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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비밀

정원의 비밀

by Dear U

내가 취미를 잃은 것은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서 그런가. 잊어야 하는데 잊히는 건 또 싫다. 그러니까 살고 싶어서 이러는 건데 사람들은 나를 위태롭고 바스라질 것처럼 취급한다.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닌데. 그냥 무수히 많은 날들 중 어느 날. 아무것도 아닌 날 죽었으면. 뛰어내리는 건 아프니까. 바닷가에 살 때는 밖을 내다보지도 않았으면서 산에 둘러싸인 지금은 가만히 있질 못 한다. 여기로 오기 전 마지막이라면서 담배 한 갑과 맥주 두 캔을 산 게 이유일까. 모르겠다. 여긴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발자국들이 연달아 찍혀 있고 사람들은 그 위를 짓밟고 지나간다.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래도 되는 건가. 이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아서 쓴다. 그래, 나는 사실 내 글을 읽는 이들의 목을 졸라보고 싶었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읽게 될 때에는 글의 호흡을 위해 쉼표와 마침표를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런 거라면 나는 점을 찍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배려는 하고 싶지 않아 그저 읽다가 숨을 쉬지 못하면 좋겠어


뭘 써야 읽히지 않을까 생각하려니까 한 글자도 나오질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늘 나를 뱉고 다닌 거지. 그러니까 이렇게 속이 텅 빈 채로 배회하는 거지 그래 나는 항상 훤히 읽히는 시였고 산문이었다. 즐겨 듣는 노래의 가사조차 이래. 정답들 사이에 난 인기 있는 오답. 그래서 그 시절 내 답안지엔 아무것도 없었어.


몰랐다 사람들은 원래 빛을 낸다는 걸. 낮은 채도로 점멸하는 오렌지 빛 단칸방의 유일한 태양이 지는 모습을 목도했다. 손을 얹어 보니 뜨거웠다. 점멸하는 와중에도 온기를 담고 있었던 거다.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밝고 따뜻해서 내가 데이는 거였다. 여태껏 내가 차가워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내는 빛은 푸른색이니까. 착각이었다. 원래라는 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이제는 안다 깨진 전구에 베이는 게 아니라 때론 데이기도 한다는 것을. 김경인 시인의 말을 빌려 그토록 뜨겁게 발광하던 그대여 이만 깨져도 된다는 다정한 사망선고를 침묵으로 내려 본다. 누군가는 울면서 떠나야겠지.


할로윈을 기대하는 이들 사이에서 10월의 마지막 밤을. 아마 어려서부터 초 치는 건 잘했을지도 모르지. 별이 떴길래 전화를 걸었다. 천국을 주문하려다 도로 끊었다. 다정이 유죄인 줄은 모르겠고 무슨 번호를 누를까 수없이 망설이다 손가락을 접었다. 나는 피해자인 거다. 속수무책으로 차선을 바꾼 트럭에 치인 무참한 사람인 거다. 트럭 운전수는 그게 문제인 것도 모르고 자기 가려던 길만 보고 간 거다. 그게 죄였고 다른 건 없다. 그러나 과실은 도로를 걷는 보행자에게 있는 것. 중력에 맹세하며 땅바닥에 두 발 붙이고 걸었던 나의 죄가 된다. 스스로를 푸른 나비라고 지칭해서라도 난 날았어야 했다. 이제 나는 유죄다. 아마도 무기징역일 것이다.


같잖고 사소한 감정에 이입하지 않는 것...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 이입을 하게 만드는 상황과 사람과 내가 있다. 대본도 없는 연극에 오른 기분이다. 무슨 말을 해야 NG 없이 막을 내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대학로 소극장의 연극.


놓치기 싫어서 놓으려고 했다. 해변의 카프카의 까만 까마귀처럼. 내 옆에는 걔가 있었다. 12월이 생일이라던. 열여덟의 어느 날 옆을 보니 걔가 스물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그러지. 나는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는데 금방 따라잡는다. 먹힐지도 모른다. 까마귀의 발톱이 흉부를 긁어대고 부리로는 내 어디를 쪼아대는 것 같다. 시큰거린다. 봄베이에 레몬을 너무 많이 넣어 사례 걸렸을 때처럼 온통 따끔거린다. 바늘을 삼켰다 싶은데 그건 또 아니야. 여태껏 삼켜댄 건 아주 잘 정제된 달달한 언어였으니까. 아닌가. 목으로 넘길 때 깨진 걸지도 모르겠다. 역시 사람은 반쯤 미쳐야 해. 그래야 이런 글도 쑬 줄 안다니까. 나는 울까 봐 두려워 잠을 자지 않았다.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아니 실은. 놓기 싫어서 놓으려고 했다. 그러다 억울해져서 꽉 쥐고 있다. 부디 힘이 풀리지 않기를.


그러니까 초인지가 본능을 이긴 거라고 자살은. 너는 너무 똑똑해서 죽는 거라고. 그거 억울하지 않니. 그렇게 말한 언니는 억울할 게 없었던 건지 그 해 여름에 죽었다. 버틸 약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더니 이게 괜찮은 건가. 최대한 일상적으로 굴고. 무언가를 자꾸만 하려고 하고. 그때에도 글을 썼던 것 같다. 상담을 처음 받았을 때 나더러 이건 병이 아니라고 했다. 메모해 둔 게 있는데 찾으면 뒤에 덧붙여야지.


“저는요. 바쁘면 괜찮을 줄 알았어요. 쉬는데도 죄책감이 몰려들더라고요. 그 하루 쉬는 때에 갑자기.”

“쉬는 게 잘못인가요?” “아니겠죠. 그러니까 제가 이러고 있는 거고. 쉽게 표현할게요. 저는 제때 추모하지 못 한 거예요. 자살생존자에게는 항상 그가 자살한 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데.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제 죄책이 될 수도 있고요. 쉴 때 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몰려드는 건 그 죄책이 만든 플롯 같은 거죠.


연아. 너는 증오에 대한 반응만 확실해. 소리가 한 쪽에서만 들리는 것.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 것. 이런 건 확실하게 표현하는데. 연아. 너는 선생님한테 한 번도 뭘 좋아한단 말을 한 적이 없어. 좋아하는 게 없는 거니. 연아 너는 정신병이 없어. 그건 병이 아니라 치료를 못 해. 치료를 안 해 연아. 이건 고치거나 약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냥 이게 너거든.


연아. 네 에세이가 단정하지 못 한 이유는. 너는 너무 험하게 죽으려 해. 왜 굳이 그래야 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데 넌 너무 험하게 죽으려고 해서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아무것도 잡히지 않을 것 같아 보여. 그렇게 죽지 마.


내가 그렇게나 거부하던 곳에 오게 됐다. 바다와는 또 다른 고립인 거겠지. 아무렇지 않게 또 무연고지에서 혼자 잘 죽을 수 있겠지 생각했어. 여긴 온통 산길이 굽이진 곳이니까 어디서든 구르기만 하면. 그래. 인터넷도 잘되지 않는 이곳에서 맥주 두 캔으로 뭘 해야 하지. 간헐적으로 들리는 문 여닫는 소리 같은 거. 신경 쓰고 싶진 않았는데. 크게 난 창문으로 찬 공기가 들어와서 손이 얼었는데도 이걸 쓰지 않으면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아서 쓴다. 아마 옆방 사람들은 타자 소리를 듣고 있겠지. 여기 사람 있어요. 하고 두드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야. 생부는 나를 이곳에 처박아두곤 이제 와 괜히 오자고 했나 하며 후회 비슷한 말을 했어. 빛 하나 없는 산길에서 아비의 손을 잡지 말았어야 했다. 이 역시도 후회인 거겠지. 이런 것만 죽도록 닮아서. 생모는 가기 전 문틈으로 머리를 쓰다듬고 갔다. 손을 흔들던데. 처음 봤어. 나는 아마 숱한 날들 중 어느 날에라도 연락처를 모두 지우고 잠적할 것 같다. 손짓 하나 받았다고 삶을 갈구하고 싶진 않으니까.


연이 그리고 마츠코 라는 이름으로 3 년을. 이걸 살았다고 해야 할까. 잘 모르겠어. 여전히 무감해. 바다에서의 1 년을 구멍에 넣고 통째로 뚫어버린 기분이 든다.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한 적은 없었는데 왜 난 기억이 안 나지.


가끔은 잠결에 무언가를 한 것 같은데 죽어도 기억이 안 난다. 뭐가 문제지. 핸드폰을 보거나 물건을 반대쪽으로 옮기거나 한 기억이 아주 흐릿하게 있다. 특히 산책이라도 하는 날에는 더욱. 11 시에 잠들어서 새벽 4 시에 깨는 짓 좀 그만하고 싶다. 아무 일도 없는데 놀라서 깨거나 문이나 발소리에 귀가 움직여서 깨는 것도 지겹다. 창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꽤 커 보이는 벌레가 들어왔다. 잡을 수 없겠는데 시선 끝에 걸리는 것만으로도 불편하다. 아마 그래서 더 못 자는 거겠지. 자고 싶다. 꿈 안 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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