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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Jun 05. 2020

바다

홀로 만난 제주 바다



바다!

제주로 향하는 내내 바다를 실컷 볼 생각으로 가득 찼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약속한 장소에 먼저 도착하니 선착장을 바라보는 커피숍에 묘하게 끌렸다. 이곳은 문을 열었나? 정장 차림에 여행용 가방을 끌고 들어온 내 모습이 혹시 수상해 보일까? 잠시 망설여졌지만 이내 중후한 사장님께서 손님을 정중히 맞이하셨다. 돌로 지은 집 한쪽에 벽난로가 타고 있었고 커다란 창을 내어 저 멀리 하늘과 물이 맞닿은 곳을 액자에 담고 있었다. 편한 자리 하나 차지해 커피를 주문하니 어쩐지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어째서 이 시간에 혼자 왔나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무슨 일로?”

“출장 왔거든요. 곧 요트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도착할 거예요.”


사람들보다 커피가 먼저 나를 찾아왔다. 뽀얀 크림색 머그잔에 담긴 액체는 아메리카도 맥심도 아닌 맛이었다. 사장님은 제주와 바다에 관한 이야기, 본인 이야기를 한 방향으로 늘어놓으셨고 나는 청중이 되어 한 인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다소 불편했던 기류가 조금씩 녹기 시작하자 전화가 울렸다.


“주임님, 저희 도착했어요. 어디에 계세요?”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사장님께 작별 이유는 충분했다. 액자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말동무를 잠시 만난 것만으로도 바다는 내게 첫 번째 선물을 안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편하게 입고 올걸.

새하얀 요트에 한 사람씩 승선하면서 홀로 이방인이 되어 그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자주 찾아올 수밖에.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 시퍼런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요트가 파도를 탈 때마다 바닷물이 몸을 적시기도 했다. 운이 좋으면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들뜬 목소리에 한껏 기대감이 높아졌다. 저 드넓고 무시무시한 푸른색 바다를 배경으로 맘껏 놀고 있는 돌고래를 마음대로 상상해 보았다. 이런 감정, 바다가 내게 준 두 번째 선물인 걸까.  



바다여,

사람들은 다시 떠나고 와 나 둘만 남았다. 여행용 가방을 끌고 발이 닿는 대로 홀로 여행을 떠나본다. 하필 비행기가 없냐, 하필 금요일이냐, 하필 혼자 왔냐. 별수 없었다. 평소 가고 싶던 곳을 찾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협재 해수욕장에 내려 너를 또 찾았다. 에메랄드빛이라던데, 네가 변한 거냐. 사람들이 변한 거냐. 어쨌든 실망이다. 됐고, 출출하니 고등어나 먹으러 가자. 세 번째 바다는 마음속에서 고등어를 건져 올렸고 노릇하게 구워 나온 바다 한 상은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었다.



용두암으로 너를 보러 가기로 했다. 애플 지도를 보며 열심히 걸었는데 잘못 찾았는지 전에 와 봤던 곳이 아니다. 구두를 신고 여행용 가방을 끌며 몇 킬로를 돌아다니다 보니 과 불청객이 동시에 찾아오고 있었다. 이러다 묵을 곳도 못 찾겠군. 그런데 그 순간을 이상하게도 헤매고 싶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다시 바다가 보인다. 네가 외롭지 않게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다. 하늘이 높은 곳에서 우리를 감싸 안고, 그 아래 구름이 뭉게뭉게 이상향의 성곽처럼 바다를 지키고, 또 밑에 주홍빛 석양이 낮게 채색된, 점차 새카매지는 바다는 잔잔한 파도를 만들며 네 몫을 다하고 있었다. 그곳에 그렇게 있어 주었다.



혼자이기에 너로부터 얻은 감각일까.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일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가 정리되고 외롭다는 생각도 저 멀리 날아간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그곳에 서서 뜨는 비행기를 세어보다가 숙소로 향했다. 너를 바라보며 먹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산해진미일 것 같다. 컵라면과 삼각 김밥을 사 와 물을 붓고 기다렸다. 이 밤의 외로움은 그간의 것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에, 아침에 바라보는 너를 상상하며. 곧 너를 떠날 나를 걱정하며.



제주 바다는 스물여섯의 나를 여러 번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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