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영국 가봐

내 안의 고래가 고개를 들다

by 시샘달 엿새





“너도 영국 가봐.”




대학교 2학년 개강을 앞둔 어느 날, 명동 한복판에서 들었던 충격적인 말이다. 순간, 이 아이는 무슨 옆 동네 가는 것처럼 얘기할까 싶어서 얼떨떨했다. 이 설레는 말은 두고두고 내 안에 큰불을 지피게 된다. 그날은 종강 후 처음 만난, 가장 친한 과 친구 - 나의 달걀노른자를 깨뜨린 H - 그녀의 영국 여행담을 듣는 날이었다. 항상 더 큰 세상과 꿈을 품고 있는 그녀는 시골 출신인 나에게 대학 내내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내가 영국에 간다고? 상상만으로도 두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기에 내 안의 고래가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비행기라고는 제주도 수학여행을 다녀온 이력뿐인 나에게 그 나라는 그야말로 아스라이 멀리 있었다. 과연 생애 한 번 갈 수는 있을지 꿈만 같은 곳이었다. 대학에 오니 이미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성적만 좋으면 다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만 있었다. 무엇보다 반년마다 등골 휘는 등록금과 타지 생활비로 목돈을 먹고 있던 터라 이국으로 향할 용기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 제안은 꽤 솔깃했다. 그 먼 나라에 한 달간 머물며 어학연수를 할 수 있는데 자비 부담분이 적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영국과 호주, 캐나다와 같은 나라의 자매학교와 연결되었기에 세상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도 가야겠다. 이건 반드시 가야만 한다. 그녀는 나에게 계속 불을 질렀고 피자를 먹으면서 이미 나는 다짐했다. 개강 후 본격적으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우선 학점이 좋아야 했고 영어 성적이 필요했다. 그리고 면접도 본단다. 정말 세상에 쉬운 것 하나 없다는 것을 느끼며 구시렁거려도 할 건 다 했다. 학점은 나쁘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하던 남자 동기들이 한 명 두 명씩 입대했고, 나름 좋아하는 과목을 골라서 수강했기에 늘 함께하는 벼락치기로 성적 관리를 했다. 그런데 영어가 문제였다. 낯선 토익이 내 발목을 잡았다. 처음 이 시험을 치면 신발 사이즈가 나온다고 하던데, 문제는 990점 만점에 최소 700은 넘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제를 접해보니 수능을 준비하던 외국어 영역과는 달랐다. 비즈니스 영어이기에 너무 다른 세계의 어휘라 한동안 헤맸다. 열심히 응시료를 헌납한 만큼 성적은 잘 안 올랐다. 그렇게 세 학기가 지났다.



3학년 가을. 1년 반을 기다렸다. 개강의 분위기를 타고 정신없는 와중에 학교 홈페이지에 겨울방학 어학연수 프로그램 공고가 올라왔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가. 물론 지금껏 학기별로 지원했었는데 계속 탈락했었다. 두 가지 성적이 경쟁자들에게 밀려 서류전형부터 탈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학점은 관리가 되었었고 토익 응시료도 열심히 납부하다보니 어느새 점수도 높아졌기에 도전할 맛이 생겼다. 나름 대내 활동을 하며 면접에서 할 말도 생겼다. 떨리는 마음으로 신청서를 작성하고 필요한 서류를 제출했다.



1차 서류 발표. 깔끔하게 합격! 와, 이런 짜릿함을 느껴보다니!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지면서 전 세계 경제에 지진이 나고 있었다. 환율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날개 달린 영국행 티켓이 저 멀리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면접이 복병이었다. 학점과 영어 성적을 통과한 지원자들과 교수님 앞에서 경쟁해야 했다. 이걸 어떻게 준비해야 한담. 여기까지 왔는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냥 면접에 임하면 병풍이 될 확률이 높아서 준비만이 살 길이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하나, 무슨 질문을 받을까. 수소문 끝에 전해 내려오는 면접 기출 질문에 왜 가고 싶은지에 대한 동기가 명확해야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학생을 보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만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면접을 기다리며 가지각색의 개성을 보여주는 경쟁자가 많아서 심장이 떨렸다. 춤을 춘 모양인지 면접장이 박장대소로 가득 차고, 트라팔가 광장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태극기를 흔들겠다는 둥, 역시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경영학도였고 당시 금융인이 되고 싶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내 꿈을 펼치고 싶다고 내 목표에 관한 이야기를 연결했다. 마침 교수님은 취업 진로와 관련한 업무를 겸임하신 분이었다.



2차 면접도 합격. 원/파운드 환율이 2천 원 대까지 치솟던 2008년의 어느 깊은 가을날이었다. 매일 빵만 먹어도, 아니 굶어도 좋을 것 같았다. 약 2년간 꿈으로 그렸던 영국행 티켓이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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