 나 자신으로만 쏠렸던 것 같다. 그 결과 온종일 나와 지내며 외로움에 부대끼는 우리 아기는 점차 희미해졌던 것이다. 이 말이 떠오른 순간 아차 싶어서 이 균형을 다시 잡을 방법을 떠올려봤다.



시간을 더 쪼개야겠다. 분명 흘려버리는 시간이 있을 터, 조금 더 세분화시켜보고 아기가 잠든 시간을 활용해 집중도를 높일 계획을 세워본다. 분명 변수가 생길 것이므로 그때는 조금 유연하게 조절해야겠다. 압박받는 것이 아니기에 조금은 쉬어가도 괜찮다는 마음을 되뇌어본다. 아기와 외출을 자주 하고 싶으나 다시 불어오는 바이러스의 공포가 또다시 망설이게 한다. 외부로 핑계를 찾는 나 자신에 다시 한번 화가 났다.  모쪼록 양자 균형을 이루는 삶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나를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 아기의 말이 오히려 고마워진 시간이다.



이 좋은 날 엄마만 신난 것 같아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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