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샘달 엿새 Apr 24. 2020

퇴근길 내 마음은

처음에는 처음이라 늦었다. 하필 몹시 바쁜 곳에 가장 바쁜 때에 배치되어 매일 막차 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어떤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마음이 성급했다. 날카로운 어깨너머 전해오는 바쁨과 여유를 번갈아 느꼈고 저녁을 함께할수록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집으로 향한 걸음에 괜스레 좋은 기분이 묻어 있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 매해 돌아오던 중요한 업무가 있을 때면 동이 터오는 새벽에 옷을 갈아입으러 가기도 했고 출장 후 쌓여있는 업무를 처리하다 막차가 끊기는 바람에 폭우가 쏟아지던 여름밤 택시를 간신히 타기도 했다. 그날은 정말, 걸어가지 않은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 길은 고단한 공기가 가득했다. 버스, 지하철은 물론이고 택시에서도 그랬다. 사람들은 자리에 앉거나 손잡이를 붙들고 서 있기도 하면서 그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참 조용했다. 혹시 전화라도 오면 내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마다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며 그들은 그날의 온전한 휴식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자주 차 문이 열리며 그새 익숙해진 사람이 떠나기도,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기를 반복했다. 어디서 맛있는 음식을 드셨는지 숯불 향을 잔뜩 이끌고 들어오기도 했지만 어떤 날은 내가 그리됐으므로 불쾌한 마음은 접어두기도 했다.



없던 멀미가 생겼다. 갈아타는 지하철이 귀찮아서 버스를 선택하면서 시작한 것 같다. 가다 서다 반복하니 휴대전화든 책이든 보기가 어려웠다. 바퀴 달린 배 같은 느낌이었을까. 이런 적이 없던 것 같은데 매일 그 길은 눈도 아프고 속도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은 멀미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잠에 취하기도 했다. 그러다 급정거로 벨트를 하지 않은 내 몸이 앞으로 쏠리기도 했지만 잠은 쉬이 깨지 않았다. 결국 늘 궁금해하던 종점에 도착해서 버스비보다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해 다시 집으로 갔다. 투덜거릴 힘도 없었다.



나 홀로 타던 택시에는 고단은 물론 고독도 추가되었다. 이도 저도 다 끊기면 정말 방법이 없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종종 이용했다. 주로 다니던 익숙한 길이 아닌, 기사님 또는 내비의 선택으로 안내하는 나의 휴식처로 가는 길은 참 다양했다. 남산 터널을 통과하기도, 흑석동을 지나기도 하면서 별빛 아래 낯선 동네를 구경했다. 그렇게 홀로 상석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내가 잠식되는 것 같았다. 가끔 말을 붙이시면 몇 마디 나누기도 했지만 새벽이기에 서로를 위한 배려로 조용히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식 후에는 집에 도착했다고 깨워주시기도 했다.



매일 퇴근을 하면서 똑같던 길은 없었다. 하물며 내 마음이라도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반드시 지나야 했던 한강은 변함없었다. 난 하루에 두 번씩 그곳을 건넜다. 오전에는 회사원의 가면을 쓰기 위해, 밤에는 원래 나로 돌아오기 위해. 한강을 건너면서 나는 두 번씩 변했는데 아무래도 퇴근길 한강이 더 반가웠다. 곧 집에 도착하겠구나. 저녁은 뭘 먹을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지. 내가 너무 뾰족했던 것 같아. 내일 커피 한잔 청해야지. 점점 더 나아지겠지. 아니, 더 힘들지도 몰라. 모르겠다. 주말에는 뭘 할까. 보고 싶다.



입사보다 더 어려웠던 퇴사를 결정하니 매일 지나던 그 길이 새롭게 다가왔다. 정녕 이 광경이 내가 매일 지나던 곳이었나. 밤을 데려오는 하늘에는 푸른 밤이 석양을 품어 가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배경으로 웃음보다는 울음이, 편안함보다는 불안함이 더 많았던 이 길에서 점점 달라졌던 나를 알아보았다. 익숙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한 이 퇴근길에 난 무엇을 얻었을까. 확실한 것은 이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는 것. 그리고 이 길을 지날 때마다 그때 퇴근길이 몹시 기억이 날 것 같다는 것. 그 기억이 그리움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