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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Feb 19. 2021

회사 메신저는 사랑+α를 싣고


타다 다 다다닥타타타타타닥. 탁!!


부서질 것 같은 키보드 소리와 함께 모니터 너머 박 대리가 웃는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소리를 죽여 킥킥대는데, 그 내용이 궁금하긴 해도 우선 접어놓는다. 뭐, 또 자기 동기랑 메신저로 떠들고 있음이 틀림없을 테니.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가장 먼저 회사 메신저에 접속한다. 다들 출근 전인지 회색빛 오프라인 상태가 많다. 곧 OOO님이 온라인 상태가 되었다는 메시지가 연이어 올라온다. 어느새 메신저에 온라인 상태가 가득 찼다. 즉, 업무 준비 완료다. 오늘도 짜증 나는 하루가 될 가능성이 크니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 말을 건다. 가장 친한 동료에게 출근했냐며 메시지를 보내며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회사 메신저는 공식적이고도 사적인 잡담 공간이다. 물론 일을 위한 주어진 용도는 맞다. 메신저의 본캐라고나 할까. 공문이나 이메일, 유선전화 외에도 나에게 항상 일을 던져주는 곳 이자 나도 누군가에게 일과 관련된 도움을 얻어야 하기에 메신저는 항상 바쁘다.



메신저는 사적인 잡담도 막을 수 없다. 대부분 인간은 대화와 교류에 목마르기에 사담의 욕구를 스스로 차단하기란 영 어려운 일이다. 답답한 회사 생활, 화병으로 미칠 것 같을 때나 뭔가 비밀스러운 내용을 누군가에게 발설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할 때 손가락의 힘으로 나의 갈증을 털어버릴 수 있다. 이런 여러 이유로 회사 메신저는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이다. 몹시 공식적이지만, 은밀하기도 한 곳이다.



메신저 속 나는 여럿이다. 처음부터 그럴 콘셉트는 아니었는데, 회사에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메신저에는 무미건조한 내가 있다. 나의 메신저 친구! (같은 일을 하는 사람, 친한 동료) 외에 모르는 이가 나에게 말을 걸면 나는 몹시 긴장한다. 무슨 일이 터졌을까, 아니면 인사이동이 난 건가? 이 사람은 누구지? 온갖 나쁜 시나리오를 쓰면서 답변을 한다.


“네. 안녕하세요.”


‘ㅋㅋㅋ’나 ‘^^’이 없는 무미건조한 답변에 나도 어색하지만, 공식적인 관계이므로 어쩔 수가 없다. 부디 어렵거나 골치 아픈 일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메신저에는 과잉 친절로 무장한 내가 있다. 주로 업무상 내가 부탁할 일이 많은 이들에게 장착하는 모드다. 나는 모르는 일이나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면 굽신굽신 키보드를 치면서 친절로 감싼다. 원래 그런 사람인 것처럼 나를 변신시킨다.


“차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오류 원인 때문인데요,
오늘 오전 중으로 확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차장님은

“네. 알겠습니다.”라고 무미건조한 답변을 하시지만, 입사 2년 차 주임 나부랭이 나는 어제 퇴근부터 골치 아팠던 큰 산 하나 넘긴 기분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그러냐 물으신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주시는 분 덕분에 내 일이 편해지니까. 메신저로라도 친절하게 굴어야 삶이 온화해지는 기분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커피 뇌물을 바치기도…


그리고 원래의 내 모습이 있다. 회사원이 아닌 내 본모습을 보여주는 대상은 친한 동기다. 괜스레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굽신거릴 필요도 없는, 집에서 주말을 보내는 내추럴 그 자체의 모습이 나온다. 동기와의 대화는 흥미로운 주제가 많다. 오랜만에 동기와 ‘점약’을 잡으며


"나 오늘 진짜 퇴사하고 싶다ㅠㅠㅠㅠㅠㅠ
점심 때 남산 가서 밥 먹을까?
거기에는 회사 사람들 없을 거야ㅋㅋㅋㅋㅋ"


산너머 점심을 꼬드기기도, 커피 약속을 잡아보기도, 이번 성과급은 얼마라는 카더라가 돈다든지, 회사 후배 누구랑 선배 누가 몰래 만나다가 걸렸다든지. 퍽퍽한 일상에 한 번쯤은 몰래 씨익 웃어보는, 그런 내용이 대다수다.


이렇게 열심히 떠들다가 누군가 내 자리로 다가오는 느낌을 차릴 때가 있다. 점차 나에게 가까워지면 메신저 창을 본능적으로 재빨리 꺼버린다. 혹시나 은밀한 사담이 발각될까 봐 제 발을 저린다.



가끔은 메신저 속 다른 이들이 궁금하다.

매번 일을 함께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들이 계신다. 개인적으로는 나에게는 주로 IT 부서의 개발자분들이나 고객상담센터에 계신 분들이셨는데, 같은 건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분의 자리가 어딘지도 모르고 심지어 목소리도 들어본 적 없다.


문득 출근을 하는지 궁금한, 항상 ‘자리 비움’ 상태인 분들도 계시다. 분명 엊그제 마주친 것 같은데 메신저 속 그분은 늘 부재중이다. 내선 전화로 연락을 취하면 친절하게 응대하시는 이런 상황도 참 알쏭달쏭이다.


메신저는 사랑도 싣는다. PC 카톡을 설치 못해서 그런가. 분명 비밀 연애를 하는 그들은 이번 주말에 야구장에 가자는 얘기를 열심히 나눈다. 업무 중에도 열심히 멀티 플레이를 하면서 미래를 약속하는 것 같다. 누가 옆에 가면 모니터 좀 끄던가! 내가 가까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불타 오른다.


사내 커플로 의심받는 이들이 같은 날 오프라인 상태가 되면 분명 연차를 쓰고 어디 놀러 갔을 확률이 높다. 당사자들은 우연이라며 오리발을 내밀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둘의 휴가가 일치하는 날이 너무 많다. 이는 나뿐만 아닌 다른 이들의 메신저 레이더에도 걸린 결과다.



메신저는 소리 없이 소문을 퍼뜨린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사자만 모르고 회사 사람들은 모두가 알게 된다는 점이다. 그 발 없는 말에 나도 웃기도 하지만, 소문의 주인공이 내가 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사랑뿐만 아니라 이직 계획, 뒷담화 등 나의 사적인 내용이 일파만파 퍼진다면 절대 유쾌하지 않은, 알파도 담으니까 말이다.



퇴근할 때면 오늘 메신저 내용을 정리한다. 업무 관련 중요한 내용은 저장해놓고 그 외 내용은 지워버리면서 오늘을 마무리한다. 신명조 글꼴 문자에도 여러 감정이 실린 모양인지 십여 개가 넘는 대화창에는 요동치던 내 상태가 묻어나는 것 같다. 참으로 다사다난하면서도 소소한 하루다.


※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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