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

쓰던 글을 멈추게 한, 그 말

by 시샘달 엿새

엊그제 일이다. 11 pm, 여느 날처럼 키보드를 두드리며 나만의 마감 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로그 함수 이야기에 한창 몰입하고 있는데, 모니터 오른쪽 아래에서 카톡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이의 갑작스러운 연락이었다. 쓰던 글을 잠시 멈추고 내용을 읽었다.



보고 싶다. 잘 지내질?



술 마시고 있음이 틀림없는 예감은 적중했고 이어지는 오타 물결을 나는 찰떡같이 알아들으며 대화를 진행했다. 내가 생각났다고, 보고 싶다고, 연락 못 해서 미안하다고, 또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빠르게 이어진 대화가 잠시 멈추더니 이번에는 별카페 커피 쿠폰을 선사했다. 순간 대체 또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난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자정을 향해가는 시간에 글을 멈춘 채 감상에 흠뻑 젖어보았다.



우리는 12년 전, 캠퍼스에서 만났다. 학교 리더십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여러 강의를 함께 듣게 되면서 자연스레 친분이 쌓였다. 함께하는 이들이 처음에는 60명 정도 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만남을 이어가던 인원은 열 명 정도만 남게 되었다. 우리는 이 인원에 속했고 전공을 초월한 만남에 새로운 세계를 배우고 알려주기도 했다.



그냥 공부만 했으면 인생은 재미가 없었을 터. 4학년이 되면서 하나, 둘씩 사회로 나갈 준비도 함께했다. 당시 리먼 브라더스 발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라 취업 시장도 냉혹해서 잘 된 이보다 안 되는 이들이 더 많았다. 특히, 금요일 오후면 연거푸 쏟아지는 탈락 소식은 멘탈이 가루가 되어버린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어느새 정문 근처 술집에서 n 차 회식을 하며 서로를 위로하며 그날을 잊었다. 카톡도 없던 시대에 어떻게 그렇게 단체로 모였는지는 아직도 신기하긴 하다. 그리고 무슨 돈으로 그렇게 마셨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떤 날은 진심으로 축하도 하고 대부분 날은 애써 달래주며 대학 시절의 반 이상을 함께 했다.



졸업 후 나는 청년 인턴 신분으로 여의도에 있었다. 며칠 후면 곧 백수가 확정이었던 어느 추운 겨울날, 회사에 있던 나에게 소포가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령 처로 가면서 발신인이 너무나도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엊그제 나에게 보고 싶다던 이였다. 마침 그 근처에서 사원으로 근무 중이었는데, 이 지척 거리에서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낸 것이다. 화장품과 초콜릿으로 가득 찬 예쁜 상자에 정성스러운 손편지를 보며 나는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고 힘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 멤버 중 나만 취업이 안 되었고 상세 상황을 다 알았기에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그 포근한 마음이 담긴 크리스마스 선물에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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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나도 회사원이 되었고 다시 만남의 불을 지폈다. 우리는 홍대, 강남, 종로 등지에서 회사 욕을 하며 또다시 하나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각자 알아서 결혼하기도, 비혼 선언도 하며 인연의 끈을 놓지는 않았는데 육아를 하는 나로서는 자유 시간이 부족하여 늘 아쉬움이 가득했다. 엊그제는 그 멤버 중 일부가 급히 만남을 하던 중에 내 생각이 난다며 보고 싶다고 갑자기 연락했던 것이다. 12년 전의 모습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현재의 사진도 보여주며 웃고 있는데, 나이만 달라졌을 뿐 그때와 똑같은 모습과 언행을 보노라니 그냥 행복해졌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밥 잘 챙기라고,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잊지 말라고, 조만간 꼭 만나자고, 내 생각만으로 에너지가 솟는다고, 내가 선물이라는 말을 폭격으로 받았다. 분명, 취중 진담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보고 싶다’는 말에 무너져버렸다.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지금도 들으면 행복한 그 말을 계속 들으니까 벅차올랐다. 내가 이런 말을 들어도 되는 사람인가. 내가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되는 사람일까. 그때 그 시간이 꿈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말, 힘들어도 함께 놀았기에, 이끌어주었기에 지금이 있다는 사실에 전율이 흘렀다. 나는 누구에게 이런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 벅찬 마음을 꼭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에 잠이 쉽게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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