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untitle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샘달 엿새 Jun 03. 2020

여름날 육아 위기 극복법

더위에 지지 않고 인내를 보존하는 슬기로운 방법

어제 내린 비가 물러가면서 오늘부터 여름 1일이라고 선언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창밖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가만있자. 오늘이 벌써 유월 하고도 사흘째구나. 상반기는 이렇게 집에만 묶여 살았구나 싶고, 그나마 요즘은 조금이라도 움직임에 다행이구나 싶고, 다시 요동치는 숫자에 어쩌면 더 오랫동안 긴장을 놓을 수는 없겠다 싶었다. 어제 아주 늦게 잔 꼬마가 뒤늦게 일어나자마자 놀자고 나의 주리를 틀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꼬마의 힘은 세지고 나의 체력은 바닥이 나고 있다. 안 되겠다. 마트에 가보자.



채비를 서둘렀다. 내가 먼저 준비를 하고 있는데, 화장품에 발이 달렸는지 자꾸 서랍 속에 숨어 있다가 자주 쓰지 않는 것들까지도 한꺼번에 나와 있기도 했다. 찾다 찾다 지쳐서 마트행을 포기할 뻔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나도 가고 싶었으니까. 인내의 시간이 흐르고 꼬마의 차례였다. T.P.O에 맞는 옷을 고르기란 아직 많이 어려운 것임이 틀림없다. 직접 골라온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어느 순간 내가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실랑이해봤자 힘드니까 깔끔하게 포기할 건 포기하고 어서 집을 나섰다.



유모차로 도착한 마트가 참 오랜만이었다. 복잡하지 않은 시간이라 우리 모녀는 여유롭게 둘러보았다. 꼬마가 직접 고른 음료수, 내가 먹고 싶었던 간식, 그를 위한 저녁 메뉴, 비축해놓을 양식 등을 무턱대고 집다 보니 가져가는 길이 문제였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집에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자고 속삭이며 집으로 향했다. 신호를 기다리며 햇볕에 잠시 섰을 뿐인데 여름이 틀림없었다. 뜨거운 바람을 느끼니 어서 집에 도착해 시원한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았다.



무사히 집 근처까지 왔는데, 이 아가씨가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놀이터! 놀이터!! 놀이터!!!” 고기가 상한다는 핑계를 댔지만 논리가 통하지를 않는다. 지금 머릿속에는 놀이터뿐이다. 고성은 심해지고 내 혈압도 오르는 것 같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 도착해 있었고. 오후 2시, 목이 마르고 당이 떨어져 가볍게 점심을 먹었다. 오늘 한 끼도 먹지 않은 꼬마는 "놀이터!!!!"를 외치며 끝없이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더위가 느껴지지 않아서 부럽다. 그 에너지가 진심 부럽다. 나는 이틀 내내 잠만 잘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부쩍 힘이 세진 꼬마의 손에 이끌려 다시 나갔다. 이번에는 인형을 유모차에 싣고 나가야 한다기에 잠시 찬반 토론을 하다가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두 번째로 포기했다. 그래, 이게 무슨 대수냐. 인형이 예쁘게 앉은 새카만 유모차를 끌며 우린 놀이터에 도착했다. 땡볕 아래 친구들이 많이 놀고 있었다. 어른들은 죄다 그늘 벤치에 앉아 다리를 꼬고 상념에 젖어 계셨다. 아,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그분들의 마음. 유모차를 주차시켜놓고 놀이터를 즐겼다. 눈이 부실 정도로 자외선이 강력한데 그네를 몇 번이나 뛰어야 했고 흩어진 솔방울을 기껏 주워 다가 다시 허공에 뿌리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미끄럼틀은 뜨거워서 탈 수가 없었다. 다행인가, 아닌가. 잘 모르겠지만 지칠 때까지 놀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놀이터에서 열 일하고 있는데 문득 음악이 듣고 싶어 졌다. 마침 가방에 이어폰이 있어 한쪽만 꺼내보았다. 요즘 자주 듣는 노래를 듣다가 전에 좋아하던 노래가 눈에 띄었다. 세모를 눌러보았다. 역시, 전주부터 신난다. 두근대는 소리가 지쳤던 나를 상기시켜주는 것 같았다. 그네를 타면서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5월 내내 바람과 새처럼 자연 소리를 들으며 탔던 그네인데, 오늘은 정보기술이 만든 소리로 채워볼 생각이었다. 아이를 내 무릎에 앉히고 음악을 켰다. 우리가 참 좋아하는 그네를 타며, 한쪽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은 내 피곤을 저 멀리 날려버리며 반만이라도 허락된 자유를 누리게 했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그네를 타며 이런 가사를 맞이하는 상황이 모순 같지만, 이 노래가 없었다면 더위에 지쳐 쓰러지거나 인내심이 바닥이 나든가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KhsHGfrFmY


매거진의 이전글 누가 밥 좀 해줬으면 좋겠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